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윤석열 "국민의 힘 입당 나중에 판단···경선이고 뭐고 일체 생각 안 한다"
[경향신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7일 밤 경향신문과 만나 자신이 조국 전 장관의 법무장관 지명 전부터 사모펀드 관련 내사를 진행하고 대통령에게 독대 요청을 두 차례 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지난 3월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후 언론과 5시간에 걸쳐 장시간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민규 선임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61)은 ‘달변’이다. 질문을 던지면 분야를 넘나들며 쉼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칼잡이’ 특수통 검사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들을 구속시킨 그이지만, 의외로 웃음도, 눈물도 많다. 인생 자체가 롤러코스터처럼 파란만장하기도 하다.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를 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됐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과도 ‘조국 수사’를 계기로 대척점에 섰다.
2022년 대선을 8개월 앞둔 현재, 윤 전 총장은 야권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주자다.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일대일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식당에서 윤 전 총장을 만났다. 그는 장장 5시간에 걸쳐 자신의 철학은 물론 검사로서의 삶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동반 사퇴 요구’ 등 검찰총장 재직 시 받았던 여러 압력 등에 대해 공개했다. 윤 전 총장이 검찰을 그만둔 후 언론사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3월 퇴임 후부터 4, 5월 사이에 시간을 가지면서 지속적인 (높은) 지지율이 의미하는 바가 뭔가를 여러가지로 생각해봤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 기대, 바람으로 받아들이면서 고민이 깊었다”며 “외면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
-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한지 100여일 만인 지난 화요일(6월 29일)에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으니 정치인으로 9일을 살아본 건데, 어떻습니까.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아직은 어색합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출마 선언한 첫날 도처에서 수십개의 문자가 왔어요. 고개를 왔다갔다 한다, 말에 임팩트가 없다 같은 지적이 쏟아졌어요.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뭐 어렵겠는가 했는데, 쉽지 않네요. 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웃음).”
- 국민의 부름으로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는데 어떤 뜻입니까.
“3월 퇴임후부터 4, 5월 사이에 시간을 가지면서 지속적인 (높은) 지지율이 의미하는 바가 뭔가를 여러가지로 생각해봤어요. 국민의 기대, 바람으로 받아들이면서 고민이 깊었죠. 외면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출마선언문은 직접 쓴 것으로 알아요. ‘이권 카르텔’ ‘국민 약탈’ ‘윤리의식 마비’ 등 표현이 꽤 강했는데, 문 정부에 대한 평가가 너무 혹독한 것 아닌가요.
“제가 보고 느낀대로 쓴 겁니다. 먼 발치에서 본 게 아니라 문 정부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제가 직접 겪어보고 느낀 대로 가감 없이 표현한 거예요. 국민들이 다 보시고 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무엇을 바꾸고 이루고 싶습니까
“자꾸 정책 말씀들을 많이 하는데 철학이 중요합니다. 국가가 권력을 얼마나 행사하고 어느 지점에서 권력의 행사를 멈출 것인지, 또 어떤 사안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철학 말입니다. 제가 검찰총장 취임사에서도 검사들에게 당부한 게 헌법정신이에요. 형사법집행 권한을 어떤 경우에 행사하고 또 어느 지점에서 멈출 것인지를 결정할 때 자유민주주의, 인권존중, 법의 지배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이는 국가의 모든 공권력 행사에도 적용됩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이러한 기본에 합의하고 설령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 범위는 벗어나지 않아야 사회통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 주장이 극우와 통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전혀 아니죠. 저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선 자유와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국민들이 다 함께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라고 해요. 독일민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하잖아요. 하지만 개인이 중시되고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가치를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국가가 시스템 관리자로서 또는 개입자로서 행동할 때 이 정신을 투철하게 가져야 해요. 그래야만 정책 효과도 있고 취약한 사람도 보호할 수 있어요. 이 정신을 잃으면 양극화가 더 심해져요.”
