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이영도(1916~1976)와 청마 유치환(1908∼1967)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은 1908년 거제에서 출생하여 통영에서 자랐다.
23세인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 이란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으나
일제의 검속 대상에 몰리면서 만주로 나가 형의 농장일을 돕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통영으로 돌아와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정운(丁芸) 이영도(李永道)는 1916년 경북 청도에서 군수를 지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21살에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살던중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다가
해방되던 그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에 청마는 첫눈에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남보다 피가 뜨거운 청마는 청상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3년
마침내 정운도 마음이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어울림이었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었으며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청마의 가슴속에 자리한
연정의 조각은 가슴 저미는 쓰라림으로 남아있었다.
정운이 청마를 피해 잠적 했을 때 이때의 심정을 읊은 청마의 그리움이란 시입니다.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해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에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없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파도를 바라보며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으며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정운에게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으니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이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않던 정운의 마음이 어느날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하였다
그리움 / 이영도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수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울컥 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이 시를 받고나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 단계 초월하여
받는이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청마는 행복이라는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료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시와 더불어 보낸 편지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아무튼 청마는 생전에 5,000여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면서 장년기 제2청춘을
아름답게 엮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운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못하였으니 숱한 세월의 격랑속에서
긴 세월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시하면
내 사랑을 아지랑이 춘 삼월 아지랑이
종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무제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 시는 두 사람이 서로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으로
정운도 사랑에 대해선 퍽 용감하고 솔직한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스무해동안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빼지않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의 사랑은 청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나고 맙니다.
부산 남여상 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67년 2월13일 저녁 예총일로 문인들과 어울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 시내버스에 치여 59세의 나이에 붓을 영영 놓게됩니다.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바람이,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라.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 길입니까?
끝내 만리 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청마가 죽고 난 후 정운은 청마를 잃은 마음을 시로 남기며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로 맺혀 푸른돌로 굳어라
모란 / 이영도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네 목숨의 아픈 견딤이라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위 시를 보면 그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눈물겨운 것은
청마와 정운이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 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도 같고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글쓴이: 오겟지
청마는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통영여중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정교사인 정운을 마주치지만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연서로써 그리움을 달랜다.
1967년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20년 동안 청마가 띄운 연서는 모두 5000여통.
사모의 정을 담은 편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낸 셈이다.
그 중 200통의 이야기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 실려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울리고 있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이영도의 시를 보면 그녀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숱한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 '1967년 2월13일.
둘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후 2시쯤 청마는 그 약속을 취소한다고 전화했다.
예총 모임 때문에 못 만난다며,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반복했다.
다시 11시간 뒤쯤 전화가 왔다.
청마가 아니었다.
대학병원이라 했다.
청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미어졌다.
그날 밤 그녀는 미국에 가 있는 딸 진아에게 편지를 썼다.
‘그이가 죽었다. 그이가 죽었다’고.
청도 "오누이 시비공원’
스물한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만 길러온 이영도 시인에게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고 노래한 청마는 유부남이었다.
단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으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간듯 둘렀다.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 본관 경주)
1916년 경북 청도에서
할아버지는 이규현(李圭峴)이고, 아버지는 선산 군수 이종수(李鐘洙), 어머니는 구봉래(具鳳來)의 1남2녀 막내 딸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빠는 시조 시인 이호우(李鎬雨)이다. 딸은 박진아이다.
1945년 <죽순>에 시조 '제야'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여성 특유의 전통적 정서를 감각적 언어로 표현하였다.
1936년 21살에 대구의 부호집안 막내아들 박기주에 출가하여 1939년 딸 하나를 낳고 살던중 1945년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다가 1945년 그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여 동료 교사로 정운은 청마와 만났다.
스물아홉의 청상 정운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는 서른여덟 청마의 첫눈에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남보다 피가 뜨거운 청마는 청상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3년 마침내 정운도 마음이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어울림이었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었으며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청마의 가슴속에 자리한 연정의 조각은 가슴 저미는 쓰라림으로 남아있었다.
정운이 청마를 피해 잠적 했을 때 이때의 심정을 읊은 청마의 '그리움'이란 시다.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해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에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없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파도를 바라보며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으며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정운에게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으니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이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않던
정운의 마음이 어느날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하였다
그리움 / 이영도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수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울컥 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이 시를 받고나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 단계 초월하여 받는이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청마는 행복이라는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료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시와 더불어 보낸 편지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아무튼 청마는 생전에 5,000여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면서 장년기 제2청춘을 아름답게 엮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운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못하였으니 숱한 세월의 격랑속에서 긴 세월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다.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시하면
내 사랑을 아지랑이 춘 삼월 아지랑이
종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무제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 시는 두 사람이 서로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으로 정운도 사랑에 대해선
퍽 용감하고 솔직한 것 같습니다.그로부터 스무해동안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빼지않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1967년 2월. 청마가 교통사고로 숨질 때까지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의 사랑은 청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난다.
부산 남여상 교장으로 재직하던 청마는 1967년 2월13일 저녁 예총일로 문인들과 어울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 시내버스에 치여 59세의 나이에 붓을 영영 놓았다.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바람이,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라.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 길입니까?
끝내 만리 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청마가 죽고 난 후 정운은 청마를 잃은 마음을 시로 남기며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느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로 맺혀 푸른돌로 굳어라
모란 / 이영도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네 목숨의 아픈 견딤이라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위 시를 보면 그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눈물겨운 것은 청마와 정운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 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도 같거니와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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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여중, 부산 남성여고, 마산 성지여고의 교사를 지낸 정운은 부산여대에 출강하기도 했다. 작품세계는 여성의 맑고 경건한 계시주의와 낭만 등 섬세한 감각을 들 수 있다. <청저집>, <석류> 등의 시조집과 수필집 등이 있다.
해방 이후 등단한 최초의 시조시인으로 황진이의 맥을 이은 현대 시조시인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을 통한 사회봉사로 1966년 늘월문학상을 받았다.
1976 서울 서교동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는데 청마와 같은 향년 59세였다.
1979년 이영도 여사 기념사업회에서 정운시조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청도 오누이공원, 부산 금강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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