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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 매원(梅院)마을과 광주이(廣州李) 준석

Jimie 2021. 5. 29. 12:23

 

이준석 "화교는 말도 안되는 소리, 광주 이씨 이수성 전 총리 집안"

배성규 논설위원 입력 2021. 05. 28. 09:40 수정 2021. 05. 28. 10:44

 

"오세훈 승리 방정식 기억, 영남 당원들이 전략적 지지"

 

https://www.youtube.com/watch?v=Tqj5_px9_qA

野당대표 선거에서 부는 ‘이준석 돌풍’, 미풍일까 태풍될까?

2021. 5. 28.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 후보가 5월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비전스토리텔링PT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는 28일 조선일보 데일리 팟캐스트 강인선·배성규의 모닝라이브와 전화 통화에서 “저는 경기 광주 이씨 가문, 이수성 전 총리와 같은 집안”이라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화교라는 얘기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가 화교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한 것이다. 개그맨 강성범씨는 지난 19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니까 포털에서 이준석 관련 테마주가 뜨기 시작했고, 이준석 아버지가 화교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어 “이 전 최고위원이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대구 분이라고 해명을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얘기를 듣고 (대구보다는) 화교가 낫지 않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아버지는 이 전 총리와 같은 항렬로 돌림자도 같다”며 “집안에서 누가 화교라고 하느냐고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반중(反中) 정서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부모님이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아버지 고향은 경북 칠곡인데 대구와 연고가 있다는 것을 밝히면 지역에 기대어 쉽게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1위를 했다. 하지만 본선의 70% 비중인 당원 투표에서 과연 그 여세를 몰아갈 수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 후보는 “제가 지금 대구 지역 유세를 다니고 있는데, 대구 당원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지지해 주고 있다”면서 “2019년 오세훈-황교안 당대표 경선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당시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때문에 대구경북 당원들이 황교안 전 총리에게 몰표를 줬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오세훈 후보를 뽑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던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영남 당원들도) 전략적 투표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또 “(당원과 지지자들이) 오 시장을 탄생시킨 것처럼 다음 대선에서도 같은 승리 방정식을 통해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대선에서 이기려면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많은 영남 당원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당원들의 지지가 체감으로 느껴진다”며 “이번에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여론조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또 “젊은층의 지지와 기대감도 엄청나다”며 “청년들과 사진 촬영하느라 길을 가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내년 대선을 관리할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영입됐다. 하지만 1985년 생으로 나이가 36세인데다 지금까지 배지 한번 달지 못했다. 그래서 ‘0선’이라고 불린다. 이 후보는 “제가 당대표가 되면 가장 적극적으로 내·외부 대선 후보들과 만날 것이고, 개방된 대선 경선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 각 대선후보들이 단일화를 하는 모델보다는 국민의힘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국민경선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했다. “흥행으로만 보면 내년에 가서 막판 후보단일화하는 게 좋아 보이겠지만, 미리 (국민의힘에서) 경선 틀을 짜고 올해 안에 통합 후보를 내는 게 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어서 낫다”는 것이다. 그는 “외부의 제3 후보가 후보단일화 모델을 통해 대통령이 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정몽준·안철수의 실패를 다 보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어 “(제3 후보는) 재력이나 조직력 이런 게 다 기존 정당에 비해 부족하다”며 “그 분들도 바깥에 있기 보다는 국민의힘이란 정당의 틀에 들어오는 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외부 후보가 국민의힘에 들어온다면) 100% 국민경선으로 갈 수 있다”면서 “다만 우리 당원들 사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가 훨씬 높은만큼 당원 비율을 넣을 수도 있다. 그건 오픈해 놓고 논의하면 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최근 계파 논쟁에 대해 “지금 친박(親朴)이니 친이(親李)니 친(親)유승민이니 하는 계파 논쟁을 하는 것은 퇴행적”이라고 했다. 당 일각에선 이 후보가 유승민 전 의원과 바른정당에 함께 몸담았다는 점, 이 후보 아버지와 유 전 의원이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들어 이 후보가 유 전 의원 계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 전 의원계가 이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지금 유승민계가 얼마나 많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나는 누구의 계파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계파에 기대어 경선을 치를 생각이 없다.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구할 뿐이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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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화교는 말도 되는 소리, 광주 이수성 총리 집안" 

 

2021.05.28 | 조선일보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는 28일 조선일보 데일리...

"광주 이씨 가문, 이수성 전 총리와 같은 집안”이라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화교...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하 이준석)은 1985년생이다. 

본관은 광주(廣州).

