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변절 대신 자결 택한 빈과일보
입력 2021.06.25 03:00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폐간 전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24일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폐간호 1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빈과일보는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1주년을 엿새 앞두고 이날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며 창간 26년의 역사를 마감했다./AP 연합뉴스
필자가 2007년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할 당시 목요일 아침마다 교내 신문 가판대로 달려갔다. 조금만 늦게 가도 남방주말(南方周末·난팡저우모)이 동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발간하는 주간지인 남방주말은 당시 베이징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문이었다. 정부 비판 사설을 거침없이 실었고, 정부 기관 비리와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곤 했기 때문이다. 광둥성 당 기관지라는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역 없는 보도로 일관하는 주간지에 중국 젊은이들은 ‘중국 언론 자유의 희망’이라며 열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중국 방문 당시 국영방송국인 CCTV 인터뷰를 거부하고 남방주말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그러나 10년 뒤 베이징 거리에서 다시 발견한 남방주말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가판대 구석에 진열돼 있었다.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던 대학생들은 사라졌고, 서방 언론은 남방주말에 대해 ‘과거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신문’이라 수식했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 통제가 심해지면서 보도에 제약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13년 1월 정치 권력 분산을 주장한 남방주말의 신년사를 검열 당국이 강제로 개작해 발행하자 분노한 기자들은 직(職)을 걸고 파업에 나섰다. 그러나 파업은 비극으로 끝났다. 수많은 기자가 징계받고 떠났으며 편집국장은 교체됐다. 이후 남방주말은 여느 중국 매체처럼 정부 눈치를 보는 기사를 양산하는 그저 그런 신문이 되기를 택했다. 지난해에는 중국 정부가 관영 매체 언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산당 충성도 시험을 내부에서 실시하고 있다.
남방주말이 중국 정부와 싸우다 끝내 몰락한 과정은 홍콩의 반중(反中) 성향 신문 빈과일보와 닮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빈과일보는 버티다가 변질되느니 자결(自決)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빈과일보는 24일 지면 발행을 끝으로 자진 폐간을 선언했다. 사주(社主)가 홍콩 당국의 표적이 돼 감옥에 갇히고, 회사 자금이 동결되고, 사옥 압수 수색마저 시작되자 향후 정상적 기조로 신문 발행하기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찬푸이만 빈과일보 전임 부편집인은 고별사에서 “직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폐간이란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빈과일보 폐간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다. 홍콩 주민들에게 한때 아시아 최고를 자랑했던 언론 자유의 종말을 알린 것이다. 750만 홍콩 주민은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언론 자유를 다시 누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빈과일보를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행한 24일치 빈과일보 1면에는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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