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
음해마공엔 음해마공…나찰수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이정재의 대권무림②]
중앙일보
입력 2021.09.17 05:00
업데이트 2021.09.17 11:18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화 법가쟁명(法家爭鳴):법 익힌 자들이 서로 뽐내다
나찰수(羅刹手) - 악귀를 잡아내는 손. 석열은 힐끗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남들이 솥뚜껑 같다더니, 그렇군. 이 손으로 처단한 악귀, 마졸이 몇 명이던가. 덕분에 강호에 허명을 얻었다. 무림 동도들이 과분하게 불러주는 이름 나찰수, 그런데 지금 이 손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출사표를 던진 지 어언 석 달. 시작은 의기충천했다. 이 한 몸 바쳐 강호를 도탄에서 구하리라. 그런데 이게 뭔가. 설익은 무공, 힘만 잔뜩 들어간 초식, 피아 구별조차 안 되는 투로(鬪路)라니. "악졸이나 잡을 줄 알지, 여느 무림 초출(初出)이나 다를 게 뭔가" 민초들의 수군거림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과욕이었나. 즙포(緝捕)사신이 고작 내 운명이었던가. 잡념은 사념이 되고 급기야 분노와 자괴감에 몸이 떨린다. 아니야, 초심을 생각하자. 내가 왜 무림출도를 결심했던가. 법가(法家)의 신수(神獸)를 재인군의 손에서 구해내겠다는 일념 아니었던가. 잊지 말자 초심, 기억하자 해치수(解廌獸). 그는 서울무림대학 법술개론편 첫 장 첫줄을 떠올렸다. 그래, 아직 시작일뿐이야. 그는 불끈 다시 손을 움켜쥐었다. 그 손을 일컬어 나찰수라 했던가.
법술개론 제 일장 제 일절. 법가(法家)의 신수(神獸)편
법가의 신수는 이름을 해치라 한다. 해치(解廌)는 도리를 아는 영수다. 고서『설문(說文)』은 해치가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일각수라고 적고 있다. 그 뿔의 형상이 소뿔 같기도 하고 사슴뿔 같기도 하다고 했다. 해치는 뿔로 죄지은 자를 치받아 물에 빠뜨린다. 선악, 진실과 거짓, 죄와 벌을 가른다. 강호인들은 흔히 법(法)이란 글자가 水(물)와 去(가다) 자가 결합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해치(廌)가 죄인에게 달려들어(去) 물(水)에 빠뜨리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법의 옛 글자는 灋(법)이다. 만민 평등, 민주 강호를 이루려면 해치의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 강호의 한 현자가 일찍이 예언하기를,
"해치를 길들이려 하지 말라. 해치는 길들이기도 어렵지만 길들여서도 안 된다. 해치가 한 인물의 손에 들어가면 강호의 질서가 깨진다. 신수는 잠시 복종시킬 수 있으나 끝내 고삐를 풀고 주인을 물어뜯는다. 독두(禿頭) 마왕 전두환, 철혈의 대제 박정희 모두 뒤끝이 좋지 않았는데, 어설프게 신수를 길들이려 했기 때문이다. 훗날 또다시 신수를 길들이려는 자가 나타날 터니, 그는 이를 '검찰개혁'이라 부르리라."
#재인군이 신수 해치를 손에 넣다
과연 그랬다. 19대 무림의 지존, 재인군 이니(二泥)가 신수 해치를 거의 완벽하게 제압했다. 과거 수많은 독재 군주들의 실패에도 재인군은 굴하지 않았다. "해치를 자유롭게 풀어 법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겠다"며 통치 기간 내내 밀어붙였다. 이니는 이를 '검찰개혁'이라 불렀다. 역대 지존 누구보다 법가의 초식과 내공에 익숙한 이가 재인군이다. 그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입으로는 신수를 풀어준다고 했지만 실제론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결과는 예언대로였다.
길들여진 해치는 영성을 잃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물어뜯었다. 급기야 흰 것, 검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됐다. 신수가 아니라 잡수(雜獸), 괴물이 됐다. 세상은 극히 혼탁해졌다. 무림언론재갈법, 윤미향보호법, 5·18처벌법, 특정무공사용금지법…, 법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법의 이름을 쓰고 등장했다. 검(檢)법과 판(判)법은 사사건건 혈전이요, 강호엔 네 법과 내 법이 따로 놀았다. 내 편은 흰 것, 네 편은 검은 것이 됐다. 그래도 신수는 침묵했다.