-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민주당 핵심그룹이 개인의 자유를 과연 존중하는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많습니다.”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뿐만 아니라 진보·중도로의 지지층 확장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보수·진보·중도를 확연히 구획 나누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서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고 경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이나 경선 전 입당 여부에 대해선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 그는 “더 움직여 보고 나중에 판단할 문제라고 입장을 선명하게 밝혔는데도 기자들이 계속 묻는다”며 “입당 문제는 지금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어서 경선이고 뭐고 일체 생각을 안 한다”고 말했다.
-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뿐 아니라 진보·중도로도 지지층을 확산할 생각이라고요.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부터 진보까지 스펙트럼이 있다고는 봐요. 그렇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선명히 이념성이 갈리는 건 아니잖아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슈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보수·진보·중도를 확연히 구획 나누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서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고 경쟁할 수 있다고 봐요.”
- 국민의힘에선 윤 전 총장이 너무 간을 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어요.
“평가는 각자 자유롭게 하는 거니까요.”
-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월에 곧 만날 것처럼 먼저 전화연락을 했던 것으로 아는데 왜 안 만나고 있나요.
“그분이 우리나라에서 정치경험이 가장 많은 분이고 어떤 상황이 되면 제게 의미 있는 조언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지금은 그런 어떤 구체적인 방법론을 선택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뵙게 되겠죠. 저보다 경험 많은 분들을 왜 안 만나겠습니까.”
윤 전 총장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친가의 고향은 충남 논산 노성면이고, 외가는 강원도 강릉을 본거지로 한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학과 79학번으로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 연거푸 떨어졌고 1991년 9수만에 합격했다. 35세에 초임검사로서 대구지방검찰청에 첫 부임했다. 이후 특수통 검사로 잔뼈가 굵었다.
- 법대 진학은 검사가 되고 싶어서였습니까.
“아니에요. 20대에 판검사를 꿈꾼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법대에 진학한 건 부친의 영향이 컸어요. 물리학이나 수학,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친이 경제학이 너무 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면서 구체성이 있는 학문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법대를 가더라도 경제공부도 해서 나중에 경제법이나 법경제를 연구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교수 할 생각으로 들어갔어요.”
- 그런데 어쩌다 검사가 됐나요.
“매년 100명 정도 뽑던 사시합격자 수를 1981년인가 300명 정도로 늘렸어요. 사시도 합격 못하고 강단에 서면 좀 그렇지 않겠나 싶어 사시 붙고 유학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차 합격에 9년이나 걸리면서 꼬이고 말았지만요(웃음). 1980년대 중반엔 연수원 마치면 변호사 하려고 했어요. 돈 벌면 시사 월간지도 발행해볼 생각이었죠. 그런데 제가 검찰 시보를 한 수원지검의 선배들이 환송회 때 ‘윤시보가 검찰 적성이 맞으니 졸업시험 잘 쳐서 꼭 우리 회사로 오라’더라고요.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검사가 된 거예요.”
- 검사 일은 재미 있었습니까.
“오래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했죠(웃음). 제가 1994년 만 서른세살에 임관했는데 우리 동기들 중 2, 3번째로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몇년 하고 관둔다 하고 열심히 했는데, 그러다보니 늪에 빠져가듯 검사생활에 취해가더라고요. 천직이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대에 판검사를 꿈꾼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대 교수를 꿈꾸다 9수만에 사시에 붙는 바람에 진로를 변호사로 바꾸려 했지만 검사 시보를 한 수원지검의 선배들이 ‘윤시보가 검찰 적성이 맞으니 졸업시험 잘 쳐서 꼭 우리 회사로 오라’고 했다”며 “어쩌다 검사가 됐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
- 2002년에는 어쩌다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변신했나요.
“그때는 신승남 검찰총장이 옷 벗고 그 동생이 구속되고 소위 특검이란 것이 처음 생기고 하면서 검찰이 많이 어지러웠어요. 우리 부가 각종 게이트의 중심이 돼 수사도 하고 수사도 받는 상황이었죠. 그때 제가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수사는 정확히 해놔야 한다는 것, 내가 책임지는 것이지 누가 나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죠. 그 시기에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이직한 이명재 전 서울고검장이 저를 많이 당겼어요. 나이도 있고, 장가도 가야 하지 않느냐는 현실적 이야기를 하시면서 같이 일하자고 하셨거든요. 혹했죠.”
