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라그라스에 위치한 유서 깊은 생마리 수도원(Abbaye Sainte-Marie)에선 매일을 그레고리오 성가(聖歌)와 기도, 명상으로 보내는 사제들과, 공적 생활에서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진보주의 지식인‧문학가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프랑스 르몽드와 영국 더 타임스 등이 최근 보도했다. 샤를마뉴(샤를 대제) 즉위 이전인 779년에 세워진 이 수도원의 3분의2에 해당하는 공간에선, 40명의 사제가 엄격한 가톨릭 교회법에 따라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러나 나머지 공간에선 나이든 진보주의 지식인과 문학가들이 에로 영화를 튼다.
어울리기 힘든 두 집단이 한 지붕 밑에서 ‘수상한 동거’를 시작한 사연은 이렇다. 이 수도원이 2004년에 매물로 나오자, 가톨릭 측에서 260만 유로(약 35억 원)을 내 사들였고, 나머지는 라그라스 마을이 속한 오드 주(州)가 샀다. 가톨릭이 차지한 교회‧정원‧회랑 공간에선 사제들의 공동 생활이 시작했고, 극장‧지하실‧본관 일부 등 나머지 공간은 극좌파 활동가들의 모임인 ‘북마크(Le Marque-page)’가 운영하게 됐다.
평화를 먼저 깬 것은 ‘북마크’쪽이었다. 2007년 진보주의자들은 연례 문화행사를 하면서, ‘섹슈얼 나이트(Sexual Night)’라는 에로 영화 상연 시간을 가졌다. 성적 가학(加虐)행위인 새디즘의 고전이라 할 ‘소돔의 120일’과 같은 작품들을 소개했다. 수도원에서 에로 영화라니! 사제들은 이 ‘불경한’ 도발에 분노했고, 한동안 모욕과 생명을 위협하는 언사들이 오가다 잠잠해졌다.
양측의 아슬아슬한 휴전은 지난달 말 ‘삼일낮,삼일밤(Trois jours et trois nuits)’이란 책이 나오면서 다시 깨졌다. 프랑스의 우파 작가 14명이 지난 6월 사제들과 3일 밤낮을 함께 하면서 수도원 생활을 체험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프랑스의 가톨릭 매체인 ‘라 크로아(La Croix)’는 “영적으로 갈급한 프랑스 사회가 인정해야 할 책으로, 기도와 명상, 공동식사 등 수도원 체험을 흥미롭게 묘사했다”고 평가했지만, 좌파는 반발했다.
좌파 지식인 단체인 ‘북마크’는 이 책은 자신들의 진보적인 삶뿐 아니라, 국가를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해낸 프랑스 혁명 정신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북마크’의 장-미셸 마리우는 “우리 텃밭에서 우리 문화를 공격했다”며 “대량 이민 유입으로 프랑스가 이슬람화하는 상황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라’고 부추기는 우익 어젠다의 일부”라고 했다. 물론 사제들은 그런 정치적 어젠다를 부인한다.
더 타임스는 “인구 600명인 라그라스 마을과 생마리 수도원이 이슬람공포증에 휩싸인 우파 가톨릭 세력과 세속적 가치를 지지하는 좌파 간 문화전쟁의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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