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People

엘리지의 여왕(67년) 인기가수 이미자의 이야기

Jimie 2022. 1. 12. 14:29

엘리지의 여왕(1967년) 인기가수 이미자의 이야기

 

 

엘리지의 여왕

1967년 한국영화

감독 : 한형모

주제가 작곡 : 박춘석

출연 : 남정임, 박노식, 나미(김명옥), 이낙훈

주증녀, 김동원, 송해, 박시명

한유정, 송미남, 양훈, 강계식

김정옥

특별출연 : 이미자, 김상희

 

 

2019년 12월 29일,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일요일, KBS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이라는 방송에서 가수 이미자의 헌정무대가 열렸습니다.

 

원래 불후의 명곡은 전설급 가수를 모셔 놓고 여러 가수들이 그 가수의 노래로 경연을 벌이는 대결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이날은 그런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보통 전설로 나온 가수는 노래를 아예 안하거나 한곡 정도 시범적으로 불렀지만 이날은 다른 가수들이 잠깐씩 노래를 부르고 거의 이미자의 콘서트 무대처럼 꾸몄습니다. 사실상 이미자 콘서트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날 이미자편이 특집으로 꾸며진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수 이미자, 우리나라에서는 불멸의 명가수입니다. 1959년 데뷔했는데 1941년생이니 19살에 데뷔하여 2019년이 데뷔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즉 이날의 불후의 명곡 특집은 전설급 가수 이미자의 60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인 셈입니다. 79세의 고령인 이미자는 이날 무려 10곡이 넘게 열창을 하면서 여전한 노래실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전성기 만큼의 성량은 아니었겠지만 여러 곡을 다양하게 소화하면서 80세가 다된 나이였음에도 노래실력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나 무스쿠리 등 세계적인 명가수들도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79세의 가수가 이렇게 10곡이 넘게 흐트러짐 없는 열창을 하는 건강함을 과시한 것 자체가 굉장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영화 오프닝에 직접 등장하는 이미자

27세의 젊은 이미자

80년대의 인기가수 나미가 본명 김명옥이라는 이름으로

아역출연을 하며 7세부터 11세의 이미자를 연기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이미자

 

 

데뷔 60주년, 하지만 이미 데뷔 8년만에 이미자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60년대에 이미 레전드였습니다. 1964년에 발표한 동백아가씨가 엄청난 히트를 했고, 무려 32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고 할 정도니 이미자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지요. 1967년이면 불과 27세, 즉 그때의 이미자는 아직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고 70년대에도 많은 인기를 누리며 10대가수, 가수왕 등 여러 수상을 이어갔지만 27세의 나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가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자의 별명은 '엘리지의 여왕(엘레지의 여왕)'인데 1967년 내놓은 음반의 제목이 엘리지의 여왕이었고, 그해 11월 같은 제목으로 영화가 나왔습니다. 이미자에 대한 헌정영화인 셈이고, 가수 이미자가 어떻게 성장하고 탄생했는지를 자전적 형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온전한 리얼리즘 영화는 아닐테고, 어느 정도 극에 맞게 각색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백아가씨' 등 히트곡의 탄생과 결혼과정, 이혼 등 어느 정도 큰 줄기는 비슷합니다.

어린시절 매우 가난하게 자란 이미자(남정임)는 어머니가 일찍 집을 나갔고 병약한 아버지와 나이든 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았습니다. 7살때 동네 노래대회에서 특별상을 받고 상금으로 쌀을 사서 모처럼 세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6.25 전쟁때 예산 피난길에 10살의 나이로 피난민 노래자랑에 출연하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후 전쟁이 끝난후 가난속에서 열심히 노래공부를 했는데 워낙 가난하여 낮에 급사로 일하면서 학업과 노래를 병행했습니다. 고교생인 것을 속이고 노래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고 이후 홀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타고난 노래실력으로 명성을 얻습니다. 이로 인하여 악단 연주자(박노식)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는 이미자가 데뷔할 수 있게 도와준 인물이고 스스로 이미자의 날개가 되어줄테니 새가 되어 힘차게 날아가라고 격려한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출산과 함께 가수로 성공을 하고 행복한 가정과 승용차에 예쁜 딸까지 얻게 된 이미자, 하지만 워낙 바쁜 스케줄에 지방으로 다니며 공연을 하느라 아내역할,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런 와중에 동백아가씨가 크게 히트하여 국민가수가 됩니다.

