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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Jimie 2021. 10. 5. 10:13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신동욱 앵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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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5,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kPW0QDWjqCU 

 

뉴스TV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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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용래는 '눈물의 시인'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운다"고 했습니다. 은행에 다니고 교단에도 섰지만 이내 그만두고 가난한 시인으로 살았지요.

그는 유난히 비를 좋아했습니다. 봄비는 ":유리병 속으로 파뿌리 내리듯" 오고, 여름비는 "귓전에 맴도는 목놓은 소리, 상아빛 채찍"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숨죽여 내리는 가을 밤비를 맑고 선명하게 그려낸 대표 시입니다.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며, 가을 빗소리"

시인 오세영은 가을비 내리는 밤이면 "꽃들도 악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치는 담쟁이, 실로폰 두드리는 방울꽃, 바이올린 켜는 구절초, 트럼펫 부는 나팔꽃, 북을 울리는 해바라기… 일상의 소음에 지친 우리를 사르르 잠들게 하는 가을비, 그 빗소리여"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긋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잠깐 내리다 곧 그친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가을을 재촉하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글피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떠나기 싫어 미적대는 늦더위를 마저 쓸어내려는 것일까요.

그러나 일상의 소음에 신경이 잔뜩 곤두선 우리는 가을비 오는 밤에도 쉬이 잠들지 못합니다. 진흙탕 싸움 같은 선거판에서 유리창 긁는 소리처럼 질러대는 소리들에 귀가 욱신거릴 지경이니 말입니다.

무슨 왕조시대도 아니고 봉고파직, 위리안치 운운하지를 않나, 손바닥에 쓴 임금 '왕'자로 부적-주술 논란을 일으키질 않나… '마귀'라는 호칭 역시 듣기가 불편합니다. 오죽하면 '더 나은 사람보다 덜 나쁜 사람 찍는 선거'라는 자조가 나오겠습니까.

이런 밤에는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15번'이 어울립니다. 왼손이 음울하게 반복하는 건반음이, 땅에 떨어졌다 튕겨오르는 빗방울 같아 흔히 '빗방울 전주곡' 이라고 부르지요. 폐결핵을 앓던 쇼팽이 적막한 수도원에서 혼자 빗소리를 들으며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을비가 씻어낸 하늘은 청명하기 마련입니다. 워터게이트 때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노래처럼 말입니다. 닉슨이 감추고 거짓말할수록 사람들은 추악한 진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햇빛 눈부신 날이 오겠지…"

이 비 그치면 우리들 어두운 마음에 맑고 밝고 투명한 가을 햇살 비쳐들기를 기다립니다.

10월 4일 앵커의 시선은 '이 비 그치고 나면'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