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녹취록’ 대결, 어디까지 추해질 건가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발언도 문제지만, 녹음·유통 과정도 문제
비전 없고, 저급한 네거티브에 빠진 대선
‘김건희 녹취록’을 둘러싼 진영 대결은 이번 대선이 얼마나 막장인지 보여준다. 어제 MBC가 보도한 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씨가 지난해 7월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친여 매체인 ‘서울의 소리’ 이모 기자와 7시간여 동안 통화한 내용의 일부다.
우선 김씨의 처신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윤 후보는 정계 입문을 분명히 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김씨도 공인의 배우자로서 신중한 언행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특정 성향의 매체와 빈번하게 대화하며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니 놀랍다. 앞서 허위 이력 논란까지 맞물리면서 김씨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김씨의 책임이 크다. 얼마 전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또 다른 큰 문제는 김씨의 말이 녹음되고 유통·증폭되는 과정이다. 이 기자가 김씨에게 초기에 ‘기자’란 신분을 밝혔다고 해서 녹음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다. 방송분만 보면 김씨가 녹음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이 기자가 사실상 정보원 내지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하며 김씨의 답변을 유도한 대목이 적지 않다. 취재 윤리에 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석연치 않은 건 정치적 의도 논란이다. ‘서울의 소리’가 친여 매체인 ‘열린공감TV’와 녹음 상황을 공유했고, 먼저 MBC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MBC는 공영방송답지 않게 친정권적이란 평을 받아 왔다. 두 매체의 편향성도 불문가지다. 게다가 방송 타이밍이 설 직전이다. 설은 민심의 용광로로 불릴 정도로 전국적 여론이 형성되는 때인데, 이번엔 대선을 불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았다.
실제 김씨 측의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법원이 일상 대화나 수사 중인 사안 등을 제외하고 방송하라고 판단했는데, 직후 법원 결정문의 별지 형태로 방송금지 발언이 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잘못된 일이다.
여야의 대응도 아쉽기 그지없다. 국민의힘의 불쾌감은 알겠으나 사전에 보도를 막으려 했다거나 MBC에 항의방문을 간 건 적절치 못했다. 여론의 시장에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해야 했다. 호재를 만난 듯 “본방사수”를 외치는 민주당도 부박하다. 중앙선관위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욕설 녹음 원본을 유포하는 건 괜찮다고 했던 걸 두고 “비방·낙선이 목적이라면 선거법상 위법”이라고 펄펄 뛰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국민의힘이 이재명·김혜경 부부의 녹음파일을 틀 때 뭐라고 할 텐가.
6년 전 미국 대선에선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란 목소리라도 있었다. 우린 비전은 없고, 저급하게만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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