나찰수는 "끄응'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혼천세-극심한 혼란의 세상이다. 해치를 이니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하면 독재 무림, 사회주의 무림의 완성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법의 초식, 법의 내공을 익힌 법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실호기라. 나찰수 본인을 포함해 심술(心術)도사 홍준표, 직진필(直進筆) 최재형, 전 제주지사 희룡공자 등 야권무림의 법가들이 일제히 차기 지존좌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여당이 호락호락 지존좌를 내줄 리 없다. 이쪽에 나찰수가 있다면 저쪽엔 재명공자가 있다. 역시 법가 출신인 반푼공자 이재명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의 내공은 이미 법을 갖고 노는 단계에 다다랐다. 오죽하면 무림대법원은 그가 경기지사 비무 때 쓴 암수를 "정당하다"고 판결했을까.
#나찰수의 고발 사주, 전화위복이 되나
"고발 사주에 장모님 문건이라, 참 고약하게 됐군."
"끄으응~" 나찰수 윤석열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자칫 잘못 응수했다간 천 길 나락이 펼쳐질 터였다. 재인군과 그 일파들 손에서 신수 해치를 구해내기는커녕, 거꾸로 자신이 제물이 될 판이다. 무림이 본래 온갖 암계가 판치는 곳인 줄 진작 알았다만, 이건 너무했다. 고발 사주라니. 내가 그 엄중한 시기에 부하를 시켜 여권무림의 고수들을 고발한다? 신수 해치가 재인군 손에 꽉 잡혀 있는 걸 잘 알면서? 터무니 없는 소리. 어디 한 줄, 한 점이라도 흔적을 찾아봐라. 나올 턱이 있나. 오죽하면 감찰부가 이주야를 쥐 잡듯 뒤지고도 여태 '수사 전환'을 못하고 있겠나.
하기야 고발 사주는 내게 크게 나쁠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되레 도움이 됐다. 이쪽은 내가 강한 곳이다. 그러잖아도 적들의 집중포화에 내 군세(群勢=지지율)가 야금야금 떨어져 나가던 중이었다. 이럴 때 큰 싸움을 걸어주니 '그야말로 땡큐'다. 나는 싸움을 통해 성장했다. 조국-청와궐과 싸우면서 내공을 키웠다. 내 나찰수는 맞을수록 강해지는 무공, 큰 싸움일수록 내게 유리하다.
게다가 내겐 나찰수의 제 삼초식, 음해마공파쇄초식이 있다. 음해마공엔 극성이다. 음해마공을 쓰는 자가 많을수록 파쇄초식의 위력이 커진다. 지난 정권 때 이미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그네공주의 청와궐과 여권이 일제히 나를 공격했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는 불충인(不忠人) 초식 한 방으로 그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음해마공은 본래 무림정치법에 의해 엄격하게 금지된 마공이다. 하지만 당금 여권무림엔 이 무공을 익힌 자가 유난히 많다. 특히 법무판서 박범계, 무림정보원장 박지원, 팔방무희 조성은의 음해마공은 이미 여의도 바닥에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음해마공에 능숙한지,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공수처장 김진욱. 그가 하룻강아지처럼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 것도 음해마공에 동조한 것 아니겠나. 세상에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국민 관심 사항이라 입건"이라니.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즙포사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뭐 크게 나쁠 것도 없다. 어차피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는 싸움,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 때처럼 네 편의 진실, 내 편의 진실, 두 개의 진실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 이이제이, '고발 사주' 음해마공엔 '조작 사주' 음해마공으로 맞서는 게 상책이다. 강하게 더 강하게, 전진 또 전진. 하기야 이들 덕분에 잃었던 내 군세도 회복되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여권무림엔 최고 '엑스맨'이요, 내게는 둘도 없는 충신이 아니겠나. 엊그제 치른 야권무림 1차 경선 비무에서 강호인의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심술(心術)의 도사 홍준표를 박빙의 차이로 떨궈낸 것도 그 덕일 것이었다.
대권무림 다른 기사
#심술도사와의 싸움에 웃는 자 따로 있다
사실 나찰수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다. 장모님 문건이다.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누가 또 어떤 문건을 들고나올지 모른다. 청와궐부터 검찰까지, 여권무림의 모든 칼이 그를 노린다. 그는 즙포사신 시절 자기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출셋길이 막힌 누군가가 음해마공에 올라타면? 그렇게 만들어진 문건이 혹여 심술의 홍준표에게 들어간다면? 야권무림의 경선 비무가 문건 폭로 전투로 바뀌면? 가뜩이나 버거운 심술도사 홍준표와의 싸움은 더 격하고 더 어려워질 것이다. 누가 이기든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그 싸움을 지켜보며 씨~익 웃고 있을 반푼공자 이재명의 얼굴은 왜 또 갑자기 떠오른단 말인가.
상상하기 싫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더는 이런 폭로 문건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야. 무림 검찰이 어떤 조직인가. 목숨 걸고 정의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즙포들의 집합체다. 아무리 권세에 기울어졌다 해도 즙포들에겐 초심, 법도가 있다. 장모님 문건 같은 게 두 번 다시 튀어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도리도리, 강하게 고갯짓을 쳤다.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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