본적은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경북 칠곡 왜관읍 매원리에 광주(廣州)이씨 집성촌이 있고 칠곡 청구공원에 할아버지를 모신,

광주 이씨 좌통례공파 22대손이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매원(梅院)마을은 광주(廣州) 이씨 집성촌으로 1595년에 광주 이씨가 이곳으로 입촌하면서부터 집성촌이 되었으며 1905년에는 최대 번성기로서 약 400여 호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증권사 지점장 등을 지낸 부친 이수월씨는 유승민 전 의원과 대구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이준석은 한양대병원에서 태어나 상계동에서 은곡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해외발령으로 싱가폴 1년, 인도네시아에서 1년을 보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목동에서 월촌중학교를 졸업했다. 2003년 서울과학고를 2년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했으나 하버드대로 진학하기 위해 자퇴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였다. 2011년 교육 벤쳐기업 '클라셰 스튜디오'를 창업하였으며 2011년 12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입당,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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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방(壯元坊)으로 불리던 칠곡 매원(梅院)마을 … 지경당 사랑채엔 아직 6·25 상흔이

[중앙일보] 입력 2017.08.16 02:25 수정 2017.08.16 17:03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매원마을,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은 영남3대 반촌(班村·양반 집중거주마을)이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광주(廣州) 이씨 집성촌 매원마을 전경.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아 상당수 한옥이 파괴됐다. [사진 칠곡군]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매원마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 1000여명이 살며 영남 으뜸의 반촌으로 불렸던 매원마을 입구엔 마을의 상징물인 감호당(鑑湖堂·경북 문화재자료 제619호)이 우뚝 서 있었다.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과 담양부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1569~1634) 선생이 마을 풍경을 즐기기 위해 1623년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서 후손들이 공부해 이조판서·대사헌 등 벼슬을 얻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마을에 있는 감호당(경북 문화재자료 제619호) 모습. 칠곡=김정석기자

 

 

“매원마을에서 대과에 장원급제한 사람이 22명. 워낙 급제한 사람이 많아 매원마을은 ‘장원방(壯元坊)’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매원마을은 풍수지리설에서 설명하는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지형에 속한다. 매화 꽃잎이 땅에 떨어져 있는 모양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매원마을을 사방 6개 산이 꽃잎처럼 둘러싸고 있다.

 

감호당을 지나 마을 쪽으로 500여m를 걸어 들어가자 오랜 역사를 지닌 한옥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1860년쯤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경당(止敬堂·경북 문화재자료 제620호)도 그 중 하나다.

지경당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을 끼고 있는 사랑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 동안 기둥이 뒤틀리고 지붕이 꺼진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수욱(70) 매원마을보존회장은 지경당 사랑채 대들보에 새겨진 연꽃 무늬나 지경당 입구 대문채에 얹힌 팔작지붕 양식을 소개했다. 여느 한옥 고택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면서 사랑채 마루와 창문짝에 선명히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을 보여줬다. 6·25 전쟁 당시의 흔적이었다. 지경당을 감싸고 있는 흙돌담도 다른 담들이 모두 쓰러진 가운데서도 150여년 세월을 살아남았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 안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나타난다. 마당에 꽃밭이 꾸며지고 내부 곳곳에 꽃이 새겨진 화려한 사랑채와는 달리 단아하고 담백한 모습이었다.

이 보존회장은 “사랑채의 추녀는 완만한 곡선으로 아름다움을 살렸지만 안채의 추녀는 직선으로 뻗었다. 앞뜰에도 꽃 하나 심지 않았다. 이는 안채에 기거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집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완전 배제한 것”이라고 숨은 뜻을 설명했다.

지경당 양옆으로는 각각 경북 문화재자료 제178호와 제646호로 지정된 해은고택(海隱故宅)·진주댁(晉州宅)이 자리해 있다. 해은고택은 1788년, 진주댁은 189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존회장은 “진주댁은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매원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칠곡 매원(梅院)마을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매원마을은 왜관읍에서 동으로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수지리설의 물형가운데 매화낙지형으로 용두산과 죽곡산, 아망산, 금무산. 산두산, 자고산으로 둘러싸여 매화꽃과 같다 하였다. 이런 곳을 풍수학에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명당이라 한다.

 

매화는 선비의 고고한 기상의 표상이므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매월마을은 북쪽 용두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마치 매화꽃을 흩뿌려놓은 듯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매원(梅院)이라 부르게 되었다. 동쪽의 웃마을을 상매, 중간마을을 중매 그리고 서쪽으로 뻗어난 아랫마을을 하매(서매)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양동마을, 칠곡매원마을을 일컬어 영남 3대 반촌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매원마을은 맨 처음 야성(야로)송씨와 벽진이씨가 살았다고 한다.

