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재[天才]는 박명(薄命)하다 ! 천재는 하늘의 것인가 !!!~~~
김소월(金素月,1902 ~1934)은 32세에...
아버지는 일본인들에게 맞아 정신병자가 됐고
본인도 가난과 정신병에 찌든 불우한 인생을 살다가
1934년, 32살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石川啄木 (いしかわたくぼく이시카와 타쿠보쿠,1886-1912)는 26세(스무여섯)에...
1912년 3월에는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1912년 4월에는 그 자신이 빈곤과 폐결핵으로 도쿄 고이시카와구의 셋집에서 죽음을 맞았고
1913년 5월에는 그의 아내 세츠코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하늘의 재산이 아닌 것은 하늘의 은총인가 저주인가?
소승도 준 천재가 되는 기회가... 40대 중반에 심장마비가 스쳐 지나간 사연이~.
나도 하늘의 것임을 알았지만~
하느님 수첩 한 참 뒷장에 등재 되었던지 아직은 별 볼 일이 없었나~ 이승의 개똥밭에 여전히 나뒹구는 신세로다.
이승의 내 신세 비록 개똥밭에 나뒹굴지만 이 호흡 감사하며~ 전분세락(轉糞世樂)할 일이라...~
인생 산책길에 는개비는 내리고...ㅎ~
~2~
"初 恋 (はつこい, 하츠코이, 첫사랑)" 노랫말은
26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 石川啄木(いしかわたくぼく;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 『一握の砂(いちあくのすな;한줌의 모래) 』이다. * 啄木 (たくぼく:타쿠보쿠)--딱따구리*
石川啄木像
~하코다테 오오모리 바닷가~
北海道(ほっかいどう) 函館市 (はこだてし)大森浜 (おおもりはま) 啄木小公園(たくぼくしょうこうえん)
~호ㅊ카이도. 하코다테시. 오오모리하마(바닷가). 타쿠보쿠 소공원~
1907 년 (메이지 40 년) 이시카와 타쿠 보쿠가 하코다테에 이주하여 오오모리 바닷가 에서 모래산 사랑노래를 읊은 것을 기려,
1958 년 (쇼와 33 년), 오오모리 바닷가를 따라 "타쿠보쿠 소공원"을 정비하고 조각가 *本郷新(혼고우신)작품의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동상'을 세웠다 .
*本郷新 (ほんごうしん혼고우신) : 조각가, 札幌 출신, 高村光太郎에게 사사
初 恋 (はつこい, 첫사랑)
**************************************
作詞 石川啄木(いしかわ たくぼく) / 作曲 越谷達之助 (こしたに たつのすけ)
作詞 이시카와 타쿠보쿠 / 作曲 코시타니 타츠노스케
唄 : 倍賞千恵子 ( ばいしょう ちえこ)
唄 바이쇼 치에코
https://www.youtube.com/watch?v=Z8d0fuSMLYk
※ 砂山の 砂に 砂に 腹這い
스나야마노 스나니 스나니 하라바이
모래산 모래에 모래에 엎드려
初恋の いたみを
하츠코이노 이타미오
첫 사랑의 아픔을
遠く 思い出ずる日※
토오쿠 오모이 이즈루 히
아득히 회상하는 날
初恋の いたみを 遠く 遠く
하츠코이노 이타미오 토오쿠 토오쿠
첫 사랑의 아픔을 아득히 아득히
ああ ああ 思い出ずる日
아~ 아~ 오모이 이즈루 히
아~ 아~ 회상하는 날
※ 모래산~~~ 회상하는 날 ※
※くり返し
※ 반복
~~~~~~~~~~~~~~~~~~~~~
첫사랑의 아픔이 회상되던 날~
죽기를 단념한 시인의 설움은
나도 몰래 맺히는
눈물 한 방울...
가난과 고달픈 떠돌이 삶과 고난과 , 겹치는 불운과 질병과 단명과....
그래서 딱따구리 타쿠보쿠는
딱따구리처럼 맘껏 시가(詩歌)를 토해내고 일찌감치 훌쩍, 저 하늘 멀리 날아 갔는가...
