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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봉 "'물태우' 국민 능동적 관심 표현..6·29선언, 선거용 아냐"

Jimie 2021. 10. 31. 09:17

 

노태우 영결식 추도사인데… 김부겸 "공도 있지만, 5·18 사과 직접 안 했다"

대한 불만과 책망이 들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김부겸, 노태우 영결식서 유족 향해 "사과 이어가라"김부겸 총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 추도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최대의 올림픽을 치렀고 세계에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줬다"며 "소련과 중국을 포함해 5년간...뉴데일리

 

노태우 국가장서 '쿠데타 옹호' 추도사 낭독한 전직 총리

'노태우 청와대 비서실장' 노재봉 전 총리, 추도사 낭독"문맹률 80% 난장판서 軍 통치기능 참여 숙명이었을지도"서울신문

 

 

“(노 전 대통령 등 정규 육군사관학교 1기생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

“이것이 그들(육사 1기생)로 하여금 통치 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


이날 노 전 총리의 추도사는 고인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나 군부의 12·12 쿠데타 및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노 전 총리의 발언과 관련, 고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당 관계자는 “당시를 우리나라 민주화의 최대 암흑기로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상처가 될 발언”이라고 비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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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 엄수된 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울먹거리며 추도사를 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노재봉 "'물태우' 국민 능동적 관심 표현..6·29선언, 선거용 아냐"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honnezo@edaily.co.kr)2021.10.30. 11:

 

30일 故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 거행
노재봉 전 총리 추도사 통해 고인 기려

노재봉 전 국무총리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이듬해 대선을 위한 승부수가 아닌 시대 흐름의 변화를 확인하는 선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사진=연합뉴스)


노 전 총리는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 (노태우) 각하께서 하신 6·29 선언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승부수라고 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에 이어 바뀐 한국사회 구조의 변화를 확인하는 선언이었다”고 밝혔다.

6·29 선언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대표위원이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 특별선언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다음해 집권을 위해 마지못해 한 선언이었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고인이 바뀐 시대 흐름을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이다.

노 전 총리는 “개인과 국가 간 직접적 지배와 복종 구조에서 영근 시민사회의 출현에 의해 체제의 변화를 확인해 준 최초 선언이었다”며 “각하께서 체제 변환을 전제로 저에게 (이 점을) 수없이 반복해 결의하셨던 걸 잊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리더십을 비하하는 별명이었던 ‘물태우’에 대한 언급도 했다. 노 전 총리는 “오랫 동안 권위주의에 익숙했던 이들은 각하를 ‘물태우’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며 “각하는 이를 시민사회 출현에 따른 능동적 관심이 싹트는 것이라고 판단하셨다”고 언급했다.

특히 “‘군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라는 고인의 말도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며 “한국전쟁 후에는 문맹률이 80%가 넘고 정규 육군사관학교 1기생 엘리트 장교들이 통치에 참여하는 것은 숙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91년 22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날 추도사를 낭독하며 수 차례 울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 등은 영결식이 끝난 뒤 오후 1시 30분께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진행한후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검단사에 임시 안치되었다.  묘지 조성후 통일동산에 안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