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측근 판사의 민정수석 임명에 판사들 “사법부 독립 침해” 성토
“사법부가 정부 부처라고 생각할까 두렵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간사 출신 김영식 전 대통령법무비서관(56·사법연수원 30기·사진)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자 18일 법원 내부에서는 이 같은 탄식이 이어졌다. 한 판사는 “사법부 독립을 외치던 판사가 대통령법무비서관에 이어 민정수석에 임명되니 국민들이 법원이 독립해서 재판한다고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일선 판사들이 김 수석의 임명 소식에 사법부 독립을 걱정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판사들은 “판사가 퇴직 후 청와대나 국회로 진출한다면 판사 시절 내린 판결에 정치적 의도나 편향성이 있다는 의심을 사 국민의 사법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칫 판사 시절 활동이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한 ‘스펙’처럼 여겨지는 관례가 생기거나 청와대에 진출한 판사가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개입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판사 재직 당시 김 수석은 2015년 7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에 강성 개혁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을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연루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추진하기 위한 법관회의 회의지원단장을 맡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김 수석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당시 인천지법 대표로 참가한 김 수석은 “비실명 처리된 검찰 공소장을 보더라도 삼권분립을 지켜야 하는 최고법원이 얼마나 청와대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2017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판사가 청와대로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의 “대법원장이 속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 김형연 전 판사가 사표 내고 며칠 사이에 법무비서관으로 간 것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판사가 사직하고 정치권이나 청와대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은 “이전에 문제가 됐던 고위직으로 가는 것은 더 그렇고요”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이 ‘문제가 된 고위직’을 언급한 이유는 2015년 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판사 출신 대통령법무비서관을 시켜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개입하려고 시도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판사가 대통령법무비서관으로 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수석은 2019년 2월 법원을 떠난 뒤 석 달 만에 법무비서관에 임명됐다. 당시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김 수석의 청와대행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당시 박근혜 정부 대통령민정수석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소통을 앞장서 비판하던 판사가 민정수석이 됐다”며 “대법원장 측근이라는 판사가 민정수석이 돼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강력한 ‘가교’가 생겼다. 당장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을 신뢰할 국민이 몇이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판사들은 “사법부 독립은 행정부로부터의 개입을 막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수석이 간사를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4년 펴낸 번역서 ‘국제인권법과 사법’에도 사법부 독립과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펴낸 이 저서에는 “사법부 독립은 판사 개개인의 마음가짐 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다른 기관들, 특히 행정부와의 관계나 상태 또한 포함한다”고 적혀 있다.
OHCHR은 이어 “행정부나 입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판사가 직업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의 사법부 독립의 의미”라며 “독립된 사법부만이 법의 지배에 근거해 공평한 정의를 이루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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