- 그런데 왜 1년 만에 검찰에 복귀했습니까.
“이명재 선배가 제가 옮겨간지 얼마 안돼 검찰총장으로 가셨어요. 그런 어느날 제가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에 저녁시간에 들어갈 일이 있었어요. 순간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중국집 ‘철가방’의 짜장면 냄새가 코끝을 확 자극하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 왜요.
“나중에 철야수사라는 게 없어졌지만 제가 서울지검 검사로 일할 때는 밤샘수사가 기본이었어요. 조사하는 사람도 월요일 새벽에 나와서 금요일 밤에 귀가하는 식이니 죽을 맛이었죠. 잠을 쫓으려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커피도 많이 마셨어요. 미역국이나 북어국은 속이 미슥거려서 못 먹었겠어서 당시 서울지검 앞에 ‘취성루’라는 중국집에서 아점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요. 그런데 막 비벼서 먹으려고 하면 부장이나 3차장이 찾아요. 보고하고 돌아오면 짜장면이 불어 있죠. 커피포트에서 끓인 물을 부으면 곱배기가 되는데, 밤새 못먹었으니 얼마나 맛있겠어요. 검찰이 그리웠던 거예요.”
- 1981년 서울법대 동아리 형사법학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의형사재판을 했다죠. 거기서 검사 역을 맡아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전두환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모의재판은 5·18 직전인 1980년 5월8일에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밤새워 진행됐어요. 보도통제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막연히 전두환·노태우 이런 사람들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만 듣던 때였어요. 당시 동아일보에 입사한 선배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온 법대 4학년생들이 궐석 모의재판을 계획했는데 저는 재판장을 맡았어요. 고 신현확 총리께 너무 죄송했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분이 쿠데타 수괴인 줄 알고 사형선고를 내렸어요,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고요.”
- 그 모의재판으로 인해 강릉으로 피신까지 했다면서요.
“다음날 호외가 돌아다녔어요.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과대생들의 궐석재판이 있었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었고 재판장인 윤석열 학생이 이렇게 선고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어요. 민주화가 안 되면 어디 끌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5월17일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먼 친적이 집에 전화를 걸어 석열이를 빨리 피신시키라고 했대요. 그래서 외가의 친척집으로 석달간 피신했다가 학교에 돌아가도 된다는 소식을 받고 복귀했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13년 9월 국정감사장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의 팀장을 맡았다가 2014년 대구고검으로 좌천 발령 받았다. 박민규 선임기자 |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건 2013년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직전 대선에서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때였다.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정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밀어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혼외자’ 문제를 샅샅이 털어 채동욱 검찰총장을 불명예 퇴진시켰다. 그해 9월 국정감사장에서 윤 전 총장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중징계를 받고 이듬해 1월 대구고검으로 좌천 발령을 받았다.
-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의 팀장을 맡으면서 운명이 크게 출렁거렸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죠.”
- 왜요
“정보기관 그것도 국가안보기관이 여론을 조작해 자유선거를 방해하는 것이나, 국가안보에 써야 할 안보자원을 정치권력이 사적으로 전용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나 중요 행정에 대해 보고하고 그게 내각에 전달돼 어떤 행위가 이뤄지면 책임정치에 반하는 것이죠. 배경도 모르고 청와대가 지시하니까 한다는 건 한국사회에서 근절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 좌천된 후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거의 왕따를 당했던 것으로 압니다.
“저를 불편하게 여겼죠. 그래서 혼밥을 많이 했어요(웃음).”
- 검찰을 그만둘 생각은 안했습니까.
