왼쪽부터 바이든,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에 봉착했다. 사태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기밀 정보, 침공 시나리오, 이동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정보전으로 전쟁을 막겠다’는 의도를 드러냈지만 침공을 막지 못했다. 이미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체면을 구겼고 이번 사태에서도 국제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안팎으로 거세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국내 지지율 또한 하락세여서 그렇지 않아도 좁은 대외 정책의 입지가 더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옛 소련의 첩보기관 KGB의 정보 요원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새벽 시간에 전격 침공을 단행한 데다 곧바로 수도 키예프까지 진격하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이 없다’고 수차례 거짓 정보를 흘리는 ‘매드맨’(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해 공포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장기 집권과 경제난에 따른 국만 불만을 무마하고 ‘유라시아 패권’을 굳히려는 목적으로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파병 가능성 차단한 제재 한계”
문제는 사태 초기부터 지상군 파병 등 미군의 개입 가능성에 선을 그어 높은 확률로 적중한 기밀정보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고 러시아 억지에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때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줄곧 예방적 타격 등 군사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고 미 함대 또한 조지아에 상륙해 인도적 지원 물품을 전달했다. 부시처럼 실제 파병 계획이 없어도 ‘언제든 파병할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흘려 러시아를 교란했어야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침공이 이뤄진 24일에도 “파병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금융 분야에 집중된 일종의 ‘솜방망이’ 제재라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미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중국과 달리 미-러 경제는 서로 얽혀 있는 비중이 크지 않다. 러시아 또한 푸틴 집권 후 줄곧 미 달러 중심 금융체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 경제 제재의 실효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에 야당 공화당은 물론이고 집권 민주당 내에서도 초강력 제재를 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 민주당 외교위원장은 “푸틴에게 최대 비용을 부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푸틴 ‘매드맨’ 전략에 속수무책”
두 지도자가 처한 국내 상황도 대조적이다. 소련 향수가 짙은 러시아 국민은 국제법을 무시한 푸틴의 행동에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 국민은 2014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도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합병 전 60%대였던 푸틴의 지지율은 합병 직후 90%까지 치솟았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로 전선을 확대하자니 여력이 부족하고, 폭주하는 푸틴 대통령을 그대로 두자니 자유세계의 지도자 위상이 훼손돼 고민이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러시아학)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반러 정서가 강한 미국민에게 러시아와 타협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난처할 것”으로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