 

인조 원년(1623)에 광주(廣州) 이씨 석담 이윤우(李潤雨,1569∼1634)가 신동 윗갓에서 매원으로 이거 입촌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최대 번성기1905년에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다.

석담(石潭)은 후학을 위해 서매에 강학지소, 감호당을 지어 셋째인 이도장(李道章)에게 전수하여 후학을 양성하도록 했다. 중매와 상매는 석담의 둘째인 이도장의 차자로 대사헌을 지낸 박곡(朴谷) 이원록(李元綠)의 자손이 살고 있으며, 불천위(不遷位)를 모시는 문중이다. 대표적인 건물은 감호당, 사송헌 박곡종택과 박곡불천위사당, 해은고택, 관수재, 아산재, 용산재 등이 있다.

매원마을에는 예로부터 마을에서 보이는 곳에는 묘를 쓸 수 없는 금장지구(禁葬地區)가 있으며 서매와 상매에서 해마다 동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마을의 가옥이 대부분 다 소실되고 현재는 고택 60여 채 만 남아 있으며 180여 호가 살고 있다.

 ‘칼의 노래’  김훈 소설가외에 여러 작가들이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매원마을 지경당 주인의 9대조 조상님 공덕비를 필자가 답사한 바...  그 조상님은 이기명(李基命, 1664∼1724)으로 언양 현감을 지내면서 언양 석남사의 부역을 면해 주었다. 그러자 석남사에서 감사의 뜻으로 석남사 앞 개울 건너편 절벽 바위에 공덕을 새겨 현재에 이르게 하였다.

언양현감 이기명(李基命)의 공덕비

비문은 ‘縣監嘉義大夫李公基命愛僧善政碑’(현감가의대부이공기명애승선정비)로 해독됐다. 현감 이기명이 승려를 경애하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기념비다. 선정비의 주인공인 이기명 언양현감은 경북 칠곡(漆谷) 사람으로 1713년 숙종 39년 3월에 언양 현감으로 부임해 1715년 7월 임기를 마치고 돌아갔다. 비문은 자연스럽게 풍화된 화강암에 새겨져 있고 글자 주변은 연꽃무늬로 장식돼 있다. "영남읍지(1871년) 언양현 관적(官蹟)조에 "이기명 '구제견역 민회혜택'(救灾蠲役 民懷惠澤)'이라 설명을 달아 두었는데 이는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 부역을 줄여 혜택을 베풀었다는 의미"

좌측 바위 깎여진 부분에 공덕비가 새겨짐(2019년 2월 필자 촬영)

‘縣監嘉義大夫李公基命愛僧善政碑’(현감가의대부이공기명애승선정비)

 

조선 500년은 약18개의 유명 가문이 서로 얼키고 설키어 자신들만의 지배체제를 구축하여 경영하였던 나라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연관되는 가문이 나타나고 연관되는 인물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전국의 가는 곳마다 있는 공덕비를 보면 전부가 한 일들이 많은데 왜 조선은 그리도 가난했으며, 백성들은 외침, 민란, 전염병 등으로 고통의 세월 속에 살아야 했던가.

 

[출처] [칠곡여행] 매화낙지형의 명당 전통마을 ‘매원(梅院)마을’|

 

 

칠곡 왜관 매원(梅院)마을 지경당(止敬堂)의 붉은 찔레꽃

 

칠곡 왜관 매원마을의 붉은 찔레 - 왜관 가볼 만한 곳

봄에 찔레꽃만 보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이라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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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앙증맞게 달리는데 이것이 영실(營實)이다.

“원체 귀하다보니 일제 때는 일본 놈이 캐가고, 한국전쟁 때는 미국 놈이 캐가고 이래저래 다 캐가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게 가꿀 계획입니다" -이수욱 회장


찔레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학명은 ‘Rosa multiflora’이다.

꽃말은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들이나 산을 오르다보면 흔히 만나는 가시덤불이다. 그런 까닭에 쓸모없고 귀찮은 나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쓸모가 많은 나무다. 봄을 맞아 막 돋아나는 찔레의 햇순은 보릿고개시절 아이들의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각종 비타민 등이 풍부하여 아이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간혹 멋모르고 손을 들이밀었다가 당하는 가시에 찔리는 횡액을 제외 한다면 꽤나 쓸 만한 덤불나무다. 가을이 되면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앙증맞게 달리는데 이것을 영실(營實)이라 하며, 노인이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 전신이 부었을 때, 불면증, 건망증 및 꿈이 많고 쉬 피로하고 성 기능이 감퇴되었을 때 등등의 약재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