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동양방송 '청실홍실' 제1회...김세윤, 장미희, 정윤희 外

Jimie 2021. 9. 25. 16:35

청실홍실 제1회 / 극본 조남사

출연 김세윤 장미희 정윤희 김성원 백일섭 강부자 전원주 고강일 서승희 강부자 허진 문숙

[추억의 영상] 구 동양방송 TBC (1977년 7월 ~10월 방영 주말 연속극)

 

https://www.youtube.com/watch?v=dofMzrwsNJA&t=471s 

 

 

 

 

 

 

1954년 경상남도 충무(현재의 통영)에서 태어난 정윤희는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한 이후 박동명 사건으로 추락한 강경희와 양정화 대신 영화 '청춘극장'의 주연, 해태제과의 전속모델이 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7년 장미희와 함께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스타로 급부상했죠.1978년 당시 유행이었던 호스티스 소재의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의 주연을 맡아 흥행 성공을 이끌었고, 1979년 한 해에만 '죽음보다 깊은 잠' '도시의 사냥꾼' '가을비 우산속에'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무려 4편의 영화를 성공시키며 여배우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죠.

하지만 완벽한 미모의 정윤희에게도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바로 연기력. 연기력으로 주목받던 장미희에 비해 부족한 연기력으로 인해 '말뚝'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기도 했었고, 감독들은 정윤희의 미모와 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써야 한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1980년 이두용 감독의 영화 '최후의 증인'과 이듬해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에서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보여준 정윤희는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1981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통해 2년 연속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배우로서 완벽하게 자리매김합니다.

당시 정윤희의 인기는 국내를 뛰어넘어 해외로까지 뻗어나갔는데요.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두고 '아시아 최고의 미모'라고 찬사를 쏟아냈고, 영화 시상식 참석을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는 현지 기자들이 몰려 공항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우 성룡이 정윤희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며 이상형으로 정윤희를 꼽아 스캔들이 나기도 했죠. 요즘과 같이 한류 열풍이 불었던 것도 아닌 시기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윤희 조규영 간통 사건, 하지만 이조차도 영화 같았던 러브 스토리로

이렇듯 영화와 드라마, CF 모두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정윤희가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984년 정윤희 조규영 간통 사건입니다. 사건 당시 조규영 씨는 중앙산업개발 전무 이사로 정윤희보다 8살 연상인 유부남이었습니다. 1982년 결혼해 부인 박모 씨와의 사이에 두 살된 딸과 4개월된 아들도 있었죠. 그런데 1984년 8월 18일 새벽 3시경, 정윤희의 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09동 1302호에서 정윤희와 조규영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 조씨의 부인 박모 씨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이 들이닥쳐 현장에서 연행되고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