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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제재 없애야 종전선언"…美는 보란듯 이영길 딱지 붙였다

Jimie 2021. 12. 11. 16:07

北 "제재 없애야 종전선언"…美는 보란듯 이영길 딱지 붙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12.11 11:11

업데이트 2021.12.11 12:42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민주주의정상회의 폐회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첫 대북제재에서 저격한 것은 핵과 미사일이 아닌 인권 유린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핵심으로 내세운 ‘가치 외교’에서 북한도 예외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권 문제는 북한이 종전선언과 연결시킨 적대시 정책 및 이중기준과도 직결된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0일(현지시간) 북한의 이영길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등을 제재 대상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웜비어 언급 “北 사법 불공정”

OFAC는 “북한 내에 거주하는 이들은 강제노동, 지속적 감시, 인권 및 기본적 자유들에 대한 심각한 제한에 시달리곤 한다”며 “중앙검찰소와 법원 체계는 기본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통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행위를 벌주는 데 활용됐다”고 중앙검찰소에 대한 제재 사유를 밝혔다.

또 “이런 공정하지 못한 재판에서 북한의 악명높은 노동교화소에서 복역하라는 판결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는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이 운영한다”며 “이영길은 전 사회안전상이자 현 국방상”이라고 이영길에 대한 제재 사유를 설명했다.

지난 9월 이영길 국방상의 국무위원회 위원 보선 소식을 전한 노동신문. 뉴스1

OFAC는 북한에서 관광 중이던 지난 2016년 노동교화형 15년형을 선고받고 가혹한 처우에 시달리다 2017년 귀국 직후 결국 사망한 오토웜비어의 사례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인 웜비어같은 외국인 역시 이런 북한의 불공정한 사법 시스템의 피해자가 돼 왔다. 살아있다면 이제 27세가 됐을 웜비어에 대한 처우와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실은 (북한이)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다.

 

바이든 “행동” 강조 직후 제재

이날 제재는 세계 인권의 날에 맞춰 발표됐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정상회의(9~10일)를 소집해 “민주주의는 상태가 아닌 행동”이라며 전 세계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 직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계속된 대화 제의에도 북한이 꿈쩍하지 않자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이번 제재는 그보다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해 정부 출범 때부터 강조한 가치 외교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 본격적인 동력 확보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날 발표된 제재 역시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미국은 북한만 제재한 것이 아니다. OFAC 보도자료의 가장 앞머리에 명시된 것은 신장의 인권 유린에 관여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였고, 그다음으로는 방글라데시 내에서의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한 제재를 가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미얀마 내 인권 상황과 관련된 제재도 함께 이뤄졌다.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은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재무부는 심각한 인권 유린을 저지른 자들을 공개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자체적인 수단을 썼다”고 설명했다.

2017년 북한최고재판소에서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은 미국인 오토 웜비어. 로이터=연합뉴스

“北 변화없이 제재완화 없다” 확인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첫 대북 제재에서 인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향후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이를 중요한 원칙으로 가져가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는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 섣부른 제재 완화는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제재 발표에 북한은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최근 한국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적대시 정책 및 이중기준 철폐를 조건으로 걸었다. 그간 북한은 제재를 대북 적대시 정책, 인권 문제 제기를 이중기준 적용으로 받아들여 왔다.

이는 임기 말 종전선언 진전에 몰두해온 문재인 정부 역시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일부 제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이런 한국의 입장을 모를 리 없는 바이든 행정부가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한 건 결국 한국과 긴밀히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권이나 제재 유지 등 원칙은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첫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은 10일(현지시간) 북한을 비롯해 중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상황과 그에 따른 제재대상을 밝혔다. 재무부 웹사이트 캡처

해외노동 관여 중ㆍ러도 제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해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도 주목했다. OFAC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감시당하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급여 상당 부분을 정권에 압수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397호가 각국에 “2019년 12월 22일까지 자국 내 모든 북한 국적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명시한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학생 비자나 관광 비자 등 편법을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여전히 저임금의 이점을 노린 북한 노동자 고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OFAC는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수백 건의 학생 비자를 발급한 러시아 대학 ‘유러피안 인스티튜트 주스토’와 교무처장 드미트리 유리비치 수아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또 북한 정권이 운영하는 ‘조선 4ㆍ26 아동영화촬영소’(SEK Studio)도 제재 대상에 포함했는데, 중국에 애니메이션 관련 노동자들을 보내 작업을 수주하는 한편 다양한 유령회사를 운영하며 제재를 회피해왔다는 이유다. 조선 4ㆍ26 아동영화촬영소와 연관된 중국의 애니메이션 관련 업체와 개인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지난 2019년 12월 북한 해외노동자 송환 시한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출국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나 핵 활동 징후가 있을 때마다 “각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라”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이에 따라 먼저 본보기를 보인 셈이다.

또 북한의 제재 회피 행위와 연루된 중국과 러시아 단체 및 개인을 제재한 것은 북한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단체나 개인도 제재) 원칙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OFAC는 이날 북한 관련 제재 대상에 ‘세컨더리 주의’라는 표시를 했는데, 이들과 거래할 경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