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국립공원 *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 수호공적비 * 만물상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 수호공적비 해인사 진입로 삼선암 입구에 세워진 공적비는
부지면적 118㎡ 높이 2.3m 기단부 17.5㎝로 팔만대장경판을 본뜬 오석과 황동석으로 만들어졌다.
총 978자로 만들어진 비문은 지관 스님이 글을 짓고 서예가 송천 정하건씨가 글씨를 썼다
동족상잔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던 1951년 9월 18일 미군으로 부터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4기의 공군 편대장은 김영환 대령이였다.
해인사는 최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국보중의 국보인 고려 고종때 15년의 세월에 걸처 조성된
8만1천2백5십8장의 고려대장경 사간본이 보존된 법보사찰이고 당시 전투기는 네이팜탄과 로케트탄을 싣고 있었는데
네이팜탄 하나만 터트려도 해인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로 변해 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김영환 장군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해인사와 뚝 떨어진 곳에 기관총만 쏘았다고 한다.
해인사 전경 | 경상남도 합천 가야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해인사는 신라 제40대 애장왕(802) 처음 창건되어 고려 때 제작된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 사찰이다.
장경판전 전경 |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장경각은 모두 4동으로 이루어진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이미지의 오른쪽이 수다라장이고, 왼쪽이 법보전, 뒤쪽이 동사간고, 앞이 서사간고이다.
해인사를 폭파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당시 가야산 일대 인민군 낙오병과 유격대의 근거를 없애기 위함인데
당시 해인사 주지스님은 유격대 지도부와 담판을 통해 "당신들이 이곳을 떠나 찬란한 민족문화의 보고인 해인사를 폭파할 빌미를 만들지 말라"했고 유격대는 얼마간의 식량을 얻어 그곳을 곧 떠났다고 한다.
어이하든 전시에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즉결처분을 받으 수 있어 감히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항명이었다.
민족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깊은 인식으로 명령을 거부하고 해인사와 대장경을 지킨 편대장은 당시 31세의 김영환장군(당시 대령)이었다. 문무를 겸비한 용감한 애국 호국 영웅이 아닐 수 없다.
불복종죄로 미군 작전 사령부에 호출되어 간 김영환장군은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법보사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로 '영국사람들이 말하기를 영국의 대 문호 세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데 우리는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는 바꿀 수 없는 보믈중에 보물이다" 라고...
이런 당당한 태도에 미군 작전 장교는 젊은 공군 편대장의 조국 문화사랑에 감복했다는 것이고
조사를 하던 미군소령은 벌떡 일어나 "김영환 대령님 같은 훌륭한 상관을 모신 대한민국의 공군 장병이 부럽습니다"라 말했다 한다.
한편 경무대에서 이 보고를 받은 이승만대통령은 노발대발하면서 당장 사형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데
동석한 김정열 공군 참모총장이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 김장군의 뜻을 전달하고 설득하여 사형은 면했다고 한다.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될 번한 세계에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한 젊은 영웅의 목숨을 건 결단으로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해인사와 조계종은 1997년 고려대장경판(국보32호),대장경판전(국보52호)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김영환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 2002년 6월 해인사 입구에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를 세우고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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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큰법당, 대적광전이다
잡목사이로 가야산정상이 시야에 들러온다
등산로를 10여미터 벗어난 곳에 보물제264호인 해인사 석조여래 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석조여래 입상 주변의 바위
*.석화성의 한 침봉
*.해인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천대
가야산 상왕봉(우두봉)은 동서로 길게 암봉을 늘어놓은 형국이다
밑둥의 길이가 500m가 넘는 긴 암괴의 중앙부에 솟은 암봉이 해발 1,430m의 삼각점이 설치된 상왕봉의 정점이며
남동쪽으로 직선거리로 600여m 지점의 암봉이 칠불봉이다. 상왕봉은 합천군에 속한다
*.상왕봉으로부터 600여m 떨어진 곳에 솟아있는 칠불봉은 성주군에 속한다.
성주군의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3m 더 높은 1,443m라고 한다.
국립지리원에 의뢰해 이러한 사실을 밝혀낸 성주군은2000년 칠불봉 정상에 별도의 표지석을 세웠다.
칠불봉으로 가는길에 돌아본 우두봉의 모습이다
칠불봉 정상에 서다
칠불봉 정상석 기단에는 가야산 칠불봉에 얽힌 전설이 설명되어 있다
김수로왕의 일곱아들이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 칠불봉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생불이 되었다고 전한다
*.칠불봉에서 우두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모습
*.칠불봉에서 조망되는 성주군 백운동지구의 모습이다. 가운데 침봉 능선이 만물상 능선이다
*.칠불봉에서 조망되는 합천군 해인사지구의 모습이다
*.파노라마로 잡아본 백운동,해인사 지구의 모습
칠불봉을 뒤로하고 서성재로 향하는 계단길에서 진객을 만나다
비바람에 씻기우고 천만사람의 손때가 묻은 고사목이 가야산을 지키는 수호신인양 어제도 오늘도 이자리에서 천명을 다하고 있다
*.칠불봉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무명봉 ?
*.하산길에 만난 소나무들
서성재(해발1110m)
만물상코스로 내려가면서 뒤돌아본*가야산의 정상부의 모습
*.파노라마로 잡은 만물상 능선
멀리 대구시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상아덤(서장대)의 아름다운 모습
상아덤은 가야국의 창설화가 얽힌 곳으로 성주군에서 설치한 설화 내용 안내판이 있다
이 봉우리에서 는 가야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만물상능선이 갈라져 나가기도 한다
*.상아덤과 가야국에 얽힌 이야기
*.상아덤에서 조망되는 칠불봉과 상왕봉의 모습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이른 그대로 석화성-검은 바위의 불꽃을 이루었다
만물상 능선은 1972년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되면서 통제구간이었던 만물상 코스가 2010년 6월12일 개방되었다
만물상 탐방로는 경북 성주군 백운동 야영장에서 부터 만물상을 거처 서성재까지 3km구간으로 서성재는 기존 탐방로와 연결돼 칠불봉 상왕봉으로 이어진다.
이곳 탐방로에는 가야산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상아덤(서장대)를 비롯
곰,자라,부처,같은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들쯕날쭉 솟은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기암 ,괴석들이 연이어 진다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줄비하다
멀리 대구가 지척이다
*.흙한줌 없는 바위틈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소나무
*.지나온 만물상 능선
*.백운동탐방지원센타 너머로 칠불봉 능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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