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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한 이정재 뒷모습 보라, 어디 승자로 보이던가… 평생 자기 길 성실하면 각자 삶의 1등일 것”

Jimie 2022. 1. 11. 01:15

“1등 한 이정재 뒷모습 보라, 어디 승자로 보이던가… 평생 자기 길 성실하면 각자 삶의 1등일 것”

[유석재가 만난 사람] ‘오징어 게임’ 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

입력 2021.10.18 03:00
 

모자와 안경,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 장소인 경기 성남 위례신도시 자택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오는 배우 오영수(77)는 그저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지나가던 주민들이 모여 기웃거렸다. “아이고, 며칠 전엔 근처 커피숍에 갔는데, 밖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깐부 할아버지다!’ 하더니 몰려들어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배우 인생 54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드라마보다 20년은 젊은 목소리였다. 갑자기 신경 쓸 게 많아 체중이 2㎏이나 빠졌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으로 연기 인생 54년 만에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오영수가 드라마에서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택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 연기라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일남 캐릭터 안으로 들어갔다는 그는“모두가 승자독식의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깨달음이‘오징어 게임’세계적 흥행의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국내에서도 일반인에겐 낯선 얼굴이었던 오영수는 꼭 4주 전에 ‘월드 스타’가 됐다. 지난달 17일 공개돼 세계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에 올라선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은 것이다. 그가 ‘우린 깐부(딱지나 구슬을 서로 나누는 짝꿍이라는 뜻의 은어)잖아~’라는 명대사와 함께 퇴장하며 긴 여운을 남긴 6화에 대해 미 포브스지(誌)는 ‘올해 본 TV 에피소드 중 최고’라고 했고, 각국 유튜버들은 이 장면을 보고 울음을 펑펑 터뜨리는 리액션 영상을 앞다퉈 올렸다.

이제 스포일러(주요 내용 미리 공개)를 하지 않고 그의 인터뷰 기사를 쓰기는 불가능해졌다. 드라마 마지막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에서 세계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저 할아버지 누구냐” “신들린 연기”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기에 “금방 죽을 역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드라마의 열쇠였다”는 반응이 국내에서도 나왔다.

 

사실 오영수는 반세기 넘게 200여편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원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연출가 손진책은 그에 대해 “오랜 세월 한결같은 순수함이 설득력 있는 연기로 승화되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출연 제의를 받은 게 언제였나?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노부인의 방문’ 무대에 오르던 2019년 11월이었다. 황동혁 감독은 예전 영화 ‘남한산성’(2017)에 출연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했다. 김기덕 감독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서 내가 노승으로 출연한 걸 기억하고 있더라. 감독이 대학로로 와서 연극까지 보며 나를 만났다.”

 

―대본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은.

“꼭 황당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 놀이를 통해 처절한 경쟁 사회를 상징한 일종의 우화라고 읽혔기 때문이다. 오일남은 권력과 돈을 쥐었지만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인간적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선과 악이 모두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언뜻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 보였고, 어쩌면 내 분신(分身)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드라마 속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등장하는 오일남은 구부정한 자세로 팔을 휘저으며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거나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순식간에 부릅뜬 눈으로 상대방을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겪는 것 같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비결이라도 있는가?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욕심 부리며 의식하지는 않았다. ‘내가 약간 치매기가 있는 뇌종양 환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캐릭터 안으로 들어갔다. 오일남과 실제로 비슷한 연령대여서 망정이지 아마 10년 전만 해도 그런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 게다.”

 

                       ‘오징어 게임’에 함께 출연한 오영수(오일남·오른쪽)와 주인공 이정재(성기훈). /넷플릭스

 

54년 동안 연극 무대 올라

그의 출생지는 경기 개풍이고, 고향은 경기 파주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 환경이었으나 6·25 때 아버지가 공산군에게 살해당하고 형이 납북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흙수저 집안에서 젊은 날을 거칠게 살았다’고 한다. “검정고시도 보고 막노동도 하고…. 여기저기 들락날락거리기만 했습니다.” 쉰 넘어 받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증이 최종 학력이라고 했다.

 

―1967년 극단 광장에 들어가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는데.

“제대하고 나서 직장에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아 친구 따라 극단에 간 건데, 연극 무대에 올라서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별 존재감 없던 젊은 내가 무대에선 의미 있고 함축된 언어를 토해냈고, 그걸 본 많은 관객이 반응하는 걸 보고 황홀했다.”

그 매력에 빠져 청소부터 포스터 붙이기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연극에 몸담은 지 50년이 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극이란 도무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시장에 장사하러 나가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의 젊은 날에서 ‘오징어 게임’ 주인공 기훈(이정재)의 모습이 비치는 셈이다.

 

―1987년부터 24년 동안 국립극단 배우로 있었다.