이 꼬마가 가수 나미의 어린시절이라니.

6.25 피난길에 예산에서 열린 노래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10세의 이미자

이미자 역을 연기한 남정임

실제 이미자보다 너무 예쁜 배우가 연기한 셈이다.

훗날 남편이 될 인물을 노래 경연장에서 만나게 되고...

 

 

가수로서는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남 부러울 것이 없던 이미자, 하지만 영화속에서 두 가지의 아픔이 그려집니다. 하나는 헤어졌던 어머니와의 짧은 재회와 다시 헤어지는 아픔,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미자에게 견디지 못한 남편과 결국 헤어지게 되는 사연이 그려집니다. 이렇게 해서 이미자는 남편, 딸과 이별을 하게 되지만 계속 노래를 합니다. 물론 이 가정사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어지고 있고 대부분 영화는 이미자의 노래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부분도 있습니다. 가수로 성공한 이미자가 피난길에 공짜로 고기를 주었던 정육점에 십수년만에 찾아가 은혜를 갚는 이야기, 노래대회에 어리다는 이유로, 늦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지만 매번 극적으로 출전하게 되는 이야기 등은 아마도 영화를 위한 설정일 것 같습니다. 이런 극적인 내용과 가정사의 아픔이 약간 신파적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주로 노래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영화는 나름 깔끔한 편입니다.

'운명의 손' '자유부인' '청춘쌍곡선' 등 해방후 우리나라 영화계의 대표감독이랄 수 있는 한형모 감독이 연출했는데 그는 1966년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 이어서 다시 음악영화를 연출한 것입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보다는 무대와 노래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어린시절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신파성이 있기는 하지만 성인 이미자의 이야기는 노래인생 위주라서 영화가 늘어지지 않는 편입니다.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갖는 이미자

노래교사로 이낙훈이 출연한다.

홀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가수로 성공의 길을 달리게 된다.

뒷쪽에 연주연기를 하는 박노식의 모습

이미자의 날개가 되어 새가 되어 비상하는 것을

뒷바라지 하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남편을

성격배우 박노식이 연기한다.

 

 

대표곡인 '동백아가씨'를 비롯해서 '섬마을 선생님' 아리랑 목동' 등 여러 곡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미자의 노래를 꽤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이미자 역으로는 60년대 트로이카 배우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남정임이 출연하는데 너무 예쁜 배우가 출연한 느낌입니다. 이미자는 노래실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설적 가수지만 외모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었는데 남정임은 상대적으로 너무 미인이지요. 영화의 초반부에 이미자가 직접 출연하여 영화 제목과 동일한 노래 '엘리지의 여왕'을 직접 부르는데 자신은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연기를 할 수 없었고 대신 역할을 해준 남정임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합니다. 아직 한참 인기있는 현역가수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라서 그런지 꽤 독특한 오프닝입니다.

 

배우들도 화려합니다. 주인공 남정임 외에도 이미자를 발탁하고 결혼까지 하는 남편 역으로 성격배우 박노식이 출연하고, 음악교사 역으로 이낙훈, 헤어졌던 엄마 역으로 주증녀, 노래자랑 사회 역으로 송해, 박시명 등이 출연합니다. 특히 송해의 경우는 이 영화에서도 노래자랑 사회자로 등장하는데 90세가 넘은 현재까지도 전국노래자랑 MC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미자가 노래의 전설이하면 송해는 MC의 전설인 셈이죠. 아무튼 이름있는 배우들이 단역, 조연으로 이미자를 위해서 출연하고 있습니다.

