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의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孫詩鄕)

Jimie 2021. 12. 20. 14:31

 

 

[박성서 칼럼] 대구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대구]

2021년 06월 09일 (수) 02:19:36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대구 가수 3人3色-남일해, 방운아 그리고 손시향과

 

 

머리, 양복, 구두를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곳, 대구는 또한 전국 도시 중 막걸리를 가장 많이 마시는 곳이기도 하다. ‘서민의 술’을 즐기는 정 넘치고 전통을 중시하는 곳인 것이다.

 

대구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대구는 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지만 서울, 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구 출신 가요인이나 노래는 적다. 대구에 세워져있는 대중가요 관련 노래비도 ‘비 나리는 고모령(현인)’, ‘능금 꽃 피는 고향(패티김)’, ‘빨간 마후라(쟈니브라더스)’ 그리고 새롭게 부각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정도다. ‘문화도시 대구’라는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셈이다.

 

그러나 한때 대구가 우리나라 가요계의 중심에 서서 우리나라 가요의 흐름을 이끌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사상 최악의 침체기였다고 평가되는 6.25 한국전쟁 시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덜 받았던 탓에 음반 산업과 함께 공연이 꽃피울 수 있었다.


대구를 소재로 하여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노래들을 살펴보며 ‘대구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대구’, 그리고 ‘노래 속에 나타난 대구사람’의 모습을 살펴본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포근하고 달콤한 느낌의 목소리로 한국의 이브몽땅 혹은 한국의 퍁분으로 불리었던 손시향.

 

검은 장갑

1958   손시향,

손석우 작사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LxAeHcr0_WU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의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孫詩鄕)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등 주로 스탠다드 팝 스타일의 노래를 구사하던 미성의 가수 손시향.

 

활동 당시 무려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을 정도라고 알려진 그는 50년대 미8군쇼 무대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일반무대에 등장하면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본명 손용호. 1938년 대구에서 1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는데 바로 밑의 여동생이 미스코리아 출신배우 손미희자.
손시향은 주로 작곡가 손석우와 콤비를 이뤄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 ‘검은 장갑’, '거리를 떠나', '사랑이여 안녕', '사랑의 자장가', ‘이별의 종착역’ 등.


미남, 미성 가수의 대명사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손시향은 영화배우 신성일과 대구 경북고 동기동창. 함께 기타를 배우던 단짝이었다.


강신성일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 배우가 된 계기가 바로 가수 손시향으로 부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삼수생의 길을 걸게 된 강신성일이 어느 날 학원을 가던 도중 우연히 길에서 인기가수가 된 손시향과 마주친다. 이미 톱 가수가 되어있는 손시향과 겨우 악수만을 나눈 뒤 주위 스타들과 함께 바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는 입시학원으로 가던 발걸음을 연기학원으로 돌린다. 이후 강신성일 역시 ‘로맨스 파파’ 등에 출연하면서 스타의 길을 걸게 된다.


손시향이 출연한 영화들은 ‘이별의 종착역’과 ‘심야의 부르스’ 그리고 ‘비 오는 날의 오후 세시’ 등.

동시에 여러 영화주제가를 발표했다. 영화 '이별의 종착역'의 주제가를 비롯해 '고바우'의 주제가인 '인생을 즐겁게'와 '촌색시'의 주제가인 '조용하고 싶네', 그리고 ‘비 오는 날의 오후 세시’ 등.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는 ‘심야의 부르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극중에 등장하는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의 멤버. 영화 속 '블루벨즈'의 멤버는 손시향을 비롯해 박일호, 현양 그리고 김성배. 말하자면 솔로가수로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가수들이 쿼텟으로 분장해 등장한 것.


손시향은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등으로 이미 최고 인기를 누리던 톱스타였고 박일호(본명 박응호)는 1958년 '메아리 사랑'으로 데뷔, 역시 '비 내리는 일요일'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던 솔로가수. 또한 서울대 음대 출신의 현양(본명 정운화)과 드러머 출신 김성배 또한 각각 솔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행된 야간촬영에서 '꿈속의 사랑(현인 노래)'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바로 그날 아침, 손시향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 영화 출연을 끝으로 61년 6월,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긴 손시향은 미국을 비롯해 유럽, 남미 등으로 공연을 다녔고 그 해, 스웨덴 여성인 마리스와 결혼했다.

