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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암살 뒤 절친의 배신? 싹튼 사랑으로 청혼받은 영부인

Jimie 2021. 7. 7. 07:13

케네디 암살 뒤 절친의 배신? 싹튼 사랑으로 청혼받은 영부인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5:00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존 F 케네디. 이들 사이 한 영국 귀족이 사상 첫 핵전쟁의 위기를 막았다. [중앙포토]


백악관 인턴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백한 빌 클린턴.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는 남편을 떠날 결심을 거의 굳혔었다고 한다. 이때, 빌 클린턴이 “나 좀 도와줘”라고 SOS를 쳤던 인물이 있으니, 그와 절친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버논 조던이었다. 언론인 출신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일했던 게리 긴즈버그가 최근 펴낸 책 『퍼스트 프렌즈』에서 밝힌 내용이다.

 

美역사 바꾼 비선 실세 스토리


뉴욕타임스(NYT)와 폴리티코 등이 주목한 이 저서는 미국 대통령의 ‘베프’를 ‘퍼스트 프렌즈’라고 칭하며 우정이 국정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부터 존 F 케네디, 클린턴까지 다양한 일화를 망라했다. NYT는 “대통령의 절친들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는 물론 백악관 곳곳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자신들만의 유산을 만들거나 없앴다”며 “이들의 비밀스러운 우정은 때론 대통령에겐 힘이 됐지만 때론 그들을 망가뜨렸다”고 전했다. 미국판 ‘비선(秘線)’ 실세 스토리인 셈이다.

1993년 함께 골프를 즐기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버논 조던. AP=연합뉴스


버논 조던의 설득은 성공했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에게 이혼 서류를 보내려던 결심을 접었다. 조던은 시민 운동가 출신으로 기업 임원도 지냈지만 미국에선 ‘빌 클린턴의 친구이자 고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NYT는 “이 둘은 함께 골프를 치며 여성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고 책을 인용해 전했다. 클린턴은 대선 후보 시절 러닝메이트를 고를 때도 후보군의 친구들까지 살폈다고 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을 철저히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앨 고어를 낙점했는데, 고어는 이렇다 할 친구들이 없었다고 한다. NYT는 “빌 클린턴은 ‘뭐 어때, 친구들이라면 내게 많은걸’이라는 생각으로 고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외교ㆍ안보 분야에서 유독 비선 실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엔 에드워드 하우스라는 인물이 핵심 인물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민족 자결주의’를 부르짖은 그 윌슨에게 제1차 세계대전 등 주요 국면마다 조언을 한 인물이다. 워낙 그의 영향력이 컸던 탓에 미움도 많이 샀다. 윌슨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이디스 윌슨은 하우스를 두고 “저런 완벽한 해파리 같은 녀석”이라고 싫어했다고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자 해상봉쇄 명령에 서명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JFK도서관]


존 F 케네디에게도 외교ㆍ안보 조력자 절친이 있었다. 영국인 귀족이자 당시 주미 영국대사였던 데이비드 옴스비-고어 경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 미국과 소련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맞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케네디는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옴스비-고어 경에게 “조용히, 사람들 눈을 피해 백악관으로 들어오라”고 전했다. 당시, 소비에트연방은 미국 국토를 사정거리에 두는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고 시도했고 미국은 해상봉쇄로 맞서며 전쟁 불사 의지를 전했다. 소련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16척으로 구성된 선단을 보냈고, 양국 국민들만 몰랐던 사상 첫 핵 전쟁의 위기였다.

40대 젊은 대통령은 자신보다 한 살 어렸던 옴스비-고어 경과 토론을 거듭하며 고심했다. 결국 케네디는 평화를 선택했고,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과 핫라인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일부 강경 안보 관료들은 “적과의 평화를 선택하다니 우리가 패배한 것”이라고 분개했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폴리티코는 “옴스비-고어와 케네디의 우정의 결과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평했다.

케네디의 '베프'였던 데이비드 옴스비-고어 경. [위키피디아]


옴스비-고어 경과 케네디 대통령과의 우정은 그러나 의외의 결말을 맞는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 이듬해 암살로 유명을 달리하고, 옴스비-고어 경의 부인이 196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다. 옴스비-고어 경이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여사에게 청혼을 한 것.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아픔을 서로 위로하면서 사랑이 싹튼 것이라는 게 후대의 해석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은 재클린 여사의 자필 편지와 옴스비-고어 경이 남긴 메모에서 모두 확인된다. 재클린 여사는 죽은 남편의 친구의 구애를 거절한다. 재클린 여사는 “내게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의 과거과 고통의 일부가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고 편지를 써서 청혼을 거절했다. 옴스비-고어 경은 이듬해, 미국 뉴욕 사교계의 여왕으로 통하던 파멜라 콜린과 결혼했다. 콜린은 유명 변호사의 딸이자 패션지 보그의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다. 1985년 옴스비-고어 경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난 4일 바이든 대통령이 절친 테드 카우프만 전 상원의원과 골프 라운딩 후 백악관으로 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재 백악관의 주인, 조 바이든의 절친은 누굴까. NYT는 테드 카우프만 전 상원의원을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중 하나로 꼽는 때가 아들 보를 먼저 보내는 참척의 아픔을 겪었을 때다. 바이든 곁을 묵묵히 지켜준 존재 중 하나가 카우프만이다. 카우프만은 NYT 기자가 “대통령의 절친인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묻자 이런 답을 내놨다. “조와 함께라면 깨진 유리 위라도 걸을 수 있어요. 조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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