“박근혜 정부가 4년이나 남았으니, 집사람에게 그냥 사표 내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좋은 보직받고 잘 나가다가 고검 발령받고 그만두면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냐며 말리더라고요. 무엇보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 후배들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만두면 자기들도 같이 사표 쓰겠다면서 댓글조작 사건이 대법원 선고까지 가는데 2년 걸리니 그때까지만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어요. 제가 버티고 있어야 자기들을 함부로 못 대한다니 어쩌겠어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은 한번의 파기환송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8년 국정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법정구속되며 마무리됐다)
- 2014년 재보궐 선거 때 안철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국민의당 대표, 2016년 4월 총선 때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정철 전 비서관을 통해 공천을 제의했다죠. 왜 거절했습니까.
“저는 선출직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제가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면 정치적 성향 때문에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어떻게 했다는 말이 나올 것 아닙니까. 게다가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아무리 제가 (댓글 수사팀에서) 직무배제를 당했다고 해도 후배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한겨레 청와대사진기자단 |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2019년 7월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며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조국 사건’을 계기로 문 정부와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특히 추미애 법무장관이 취임하자마자 2020년 내내 ‘추-윤 갈등’이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다.
-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윤 전 총장이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 전부터 사모펀드 관련 내사를 진행하고, “내가 론스타를 해봐서 사모펀드를 잘 아는데 조국 나쁜 놈이다, 대통령께서 임명하면 안 되고 내가 직접 뵙고 설명할 기회를 달라”면서 독대요청을 두 차례 했다고 주장했어요.
“그 사람들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해 하는 거라고 봐요?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막 하는 사람들이에요, 조국 장관이 민정수석으로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고 제가 중앙지검장으로 일하던 2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제게 많은 지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원한이 있다고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여권 인사들)은 내가 정치적 의도가 있어 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지,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 식의 선동이나 조작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 장관 지명 전부터 사모펀드 관련 내사를 진행했다는 게 거짓 주장이란 거군요.
“제가 2019년 7월25일 발령받고 8월9일 금요일에 조국 장관이 법무장관 지명을 받았어요. 제가 그 다음주인 8월12일부터 16일까지 휴가였어요. 총장이 휴가를 안 가면 전국 검사가 휴가를 못가니까 하는 수 없이 받았죠. 집에서 TV를 켜는데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 법무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농담이 아니고 제가 문재인 대통령한테 받아 우리집 거실 선반에 놓아둔 임명장의 잉크가 말랐나 안 말랐나 만져봤어요. 잉크도 안 말랐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됐죠.”
- 이후 상황은요.
“그 다음주 화요일에 조 장관 딸의 논문 제1저자 건이 터졌어요. 다음날 퇴근시간에 김유철 범죄정보기획관을 불렀죠. 야간작업을 하더라도 조 후보자에 대한 언론보도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이게 정말 근거가 있을 만한 것인지 보자고 했어요. 김 기획관이 다음날 아침 정리해왔는데 이미 고발장이 자유한국당부터 시작해서 쫙 들어와 있었어요. 야당과 언론의 수사 압박도 거셌죠. 그래서 목요일에 대검 간부회의에 중앙지검장과 3차장도 오라 해서 같이 회의했어요. 거기서 내려진 결정은 일단 공개정보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 모아 압수수색 영장청구 가능 여부만 보자는 거였어요. 나중에 자료가 유실됐다고 하면 완전히 봐주기 프레임에 걸려드니까 일단은 자료를 확보해놓고 기다려보자는 거였어요.”
그는 “지난 2년 동안 적폐수사를 했는데 이번엔 뭐냐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며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대법관들을 기소해놓은 마당인데 두말할 게 뭐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했어요. 또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공소유지는 결국은 이 정부와 나중에 관련될 수 있어요. 여기서 무죄 나오고 망가지면 무리한 수사인데 그게 검찰에만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죠.”
- 결국 입시·사모펀드·웅동학원 자료 입수를 위한 관련 기관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이뤄졌죠.
