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하노이 회담 北비용 부담"…40만 달러 지원설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05:00 |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ㆍ미 정상회담 때 북한이 지출했던 비용 중 일부를 한국 정부가 대신 부담했을 가능성이 최근 야당의 대선 주자 캠프 등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정치권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이 15일 전했다.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시 회담은 성과없는 '노딜'로 끝났다.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이 소식통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의 회담 관련 비용 중 일부를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는 얘기가 정치권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며 "국가정보원 등의 채널을 통해 비용이 지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베트남 북ㆍ미 정상회담 과정에 관여했던 여권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비용의 규모는 대략 미화 40~50만 달러 수준, 한화로 4~5억원 정도로 알고 있다”라며 “당시 회담에 쓰였던 비용의 상당부분은 베트남 정부가 부담했지만, 일부는 북한이 부담해야 했던 부분이 있었고,이를 한국 정부가 대신 납부해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1·2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노이 회담에 관여했던 또 다른 인사도 "외교무대에 나설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금전 요구를 하는 것은 북한의 일상적 패턴에 가깝다”면서도 “다만 북한이 회담 개최국이면서 자신들과 가까운 베트남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에까지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다면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1차 회담의 장소는 싱가포르, 2차 회담 장소는 베트남 하노이였다. 그런데 회담을 개최했던 두 나라가 김 위원장을 초청한 방식이 다르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8년 6월 김 위원장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외교 관례에 따라 국빈방문에 소요되는 비용은 초청국이 부담한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이를 근거로 “역사적 회담의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겠다”며 “2000만 싱가포르 달러(161억원)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회담 종료 뒤 싱가포르 정부는 “지불 비용은 1630만 싱가포르 달러(131억 5000만원)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8년 6월 10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싱가포르 정부는 당시 김 위원장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초청 비용은 싱가포르 정부가 모두 부담했다. 싱가포르 소통홍보부 제공
김 위원장은 리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회담을 위한 훌륭한 편의를 제공해주셨다”며 금전적 지원에 대한 감사인사를 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정상회담 때도 같은 이유로 국빈방문이 추진됐다. 그런데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담 전 베트남 외무장관의 방북 등 협의 과정에서 국빈방문 보다 급이 낮은 친선방문 형식으로 결론이 났다.
회담 준비 과정에서 베트남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외신에 "베트남이 매력적이고 안전한 투자처임을 알릴 기회"라며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베트남은 싱가포르와는 달리 회담 종료 뒤 실제 지출 비용을 발표한 적이 없어 구체적인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국정원 등을 통해 북 측의 경비 일부를 베트남 측에 전달했을 가능성과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하노이 회담 당시는 현재의 박지원 원장 체제가 아니었다.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 관계를 모른다”고만 답했다.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019년 2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 때 중국 항공기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베트남 회담 때는 기차편으로 이동했다. 연합뉴스
다만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 핵심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에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 등이 있고, 특활비는 이번 경우처럼 국정원의 본연의 업무와 관련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북한을 베트남 회담장에 나오도록 하는 목적의 특활비 지출이라면 지출의 명분이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하노이 회담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서 실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거쳐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경색이 지속되던 지난해 7월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북ㆍ미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제3국’인 한국이 비용의 일부라도 부담한 사실이 실제로 확인될 경우 정치권의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어떤 명목의 지원이었는지에 따라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둘러싼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설사 한국이 비용을 부담한 것이 사실이라해도 이는 북한과 상대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4억 달러가 전달됐던 과거 대북송금 사건과는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른 통상적 대북업무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인 2019년 2월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의 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 [TBS 제공=연합뉴스]
또 하노이 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안보 문제에도 관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제3국인 한국이 북한의 회담 비용을 대신 지불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그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The Citing Articl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광석화로 대통령궁 접수한 탈레반…블랙호크에도 깃발 (0) | 2021.08.16 |
---|---|
아프간 허망한 항복… 대통령은 망명 (0) | 2021.08.16 |
文대통령 “10월까지 국민 70% 2차접종 완료”… 2923만회분 더 필요 (0) | 2021.08.16 |
文정부 국정과제 ‘감염병 전문병원 7곳’…한곳도 완공 안돼 (0) | 2021.08.16 |
‘열강들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영국·러시아 이어 미국도 실패 (0) | 2021.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