▲ 손시향 발표 음반들. 그리고 작곡가 박춘석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는 미8군쇼 시절의 가수 손시향


이후 미국 마이애미에 정착, 'Lee Sohn'이란 이름으로 앨범 'at the PLACE PIGALLE'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음반은 당시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비치에 있던 그의 집에서 직접 취입했다. 이후 1970년에 잠시 귀국, '손시향 귀국 기념 제1집/나는 믿지 않는다'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마리스와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손시향은 지난 2005년 필자와의 통화에서 미스코리아 출신 여동생 손미희자를 비롯해 가족 모두 마이애미에 거주하며 마이애미의 한인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계속) NM

 

이수미-검은 장갑

https://www.youtube.com/watch?v=Jc9ccMV6ibM 

검은 장갑 - 손시향

 

1958년 1월 새해 꼭두새벽에 쓰인 이 곡은 신년 특집방송을 마치고 남산 KBS앞 산길다방에서 출연진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던 당시 KBS 악단장 손석우는 하루 종일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음악 관련
얘기로 옮겨가면서 노래의 소재에는 제약이 없다는 취지로 같은 자리에 있던 여가수가 끼고 있던 "검은 장감 "도
소재가 될수 있는 것이라 호언을 하고는 집으로 와 오선지에 "검은 장갑" 제목만 써놓고 고심하던 차에 아내가
"어머! 당신 우리들의 연애시절을 노래로 만들려는가 보군요?  검은장갑이라고 써있는 걸 보니 그렇죠? 호호호"
하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눈이 많이 내렸는지 모르겠어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를 불러내 늦도록 함께 있기를
바라고, 집앞까지 바래다 줄 때도 헤어지기 싫어 검은 장갑 낀 손을 꼭 잡고서는 놓아주지 않았죠."
 
손시향이 부른 "검은 장갑"은 이날 손석우 아내의 이 연애담에서 태어났다.
 
검은 장갑은 1절만 있던 곡으로 1절을 두번 불렀는데, 손석우는 곡이 나온 후인 2003년 2절을 완성하여 붙였다.
2절 가사는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은 듯 낯설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굳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잔을 비고 청해봐도 오지 않는 잠이여

닿지 않을 사랑이면 잊느니만 못해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라

검은 장갑 어울리는 마음의 사람아

 

"검은 장갑"은 인기를 업고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검은 장갑"에서 주는 강한 이미지 때문인지 반공드라마였다.
영화음악은 손석우가 맡았고 김성민 감독에 박노식, 황수연, 염앵란, 남미리, 장민호 등이 출연하여
일본교포 북송 계기로 일본에서 암약하는 간첩단을 토벌한다는 내용으로 일본 로케이션 촬영이 있었다.
1963년 명보극장에서 개봉했고 이어 재개봉관에서도 개봉한다.
 

                                               영화 "검은 장갑" 신문광고 포스터 - KMDB 참고

  

 
포스터의 아래의 극장이름들이 낯설지 않다.
서대문 충정로의 동양극장(국내 최초 연극전용 극장으로 1935년 개관, 1976년 폐관),
청량리의 오스카 극장, 시경 건너편 남대문시장입구의 남대문극장, 남영동의 성남극장,
신림동의 신림극장, 인사동입구 낙원상가에 자리잡았던 낙원극장. 당시 이 극장들은 개재봉관 들이었다.

손시향의 목소리는 포근하고 달콤한 느낌으로 한국의 이브몽땅 혹은 한국의 팻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목소리보다 더욱 부드럽다는 생각이 든다.
 
삼촌과 큰 형들이 손시향의 창법과 목소리를 흉내내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분들이 한두 분 떠나고 있으니 손시향의 노래를 통해 기억 속의 목소리를 끄집어내 들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