“그때는 야당에서 반대해 장관 지명 후 3주가 지났는데도 인사청문회 날짜를 못 잡았어요. 그래서 정유라 입시학사비리를 담당한 고형곤 특수2부장에게 신속히 검사 몇명 뽑아서 해보라 했더니 3000페이지 정도 기록이 만들어졌고 압수수색 영장청구는 가능하다고 해요. 그래서 법원에 영장을 넣었는데 한동훈 반부패부장이 오후 3시쯤 다급하게 제 방에 와요. ‘총장님. 영장이 다 발부됐습니다’ 하면서. 오전 10시에 넣었는데 다른 때와 달리 3시간 만에 영장이 휴대폰 등 몇 개만 빼고 싹 나온 거예요. 일반적으로는 아무리 자료가 탄탄해도 절반 정도가 기각되고 영장도 자정 넘어 발부됐거든요.”
- 대통령 독대 요청은 안 한 건가요.
“전 독대 요청을 한 적이 없어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검찰총장이 무슨 대통령에게 독대요청을 합니까? 예를들어 제가 검찰제도에 대해 어떤 탁견이 있으면 글로 써서 보내드리고 대통령께서 불러주시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해서 한번 들어와봐라 하시면 몰라도. 일반 공무원은 대통령이 오라고 하면 만나는 거지 독대 요청을 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거예요. 대통령을 뵙고 싶다고 하는 건 몰라도 독대 요청은 말이 안된다.
- 그러면 대통령을 뵙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 적도 없나요.
“없습니다.”
- 조 전 장관 집에 압수수색이 들어간 것에 대해 청와대 수석들이 격노하며 “대통령 인사권을 흔들려는 거냐,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냐”고 하자 윤 전 총장이 “아니다. 조국만 도려내면 된다. 그게 오히려 대통령을 위한 길이다”라고 이야기했다는 주장도 있었어요.
“당시는 정경심 교수는 표창장 위조 건에 대해 수사팀에서 확실하다고 봤기 때문에 그거 플러스가 기소될 확률이 높았지만 조 장관의 혐의가 인정될지 여부는 모를 때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조국만 도려낸다고 말했다는 건 상당히 악의적인 주장이죠. 다만 9월9일 조 장관 임명 후 민정 관계자를 통해 대통령께 전달해달라는 이야기는 있었어요. 조 장관 관련 수사는 무리없이 원칙대로 진행해서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으로부의 욕은 제가 먹겠다고요. 아무래도 대통령께서 핵심 지지층의 이반이나 공격에 대해 걱정이 많으실 것 같아서였어요. 실제로 제가 공격을 많이 받았고요.”
- 조 전 장관이 상징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요.
“2018년 6월14일 지방선거 다음날 전날 당직한 공안2부 검사들과 서래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무일 총장이 전화를 걸어와서 팔레스호텔 중식당으로 바로 오라해서 갔더니 ‘저 사표냅니다’ 이러시는 거예요. 오늘 점심이나 하자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장관과 민정수석을 같이 만났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내용을 적은 종이조각을 테이블에 탁 던지더래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만두겠다는 거예요. 그런 분을 설득하고 중재해 어찌됐든 백혜련 안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확정되는데 제가 기여했으니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아요.”
-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대선 라이벌을 조기에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양식 있는 언론이라면 그런 선동엔 가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당시 상황 자체로 봐서 말 안되는 이야기예요. 법과 원칙대로 일은 하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어드리려 노력했고 제가 조 장관과 불필요하게 대치관계를 가질 이유는 없잖아요?”
- 표창장, 스펙품앗이 등 작은 허물을 검찰이 지나치게 큰 칼로 베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이야기를 하면 말이 길어져요. 그러면 한 사람에 대한 너무 센 공격이 되니까. 그에 대한 답은 400쪽 되는 1심 판결문 보면 잘 나옵니다. 그게 작은 허물인지 아닌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사건’을 계기로 문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이른바 ‘추·윤 갈등’도 1년 내내 뉴스를 장식했다. 윤 전 총장은 두 차례에 걸려 직무정지를 당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
- 이른바 ‘추·윤 갈등’이 2020년 한해 동안 뉴스를 장식했어요. 추 전 장관은 지난 1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 ‘하나회’처럼 군림한다고 주장했어요.