동백아가씨 녹음장면

동백 아가씨의 큰 히트로 톱 가수가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는 이미자

가수로 성공하여 집과 자동차도 장만하고

남편과 딸을 얻게 되어 행복한 시절의 이미자

6.25 피난길에 도와주었던 정육점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 이미자

 

 

재미있는 사실은 80년대 '빙글빙글' '슬픈 인연' 영원한 친구' '인디안 인형처럼' 등으로 크게 인기를 누렸던 댄스가수 나미가 이미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본명인 김명옥으로 출연하고 있는데 당시 11세의 나이였습니다. 이미자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제법 길기 때문에 나미의 출연비중도 높습니다. 어린시절 노래하는 장면도 제법 나오는데 이 노래도 나미가 직접 더빙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오프닝 타이틀에 김명옥 이라는 이름이 나올때 "천재소녀"라는 수식어가 함께 붙습니다.)

 

사실 이미자의 전기적 영화를 만든다면 지금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겠죠. 67년 당시 27세의 이미자가 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청아한 목소리로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2019년 끝자락에 방영된 '불후의 명곡'은 감동 그 자체였고, 살아있는 레전드의 무대를 한참 구경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회를 본 신동엽이 '저희도 지켜보면서 혹시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79세 고령의 가수가 많은 곡을 무난히 소화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80이 다 되었으면서 그런 성량과 호흡이 가능한지. 서있기도 힘들 수 있는 나이인데. 참 건강관리도 잘하신 분 같습니다. 달리 레전드가 아니지요.

 

전기영화가 지금 나온다면 67년에는 담아내지 못한 더 많은 사연들이 등장할 수 있겠죠. 영화에서 보여진 이혼한 남편과 딸은 이후에도 계속 남남으로 살았고, 이미자는 1970년 재혼을 하였으니 '엘리지의 여왕'이 영화로 나온 뒤 3년뒤에 재혼한 셈이지요. 2019년 데뷔 60주년을 맞이하여 의미있는 TV콘서트 무대에 등장한 이미자인 만큼 1967년에 이미 만들어진 헌정영화 '엘리지의 여왕'은 보는 자체가 신기한 작품입니다. 52년의 간극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노래하는 존재라는 점이... 이미자 라는 이름앞에서 50년의 시간속에서 그의 노래는 계속 '진행형'이 되는 셈입니다.


어머니와의 애틋한 짧은 재회

가수 김상희가 특별 출연하여 대머리 총각을 부른다

젊은 시절 김상희가 이렇게 세련된 모습이었다니.

보수적인 60년대였지만 극장의 쇼 무대는

이렇게 노출이 심한 의상도 입었다니...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나는

장르 본연에 충실했던 작품.

 

 

ps1 : 이 영화가 한형모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ps2 : 역시 레전드급 가수인 김상희가 '대머리 총각'을 멋지게 부르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당시 25세였고, 꽤 세련되고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이미자(남정임의 연기였지만)와 달리 서구적 느낌의 양장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60년대의 나름 세련되고 화려한 무대가 많이 보여지는데 극장쇼 무대라서 그런지 노출이 꽤 심한 무용수들도 나옵니다.

ps3 : 60년대 하면 꽤 낙후되고 어려운 시대가 연상되는데 쇼 비지니스 소재의 영화라서 그런데 화려한 네온사인과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시의 모습 등 제법 현대적인 분위기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쇼 무대는 제법 화려합니다.

 

ps4 : 영화에서 아기로 등장한 이미자의 딸, 실제로 딸 정재은씨가 1964년생이고 2살때 부모가 이혼하였다고 하죠. 가수로서는 국보급 전설이 되었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은 아예 하지 않은, 딸 입장에서는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언론에 알려지기를 정재은씨는 엄마(이미자)를 딱 세 번 보았다고 합니다. 정재은씨도 엄마를 닮아서인지 상당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입니다. 딸과의 관계는 어쪄면 이미자라는 가수의 삶에서 아칼레스건으로 작용하는 아픈 가족사가 될 것입니다.

 

ps5 : 엘레지는 슬픈 노래, '비가(悲歌)'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출처] 엘리지의 여왕(67년) 인기가수 이미자의 이야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