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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통신조회 의혹, 공수처 어물쩍 넘길 생각 말라

Jimie 2021. 12. 30. 05:09
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마구잡이 통신조회 의혹, 공수처 어물쩍 넘길 생각 말라

입력 2021-12-30 00:00업데이트 2021-12-30 03:03
 
김진욱 공수처장이 29일 오전 경기 과천청사 공수처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국민의힘 의원 105명 중 적어도 78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윤석열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 씨의 통신자료도 조회했다고 밝혔다. 기자, 교수, 시민단체 관계자 등에 이어 야당 인사들에 대해서도 대규모 통신조회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다.

통신조회 대상 중에는 공수처와 무관한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등 공수처가 통신조회를 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도 여럿 포함돼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가 공수처에 넘어갔으니 더욱 불쾌하게 느꼈을 것이다. 통신조회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라도 공수처가 수사에 지장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논란의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통신조회를 하게 된 경위를 밝히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24일 입장문에서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고 했다. 불법은 아니니 비판의 소나기만 피하면 어물쩍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욱이 언론·야당에 대한 마구잡이 통신조회라는 지적까지 받아가면서 저인망식 수사를 펼친 것에 반해 공수처의 수사 성과는 초라하다. 고발 사주 사건은 손준성 검사를 불구속 기소하고 국민의힘 김웅 의원을 검찰에 송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라고 한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등에 대한 수사도 별 진척이 없다. 이러니 설립한 지 1년도 안 된 공수처를 폐지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고개를 드는 것이다.

통신조회 남용은 비단 공수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검찰 184만 건, 경찰 346만 건, 국가정보원 4만 건 등 수사기관들이 통신자료를 조회한 건수는 총 548만여 건에 달한다.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수사기관이 통신조회를 할 수 있게 돼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이 조항이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사생활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삭제를 권고했다. 2016년에는 참여연대 등이 헌법소원을 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나서서 수사기관이 과도한 권한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