“추 장관이 검찰에 대해 뭘 압니까? 정신 나간 이야기죠. 저는 일 잘하면 예뻐하고 어떤 사건 있을 때 발탁해서 쓰고 그런 거지 무슨 후배들을 사단이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밥 먹고 이런 거 안 합니다. 2013년 대구고검으로 좌천돼 내려갔을 때도 특검 때 같이 일했던 후배들 중 따로 만나 밥 먹은 건 국정원 댓글 수사팀밖에 없어요. 그것도 딱 두 명. 댓글수사 모임이 있고 제가 도와줘야 해서였지, 다른 검사들과 만난 적이 없어요. 저는 실력으로 프로가 되라고 하지 무슨 인적 내트워크로, 휴먼 릴레이션에 기대서 하는 거는 안 합니다.”
- ‘추·윤 갈등’의 최고조는 지난해 말 윤 전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징계청구였어요. 나가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나요.
“실제로 나를 무조건 옷을 벗기려고 했어요. 징계청구와 직무정지명령을 지난해 11월에 했잖아요. 그게 깨지면서 제가 12월1일 복귀하니까 이 사람들이 멘붕이 와서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그냥 추미애 장관과 동반 퇴진하면 징계는 없는 걸로 하겠다’고. 추 장관에게 나에 대한 징계를 철회시키라고 하면 반발할 것 아니에요? 그러면 물러나라 하고 차관이 직무대리로 하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물러나준다는 약속만 해주면, 대통령 입장에선 일거양득인 꿩먹고 알먹는 거예요. 그런 일을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사퇴압박이 있었어요.”
- 대통령의 뜻인가요.
“대통령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그렇다고 봐야 되지 않겠어요? 물러나 주는 걸로 약속만 해주면 추미애도 즉각 물러나게 하고 징계는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검사징계심사위원회가 열리는 날이 다가오니까 징계를 아주 약하게 해줄테니 거기에 대해 다투지 말아달라는 이야기가 계속 있었어요.”
- 지난 5일 서울대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면담하고 나온 뒤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월성 원전) 사건 처리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있었다”며 “더는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어요. 어떤 압력들이 들어왔나요.
“검찰총장은 병풍이 되고 버팀목이 돼야 하기에 총장이 받은 총알을 다 공개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이걸 한번 보라고. 작년부터 월성원전 감사 끝물부터 시작해서 검찰시작 단계까지 얼마나 많은 여권 관계자들이 공격을 가했습니까? 이게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둥, 정부정책에 대한 수사라는 둥 하면서. 공개적으로 그 정도면 비공개적으로는 검찰총장에게 수사하지 말라는 취지의 다양한 압력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잖아요.”
- 그래서 총장직을 던졌군요.
“저는 7월24일까지 어떻게든 임기를 마무리하려고 했어요. 제가 인사청문회 통해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상, 임기 2년 동안은 원칙대로 일하는 게 국민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잇따라 직무집행정지와 정직 2개월 징계를 당했을 때 재판하지 말고 사표 내고 나와서 차라리 이걸 계기로 정치를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저는 안 된다고 했어요. 직무정지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징계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소송을 거쳐 12월24일 크리스마스에 복귀했죠. 무조건 임기를 채우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정부 쪽에서도 그런 제 생각을 읽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존경하고 저와 학창시절부터 굉장히 가까웠던 신현수 선배가 민정수석으로 온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
- 그런데요.
“지난 2월7일 박범계 (법무)장관이 신현수 민정수석과 검찰총장인 저를 패싱한 채 검찰 인사를 기습적으로 발표했잖아요. 신 수석은 굉장히 불쾌하고 배신감을 느꼈던 모양이에요. 제가 전화도 하고 따로 만나기도 하면서, 어차피 작년에 추미애 장관이 연초 인사, 하반기 인사를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 저한테 부담감 느끼시지 말라, 저도 임기 끝까지 마칠 테니까 선배님도 그냥 계시라, 더 이상은 대통령께 사표 수리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고 설득했어요.”
