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이준석을 방생하라
다선 586 여야 정치인들, 30대 이 대표 ‘낚시’ 경쟁
정치적으로 악용하면 ‘꼰대 정치’ 역풍 불 것
입력 2021.07.16 03:00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국회사진기자단
여당은 “낚았다”고, 야당은 “낚였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얘기다. 야당이 정치의 바다에 풀어놓은 치어(稚魚)가 이제 성어(成魚)가 됐다.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전격 합의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번복했다. 찌가 흔들리자 ‘꾼’들이 낚싯대를 잡아챘다. 이 대표의 ‘실수’를 유발한 민주당은 “586 맏형 송 대표가 ‘이대남’ 대표 이준석을 보기 좋게 낚았다”고 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송 대표 앞에서 (상큼한) 귤 맛을 뽐내던 이 대표가 탱자가 됐다”고, 정청래 의원은 “이준석은 리더가 아니라 따르는 이 없는 따릉이 라이더”라고 조롱했다.
야당은 “이준석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재난지원금을 ‘주지 말자’는 쪽에 서는 게 전략적으로 옳으냐”고 했지만, 합의는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송 대표가 이 대표에게 못되게 했다”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송 대표가 국민의힘을 비웃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낚였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앞서도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언급했다가 여야 모두에서 비판받았다. 홍콩 인권 문제를 거론했을 땐 중국 관영 매체가 나서 “국제 문제 지식이 없는 정치 신인”이라고 공격했다. 사방에서 그를 겨냥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과거에도 정치의 바다에 뛰어든 신인은 기성 정치권의 먹잇감이 됐다. “태평양이나 수심 2미터 수영장이나 헤엄치는 건 똑같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낚였다. 윤석열, 최재형 등 ‘올해의 신인’들도 언제든 기성 정치권이 쳐놓은 그물에 걸릴 수 있다.
이 대표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매표 행위라는 당론을 뒤집고 혼자서 덜컥 합의해 준 것은 잘못이다. 원내대표와 상의 없이 선거법 개정에 합의한 것도 문제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당내 의견 수렴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여야 다선(多選) 중진들이 ‘0선·30대’ 이 대표의 실수를 고소해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유권자들이 오랫동안 봐온 구태 정치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이 대표는 성어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 대어(大魚)급은 아니다. 대통령 피선거권도 없다. 하지만 그는 여야 모두에 정치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대표 된 지 한 달 만에 정치권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작년 총선 이후 다 죽어가던 야당은 당 지지율이 여당을 앞서기 시작했다. 여당도 그의 등장에 긴장해 부동산 투기 의원을 출당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가부·통일부 폐지도 당부(當否)를 떠나 국민에게 ‘작은 정부론’을 환기한 측면이 있다. 여가부 폐지가 적절하다는 응답(48%)이 부적절하다는 응답(41%)보다 많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한 30대 작가가 본지에 쓴 글에서 ‘닮고 싶지 않은 노년’을 꼽았다. 한마디로 ‘꼰대’다. 그중 첫째가 ‘배우자 험담하기’다. 이 대표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이 여기 해당하는 것 같다. 둘째는 ‘어리다고 무례하게 대하기’다. 여당 586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특히 20대에 학생운동을 한 전력으로 평생 국회의원, 장관을 하는 586들이 이 대표를 낚았다고 좋아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그러다 어느 날 민심의 그물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꼰대 소릴 듣지 않으려면 이 대표에게 낚싯바늘을 던지기보다 바닷속 지도를 건네주기 바란다. 그를 낚았다고 생각하는 꾼들에겐 방생을 권한다. 대어가 된 후 잡으면 손맛도 더 짜릿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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