아래는 26세 2개월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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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우한 천재, 요절한 천재 시인
石川啄木 (いしかわたくぼく,이시카와 타쿠보쿠1886-1912)는 1886년 이와테켄(岩手県) 南岩手郡 日戸(ひのと)村에서
죠코지( 常光寺) 주지의 맏아들로 태어나
1912년 26세 2개월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이며 가인(歌人)이다.
본명은 하지메 はじめ (一). 1902년 모리오카 (盛岡)중학교 자퇴
중학교 재학중에 요사노 아키코(与謝野 晶子)와 잡지 묘조(明星)의 낭만주의 문학에 영향을 받아 타쿠보쿠(*딱다구리)라는 필명으로 등단하였다.
*요사노 아키코(1878년 ~ 1942년)는 일본 제국의 와카(和歌) 작가이다
*단카(短歌, tanka)라는 용어는 와카[和歌]라는 용어와 같은 뜻이지만,
와카는 뜻이 좀더 광범위하여 고전적 형태를 가진 일본의 모든 전통 시를 가리킨다.
1905년에 낸 처녀시집 《동경(憧憬)》은 그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무렵 타쿠보쿠는 호리아이 세츠코와 결혼하여 생활인으로서 현실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고향 시부타미(渋民,岩手縣) 마을로 돌아가 모교에서 임시교사로 일하게 된다.
1906년 자연주의적인 소설 <구름은 천재이다>를 발표하고,
1907년 가족과 함께 훗카이도로 건너가 하코다테, 삿포로,오타루 등등을 전전하며 유랑하였다.
1908년 단신으로 도쿄에 상경하여,
1910년에 처녀가집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를 간행함으로써 가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사상에 몰입하여
평론 <시대폐색의 현상(1910)>을 쓰고, 시집 <호루라기와 휘파람(1911)>을 간행하였으나,
*1912년 3월에는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거하고,
*1912년 4월에는 그 자신이 빈곤과 폐결핵으로 인하여 도쿄 고이시카와구의 셋집에서 죽음을 맞았고
*1913년 5월에는 그의 아내 세츠코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이듬해 6월에 두 번째 가집 <슬픈 완구>가 간행되었다.
26년 2개월의 짧은 생애에 4,000여수의 단가를 남긴 그의 시는
국경을 넘어 13개국어로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으며 일본 전역에 걸쳐 110개의 시비, 동상 등이 있다.
불우, 요절한 타쿠보쿠는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그의 시가는 후대의 가인들에게는 물론 수많은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한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작품 <한 줌의 모래 一握の砂>는
1908년부터 1910년까지 지은 단가 중에서 551수를 모아 수록한 타쿠보쿠의 첫번째 가집이다.
타쿠보쿠는 <한 줌의 모래>의 모두에 서문을 쓰고,
551수를 각각
[나를 사랑하는 노래], [연기], [가을 바람의 상쾌함에], [잊지 못할 사람들], [장갑을 벗을 때] 등 5개의 장으로 나누어
관념 연상의 방법으로 편집하였다.
< 한 줌의 모래 一握の砂>의 매력은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에 대한 인간애와 인간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평이하고 쉬운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
제1시집 <憧憬>. 처녀소설 <구름은 천재이다> 를 간행. 생활고에 시달리며 문필생활을 시도하나 여의치 못하고
3행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短歌集 <한 줌의 모래>를 간행. 그 감상적인 서정으로 후세에 오래 애송되고 있다.
작품 一握の砂 と 我を愛する歌은 그 중의 일부이다.
또한 도키 아이카(土岐哀果)의 영향으로 단가를 3행으로 나누어 쓴 것도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폐결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몸져누운 채 친구이자 편집자인 도키 아이카를 집으로 부른다. 병마에 시달려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로 친구를 맞이한 다쿠보쿠는 한 권의 노트를 그에게 건네준다.
제목도 없이 194수의 단카가 실린 ,작가 자신이 ‘음산한 노트’라고 부른 그 노트는 도키 아이카의 손에 쥐어졌고 다쿠보쿠는 그에게 “만사를 잘 부탁한다” 고 말한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꿈을 쫓으며 작가로서의 성공을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다쿠보쿠는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1912년 4월 13일 오전 9시 30분 경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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