- 한데 왜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돼 윤 전 총장과 신 수석 둘 다 그만뒀나요.
“제가 작년 12월24일에 두번의 가처분 소송에서 이기고 복귀하니까 추 장관과 민주당 쪽에서 저를 내보내려고 작심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이야기가 처음 나왔어요. 신현수 수석이 ‘대통령은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다, 그리고 이번에 지명된 박범계 장관도 대통령의 생각을 충실하게 따를 사람이기 때문에 크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상황은 잘 지켜봐야겠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건넸어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 어떤?
“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속도 조절 주문 해석이 있었을 때 박 장관이 2월25일에 ‘저는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며 당론에 따르겠다는 뜻을 피력했어요.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나서 ‘대통령 한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정리되는 게 과거 권위적인 정치’라고 주장했고요. 김 지사는 문 대통령의 복심이잖습니까? 그래서 아, (중수청, 검수완박) 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생각했죠.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 2월4일 월성 원전 수사팀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거예요.”
- 백운규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니까 검수완박, 중수청 설치를 밀어붙였다는 거군요.
“추 장관이 2020년 1월 인사와 7, 8월 인사를 자기 마음대로 했잖아요. 대검 간부(검사장)들 인사조차도 제 의사가 전혀 반영 안됐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추 장관이 물러가고 박범계 장관이 내정된 후 신현수 민정수석과 당시 공감대를 이루며 인사를 어느 정도 정상화하려고 하던 차였어요. 인사 핵심은 ‘첫째, 추 장관과 함께 총장 징계에 관여했던 간부들은 2선으로 뺀다, 둘째, 기조부장 등 대검 핵심 참모 2~3명은 총장이 원하는대로 해준다’였고요. 하지만 백운규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가 되니까 박 장관이 검사장 인사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거예요. 그러곤 수면 아래로 조금 가라앉는 듯 했던 검수완박, 중수청 이야기가 나온 거죠.”
- 청와대가 신 수석을 통해 백운규 장관을 구속시키지 말라고 압력을 가한 건가요.
“신 수석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어요. 그 영장이 들어가면 어느 정도 협의해서 하는 인사가 굉장히 어렵다는 식의 분위기 정도는 제가 눈치했죠. 하지만 월성원전 수사팀이 자료를 딱딱 정리해서 보고하는데 그걸 검찰총장이 거부하고 불구속하라 하기 어려웠어요. 다른 사건이면 당연히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거든요. 저도 그때 여러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스스로 ‘애처가’라고 말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떠도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라면서 “이미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난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
장모 등 처가와 관련한 의혹은 윤 전 총장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윤 전 총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무슨 내사보고서 등 처가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2013년 내가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할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를 사찰을 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나를 어떻게 걸게 없을까 조사했겠지만 자기들도 점검한 후 이건 할 게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인사청문회 때 보니까 제 장모를 고소한 정대택이라는 사람의 육성 녹음파일을 그 당시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갖고 있었나봐요. 만약 자유한국당이 정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공격을 하면서 그걸 틀어주려고 들고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니까 들려주려는 거였어요.”
- 법적 책임은 물었습니까.
“2012년 3월11일에 집사람과 결혼했는데 정대택이라는 사람이 2월말, 3월초쯤 저에 대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앞으로 투서를 보내고 진술도 했어요. 집사람이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도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난 것들이 많아요. 저도 판결문 별지 일람표를 다 보지는 못했는데 제 인사청문회를 위해 신상팀이 입수해서 국회에도 보내줬죠.”
- 당시 1개월 징계를 받았는데 사유는 뭐였나요.
“당시 관보에 적힌 대로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항명했다는 사유, 공직자 재산 신고 시 단순 실수로 배우자 채무를 누락해 재산을 5억1500만원 과다 신고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어요.”
- 장모는 지난주 금요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고, 대검찰청은 이미 불기소처분이 난 장모의 모해위증 의혹에 대해 지난 1일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어요. 이외에도 여러 건의 처가 관련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난 것들이 많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가요.
