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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음악 대부' 정율성 ,中 인민음악가 정율성

Jimie 2021. 10. 23. 09:22

'중국 혁명음악 대부' 정율성 생가에 역사공원·기념관 조성

  • 연합뉴스
  • 승인 2020.05.24 10:03

광주시, 동구·남구 생가 부지 매입…2021년 준공

정율성 생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 출신으로 중국 3대 음악가인 정율성 선생의 생가에 역사공원과 기념관이 들어선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동구 불로동 정율성 선생 생가 부지에 역사공원을 조성한다.

공원에는 생가와 함께 광장, 정자, 관리실 등이 들어선다.

시는 최근 사유지인 생가 부지를 공원으로 변경하는 도시관리계획 결정 사항을 고시했다.

실시계획인가, 토지 보상, 기본·실시설계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에는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소유자로부터 생가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정율성 선생 관련 자료를 보존·전시하는 기념관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정율성 선생은 광주와 화순에서 자라다가 1933년 항일운동을 위해 형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오월의 노래(1936년)', '팔로군 행진곡(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 1939년)' 등을 작곡해 근·현대 중국 3대 음악가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다.

생가 논란으로 기념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다가 고증을 거쳐 2015년 관련 지자체인 광주시, 광주 동구·남구, 전남 화순군이 생가 논란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증을 통해 동구 불로동은 정 선생 부친과 형제, 조카 등 3대에 걸친 본적지다.

남구 양림동은 정 선생의 친필 이력서에 출생지로 적혀 있고 숭일학교, 양림교회, 오웬기념각 등에서 학업과 음악 활동을 펼친 곳이다.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는 3살 때인 1917년부터 능주보통학교 2학년이던 1923년까지 성장한 곳으로 정리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생가 부지를 매입해 역사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며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출처 : 광주데일리뉴스(http://www.gjdaily.net)

 

 

[신화통신 방문기] '동아시아의 혼' 한국 출신 中 작곡가 정율성 생가 방문영상

18 views

Jun 4,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6V0_xbrxqFw 

 

 

中 인민음악가 정율성, ‘조선의열단’ 활동으로 재평가 / KBS뉴스(News)

1,936 views

Jul 10,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bwdq7M0Lm4Y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단체인 '조선의열단'을 재조명하기 위한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가 발족했는데요.
조선의열단원 중에는 중국에서 3대 인민음악가로 추앙받는 정율성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항일 투쟁에 헌신했던 천재 음악가였지만, 국내에선 이념의 벽에 가로막혀 한동안 외면을 받았던 인물인데요,
그의 항일 정신과 음악적 재능을 기리고 있는 하얼빈 정율성 기념관을 김명주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항일전쟁 승리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가 울려 퍼집니다.
중국 군대를 상징하는 이 노래의 작곡가는 1939년 당시 25살 청년 정율성이었습니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19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 가입한 뒤 일본군 도청 업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천토우/하얼빈 정율성기념관 해설원 : "(조선의열단은) 주로 요인 암살과 폭파 위주의 항일 활동을 벌였는데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율성 등 단원들을 황푸군관학교(국민당 육군군관학교)에 편입시켰습니다."]
공산당 혁명 성지였던 산시성 옌안에서 작곡한 '옌안송'.
서정적이면서 웅장한 선율 속에 항전의 의지가 잘 표현돼 지금까지 중국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페이후이란/하얼빈 정율성기념관 관람객 : "자기의 삶을 혁명에 바쳤고 좋은 노래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정율성 선생을 매우 존경합니다."]
해방과 함께 북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북한군 공식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5년여 동안 북한에서의 활동 전력 때문에 국내에선 한동안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정샤오티/故 정율성 음악가 딸 : "(조선의열단원들도) 조선 독립을 위해 공헌을 했는데 한국 정부가 역사를 바로 받아들이고 공정한 평가를 해 주길 바랍니다."]
정율성 같은 조선의열단원은 천 명이 넘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는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이 분들의 후손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정율성 선생의 오페라는 최근 국내에서도 복원돼 무대에 오르는 등 한중 문화 교류의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얼빈에서 KBS 뉴스 김명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