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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공직 생활 중 지금이 분위기 최악… 공무원도 부당한 지시 거부할 수 있어야”

Jimie 2021. 8. 16. 09:29

“25년 공직 생활 중 지금이 분위기 최악… 공무원도 부당한 지시 거부할 수 있어야”

[김은중이 만난 사람]
파면 소송 승소한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입력 2021.08.16 03:00

정부를 상대로 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13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 전 국장은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들을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며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하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탈원전과 소득 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 정책을 공개 비판했다 파면된 한민호(59)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11일 정부를 상대로 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 2019년 10월 2월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가 파면 결정을 내린 지 681일 만이다. 13일 만난 한 전 국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때로는 정부 정책에 반론도 펼쳐가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우리를 국정 파트너가 아니라 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는 공무원들 가슴을 뛰게 할 비전은 없고 ‘시키는 거나 하라’는 잔소리만 남았다”며 “25년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는 최악”이라고 했다.

 

◇공무원에게 파면은 사형 선고

 

- 13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든 소회는.

“변호사 비용을 700만원 정도 썼다. 변론서는 같이 작성했지만 재판 오고 가고 이런 건 다 변호사한테 일임했다. 2년이나 밥벌이를 하지 못해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집사람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아들이 둘인데 그래도 가족들이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아빠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며 믿고 지지해 줬다. 공금을 횡령을 한 것도 아니고 결코 남한테 부끄러운 짓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구들이 버텨준 것 같다.”

 

- 공무원에게 파면은 어떤 의미인가.

“파면당하면 보통 생각하는 공무원 연금의 절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형법에 비유하자면 사형 선고 같은 것이다. 한 집안에 파면 공무원이 있다는 건 전과자가 있다는 뜻과 다름없다. 보통 성(性) 비위·혼외 관계를 문제 삼거나, 형벌을 받고 전과자가 된 사람들을 파면시키는데 나 같은 경우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당신은 문재인 정부 고위 공무원이기도 했다.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나.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법률가들이 정리해 줘야 할 부분이다. 공무원이 자기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정권을 잡자마자 반일(反日) 선동을 하고 ‘자유 진영의 희망’이라는 한국 원전 산업 문을 닫아버리는 걸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국가 경쟁력을 좀먹게 하는 정책으로 문체부 공무원이 외교·산업을 걱정하게 만든 게 더 잘못 아닌가. 대학 시절 잠시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어렸을 때 같이 활동했고 당시 청와대에 있던 고위직으로부터 ‘좀 조용히 있어라’ 하는 핀잔도 들었다. 청와대가 호시탐탐 내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文 정부, 잘 안 풀리면 공무원 탓

 

- 지난 정부에선 왜 가만히 있었나. 그때라고 문제가 없었을까.

“박근혜 정부 때는 조선산업 구조조정 관련 나름의 목소리를 냈다. 노무현·김대중 정부를 문재인 정부와 같은 ‘민주 정권’으로 묶는데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지지층 반발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건 했다. IMF 사태를 수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두고는 좌파들이 신자유주의라 비판하지 않았나. 물론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오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두 사람이 나라의 큰 방향 자체는 흔들지 않았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공무원 재직자는 122만1322명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11만3350명(10.2%) 늘었다. 이명박 정부(4만2701명), 박근혜 정부(4만3500명) 증가 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한 전 국장은 “숫자만 크게 늘었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하다”며 “그저 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공무원 탓, 홍보 탓을 하니 흔쾌히 따르고 싶겠나”라고 했다.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지난해 3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를 말한다면.

“그래도 공무원들이 우리나라에서 꽤 유능하고 쓸모 있는 집단이다. 7급·9급 시험 경쟁률만 봐도 굉장히 높고, 실제로 우수한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도 없고 시키는 것만 한다. 그것조차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메모하고 녹음까지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권이 시키는 걸 그대로 하면 나중에 화(禍)를 당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무원들이 단순히 수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물을 먹고 공직 생활에 종을 쳤다. 국정 교과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었나. 상사가 시켜서 한 일인데 보호도 못 받고 불이익을 당했다.”

 

- 그게 문재인 정부 때만의 일은 아니지 않나.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가 기조 설정을 하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경향성은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게 차이다. 이인영 의원과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관료들이 말을 안 듣는다’ ‘정권 4년 차 같다’고 말하다 들키지 않았나. 노무현 정부 때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 놓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정책 홍보가 안 됐다며 공무원들을 타박한다. 이러니 흔쾌히 따르고 싶겠나. 공무원 집단조차 통솔 못 하는 것 자체가 리더로서 무능(無能)을 인증하는 것과 같다.”