“열세 살 연하 은행원 아내와 2년 동안 연애했지만 배곯는 직업이라고 처가 반대가 심했다. 국립극단에 들어가니 비로소 월급이란 걸 받을 수 있었고 간신히 결혼 허락도 얻었다. 마흔세 살 때였지… 아마.”

‘전우’ ‘전원일기’ 같은 TV 드라마에 단발성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국립극단 단원으로 있으면서 ‘아무 배역이나 맡진 않겠다’는 자존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역할이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바로 ‘스님’이었다. 영화 ‘동승’(2002),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선덕여왕’(2009) ‘무신’(2012)에서 모두 스님 역할을 맡았다. 진짜 스님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스님 전문 배우’가 됐나?

“내가 불교 사상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다 보니 외모가 점점 스님을 닮게 된 게 아닐까? 그건 ‘자신을 비우고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산에서 예쁜 꽃을 보더라도 꺾지 않고 그대로 두고 집으로 오는 마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라.”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냈다

 

그는 2014년 셰익스피어 연극 ‘템페스트’에 출연할 때 기자와 인터뷰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평행봉 운동을 수십 번 한다’고 했다. 반신반의했는데 2년 뒤 연극 ‘장판’에서 도둑 역으로 나와 그걸 무대에서 실제로 보여줬다. 젊은 관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다시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집 근처 남한산성 밑에서 평행봉 50회를 하고 내려온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에서 서 있기도 어려운 듯 노쇠해 보이는 건 죄다 연기 아닌가.

“하하, 그렇게 봐 주면 고맙겠다.”

 

―촬영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는가.

“사실 나도 오일남처럼 놀이를 하듯 즐겁게 촬영한 것 같다. 딱 한 번 곤란한 일이 있었는데, 4화에서 참가자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도중 쌓인 침대 맨 꼭대기에 올라가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 무서워’라고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올라가 보니 진짜로 무섭긴 무섭더라. 허리에 안전장치를 감고 촬영했다.”

 

―발성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평을 받는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대사가 느릿느릿한데 묘한 운율이 있다는 것이다.

“무대에 오래 서다 보니 연기란 기(氣)와 호흡으로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말과 말 사이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호흡이다.”

6화에서 치매 증상을 겪는 줄 알았던 오일남이 돌연 기훈에게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라며 또박또박 말해 시청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여기서 ‘/’가 호흡이라는 얘기다. 이 장면에서 그는 온몸의 기를 한곳으로 몰아 연기했다고 한다.

 

―9화에서 정체를 밝히는 장면도 깊은 인상을 줬다.

“감독에게 ‘머리와 수염을 다 깎고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 스님 역을 많이 하다 보니, 오일남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몸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다 버릴 것 같았다.”

 

―오일남이 왜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게임에 참여했으며 초반에 게임을 일시 중단하는 데 동의한 것인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집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의 행동은 모두 커다란 ‘오일남 게임’의 일부로 봐야 한다.”

 

인생에 승자가 어디 한 명뿐인가

 

―'오징어 게임’이 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을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드라마 속 게임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오일남은 승자 단 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패자라는 편견을 지녔다. 2등, 3등, 4등을 비롯해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존재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현대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부조리가 그의 게임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게 드라마의 주제였을까.

“내 생각에, 진정한 승자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면서 내공을 지니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에서 1등을 한 주인공의 공허한 뒷모습을 생각해 봐라. 그게 어디 승자로 보이던가? ‘승자’가 승자가 아니고 ‘패자’ 역시 패자가 아니라는 주제를 드라마는 담고 있다.”

 

―'깐부 치킨’ 광고 제의를 거절해 화제가 됐다.

“드라마 주제와 연결돼 있고 신뢰를 상징하는 ‘깐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거절했는데, 일부 보도된 것처럼 ‘배우로서 자리를 지키려고 CF를 찍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내가 정말 그랬다면 이순재·신구 선배는 뭐가 되겠나.”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상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처럼 늦은 나이에 세계에 알려진 배우가 됐다.

“그게 뭐. 설사 그렇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행운처럼 온 게 아니라, 작은 내 몫 가운데서 지금까지 한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온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길에서 그렇게 묵묵히 해 온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자기 삶에서 1등이 아니겠는가.”

 

오영수

1944년 경기 개풍군에서 태어나 1967년 극단 광장에 입단, 1968년 ‘낮 공원 산책’으로 데뷔했다. 극단 성좌·여인·자유를 거쳐 1987~2010년 국립극단 배우로 있었다. ‘파우스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리처드 3세’ ‘베니스의 상인’ ‘템페스트’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동아연극상과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동승’ 등에서 노승 역할로 주목받았다.

 
유창석
2022.01.10 12:21:19
연기에서나 평소 삶에서나 다름이 없는 배우이십니다. 인기와 부유한 물질적 성공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빈약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그 내공이 닦여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 테지요. 영광스러운 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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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웅
2022.01.10 15:22:55
축하드립니다 진실하게 살아온 삶의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앞으로 더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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