“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누구나 동등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고 가족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장모 일은 장모 일이고, 내가 걸어가는 길에 대해선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것으로 압니다.”
- 부인 김건희씨가 얼마 전 한 인터넷매체와 전화통화에서 항간에 자신을 두고 나도는 소문에 대해 전면 부인했어요.
“(친여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떠도는 말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인가요? 우리 집사람은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쉴틈 없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에요, 고교 교사와 대학 초빙·겸임교수도 했고, 석사학위도 2개나 받았어요. 국선에도 입선했고 1년이나 2년에 한번 전시를 기획하는데 6개월 전부터는 1인 다역을 하느라 일에만 몰두해요. 사람들과 술마시고 흥청거리는 것도 싫어하고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술집 가서 이상한 짓을 했다는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안 맞죠.”
- 52세에 12살 차이 나는 아내와 결혼했어요. 검사라면 중매하는 사람들이 줄 서서 연결해줬을 것 같은데. 결혼이 많이 늦었네요
“중매하는 분들이 줄 선 다는 건 고시에 일찍 붙은 친구들 이야기죠. 저야 고시에 늦게 붙어서인지 보통 연수원 다닐 때나 초임검사는 그 지역에서도 중매하는 사람 많이 나서는데 저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출세 가능성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웃음).”
- 집에서 유기견과 유기묘 여러 마리를 키우는 것으로 압니다. 동물을 좋아하나봐요.
“강아지 4마리, 고양이 3마리를 키우는데, 강아지 2마리는 유기견이고 하나는 얻었고, 또 다른 하나는 분양받았어요. 고양이는 1마리는 길고양이를 주워왔고 1마리는 친구 만들어주려 샀고 나머지 아기고양이는 누가 줘서 키우고 있어요.”
- 몇달 전 언론사 사진기자가 촬영한 집 근처 산책길에 같이 데리고 나간 강아지가 토리죠?
“예. 유기견을 3, 4개월간 임시로 맡았어요. 그런데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 동네 아이들이 귀엽다고 다가오니까 겁먹고 도망을 가다가 교대역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안락사시키겠다는 것을 우리가 수술을 여러 차례 시켜서 키우게 된 거예요. 우리집 고양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한데, 한 녀석은 꼭 제 머리맡에서 자고, 또 다른 녀석은 집사람 발밑에서 자요(웃음)
”
- 집의 강아지가 아프면 같이 운다던데, 의외로 ‘울보’인가봐요.
“하하하…. 다른 사람들은 우는데 저는 전혀 안 울 때도 많아요.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집사람이 제 얼굴부터 확인해요. 제가 또 울었나 안 울었나 보려고요.”
- 검찰에서 나온 후 사진 찍힌 것을 보면 늘 같은 점퍼를 입고 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도 해요. 왜 옷 없는 사람처럼 똑같은 옷만 입냐고 뭐라고 하죠. 하지만 저처럼 뚱뚱한 사람은 편한 옷이 좋아요.”
- 젊은 시절 만능 스포츠맨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많이 걸어요. 검찰에 있을 때도 바쁜 일이 지나가면 일주일에 20시간 걷기를 목표로 걸었어요. 주말에는 3~4시간, 주중에는 1~2시간 걷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얼굴이 알려지면서 많이 못 걷고 있어요. 집 주변에서도 사진이 찍히니 동네 걷기도 부담스럽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요새는 집에서 스탭퍼를 하는 수준이에요. 대신 먹는 것을 조금 줄여서 체중은 퇴직할 때와 비슷해요.”
-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지만 ‘두주불사’로 알려져 있더군요. 한 자리에서 혼자 생맥주 3만㏄까지 마신다던데….
“3만cc는 20대 때 이야기이고. 지금은 10분의 1 정도 수준입니다. 폭탄주도 많이 약해졌어요(웃음).”
윤 전 총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 길에 나서니 어둠 속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윤 전 총장은 다음 비공개 일정을 위해 총총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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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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