 

◇국민 가슴 뛰게 할 ‘큰 그림’이 없다

 

- 또 무엇이 불만인가.

“지도자가 공직 사회에 어떤 기풍(氣風)을 조성하고, 국민들이 ‘으쌰으쌰’ 할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박정희 대통령 때처럼 새마을 노래를 틀지는 못 하겠지만, 국민을 신나게 하고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세계 5위권으로 도약하자거나 우주선을 달에 보내자 하는. 소를 더 키우고 목장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지금은 과거 얘기만 하고 벌어 놓은 걸 어떻게 나눠줄 수 있을까만 궁리한다. 비전이 있어야 공무원들도 더 신이 나서 일할 것 아닌가.”

 

- 공무원 하면 ‘철밥통’ ‘복지부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반성할 부분은 없나.

“숫자가 100만명이 넘으니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공무원들도 정말 부당한 지시는 거절할 수 있어야 어디 가서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원전 경제성 조작에 가담한 산업부 공무원들 일부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도둑질을 하라는 지시를 따른 건데 부끄러운 일이다. 자식들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 연금 개혁같이 꼭 필요한 과제에 공무원들은 저항하지 않나.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유일하게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있다. 돈으로 공무원들을 매수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노조 반발이 두렵겠지만 공무원들 다수는 기본적으로 공익(公益) 마인드가 탑재돼있는 사람들이다. 합리적인 개혁안을 낸다면 결국 수긍한다. 나라가 존속해야 공무원이 있는 거지, 나라가 다 죽었는데 공무원이 있을 수 있나.”

 

- 어떻게 공무원들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까.

“큰돈을 벌려고 공무원이 되지 않았다. 일하는 보람이 있어야 한다. 과거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라 하고, 그것도 잘못된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구조다. 또 설거지하다 접시 몇 개 깨는 것쯤은 눈감아줘야 한다. 감사(監査) 무서워 일을 못 벌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공무원들이 자신의 공약을 수행할 도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멍청하고 사악한 생각이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판 깔아주면 ‘입안의 혀’처럼 굴릴 수 있는 게 공무원이다. 정치하신다는 분들 잘 한번 생각해보시라.”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할 것”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도종환 장관이 취임하자 한 전 국장만 콕 집어 ‘원 포인트 인사’가 났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2급)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지만 나름 신나게 일했고, 그런 그를 직원들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난생처음 큰 보람을 느꼈다”며 따랐다고 한다. 한 전 국장은 2017년 문체부 노조가 서기관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바람직해 닮고 싶은 관리자’로 뽑혔다. 파면 소송에서 승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문체부 선·후배들로부터 “형 늘 응원하고 있다” “선배님 끝까지 잘 버티시라”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서울신문은 2012년 연재한 ‘공직열전 2012’ 기사에서 그에 대해 “역사교사 8년 만에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이 됐지만 너무 정열적이라는 평가다”라고 썼다.

 

- 공무원 생활의 목표는. 남들처럼 장·차관이 꿈이었나.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뒤늦게 고시를 봐서 합격했다. 입부 동기 중에 역사교육과 10년 후배도 있을 정도로 욕심을 내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상사 눈치 안 보고 그때 그때 내 기준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따라 일하려고 했다. 주관이 뚜렷하다 보니 좀 부담스럽게 보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나를 엄청 아꼈다.”

 

- 승소했으니 이제 곧바로 복직하는 건가.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도 크고, 아마 복직하더라도 다시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내년 6월이 정년인데 그래도 공무원 신분으로 정년 퇴직을 하고 싶다. 파면당하고서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 많이 노력했는데 공무원 생활할 때가 그립다. 동료들과 즐거웠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사행산업감독위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이버 불법 도박 근절, 확률형 아이템 개선 같은 과제를 처리하고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

 

☞한민호

1962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평택고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한때 운동권에 몸담았지만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를 하기에는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선배의 충고에 전향(轉向)했다. 대학 졸업 후 8년간 중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 행정고시에 합격, 199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미디어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소셜미디어(SNS)에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돼 2019년 10월 파면 처분을 받았다가 최근 파면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우리공화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해 3위(득표율 0.44%)로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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