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檢형사부, 총장 승인없이 6대범죄 수사 착수못해… 검사들 반발
입력 2021-05-24 03:00수정 2021-05-24 11:30
법무부, 검찰조직 대대적 개편 착수
법무부가 반부패수사부와 공공수사부 등 일부 전담부서 외에 일반 형사부는 부패 및 공직자, 경제, 선거, 대형 참사, 방위사업 등 이른바 6대 범죄 수사를 개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3일 밝혀졌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검찰청 조직개편안’과 의견 조회 요구를 담은 공문을 21일 대검찰청을 통해 전국 지방검찰청에 보냈다. 법무부는 이달 말까지 의견을 취합한 뒤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다음 달 검찰 인사 전에 국무회의에서 개편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A4용지 9장 분량의 개편안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일반 형사부의 업무에서 6대 범죄는 제외된다.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다른 지방검찰청에서는 형사부 중 1곳에서만 6대 범죄를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하고, 검찰총장의 승인이 없으면 수사를 개시할 수 없게 된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일반 형사부가 수사 중인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 사건 등과 같은 수사 착수에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직접 수사 부서에 대한 통폐합도 진행된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반부패수사1, 2부와 강력범죄수사형사부 등 3개 부서가 반부패·강력1, 2부 등 2개 부서로 통합된다. 서울남부지검에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이 신설된다. 지난해 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증권범죄합수단을 폐지한 이후 대응 역량이 낮아졌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일부 부서만 허락을 받고 수사를 개시하라고 한 것은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가 21일 대검찰청에 내려보낸 검찰 조직 개편안에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핵심인 ‘검찰 수사권 축소’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은 부패·공직자·경제·선거 등 6대 범죄로 쪼그라들었는데 이번 직제 개편으로 일반 형사부는 이들 범죄 수사가 제한되는 등 그나마 남은 수사 기능마저 축소되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조직개편안을 확인한 검사들은 “검찰개혁의 마무리 투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더 철저하게 묶기 시작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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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부가 ‘정권 수사’하자 통제장치 마련한 듯
법무부의 ‘2021년 상반기 검찰청 조직개편안(案)’에 따르면 6대 범죄 등에 대한 직접 수사는 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나 공공수사부 등 전담부에서만 할 수 있다. 법무부는 해당 공문에서 “통상의 형사부는 일반 형사사건을 담당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6대 범죄와의 구분이 불명확하다”며 “형사부 분장사무인 일반 형사사건에서 ‘6대 범죄’ 사건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검은 전담부에서만 6대 범죄 수사가 가능하고, 그 외 다른 지방검찰청은 형사부 ‘말(末)부’에서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지검 형사부에서 공직자 비리 등 6대 범죄를 인지하거나, 관련 고발장이 접수된 경우에도 검찰총장의 승인 없이는 수사에 착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의 반부패수사부가 손발이 묶인 사이, 일선 검찰청의 형사부가 일부 ‘정권 사정(司正)’ 수사를 했던 점을 고려해 예방적 조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관련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은 수원지검 형사3부가 수사해왔다. 또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이나 이상직 의원 배임 횡령 사건은 각각 대전지검 형사5부와 전주지검 형사3부 등 형사부 말부에서 수사해 왔는데 앞으로는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김남준 변호사)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라는 권고를 내놓자 하루 만에 “형사사법의 주체는 검찰총장이 아닌 검사”라며 개혁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임할 때는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문제 삼다가 이제는 입장을 바꿔 총장의 승인 없이는 6대 범죄 수사를 할 수 없게 막아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일부 지방검찰청의 강력부를 반부패강력부로 통폐합하고, 수사 협력 부서인 반부패수사협력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개편안에 포함시켰다. 노태우 정부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등 전국 조직범죄 수사의 메카로 불렸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지난해 직제개편 때 ‘강력범죄형사부’로 명패를 바꿔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반부패부에 통폐합될 운명을 맞았다. 일선에선 “폭력조직이 주가를 조작하고, 해외 자본을 끌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점령하는데 검찰은 손을 쓸 수가 없어졌다”는 씁쓸함이 감돈다.
반부패수사협력부 신설은 경찰의 반부패 범죄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검찰 기능의 초점을 경찰 수사에 대한 지원과 협력에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추미애가 없앤 금융범죄수사단 사실상 ‘부활’
서울남부지검에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가칭)이 신설된다. 추 전 장관이 지난해 1월 비직제 부서였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하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감시 기능이 취약해졌다는 법조계와 금융권의 지적이 반영된 것이다. 법무부는 “라임·옵티머스 등 대형 금융사건이 발생할 경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유관 기관이 상시 협력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복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의 취지에 따라 검사가 직접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거나 수사하지는 않고 수사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직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김영기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와 연계되지 않은 타 기관과의 협력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법무부가 합수단 부활에 대한 여권 안팎의 반감을 의식한 게 아닌지 궁금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부장검사들에게 희망 보직을 25일까지 지망하라고 통보했다. 이번 직제개편이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취임 후 단행될 대대적 인사안의 밑그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부장검사의 필수 보직기간은 통상 1년인데 직제개편을 할 경우 ‘1년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대규모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장관석·황성호 기자
총장·장관 허락해야 권력수사…검찰 팔 자르는 박범계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10:35 수정 2021.05.24 11:02
법무부가 검찰의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요범죄에 대한 직접수사 기능을 크게 약화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한다. 일선 지방검찰청 형사부가 6대 범죄 수사를 개시하려면 사전에 검찰총장 또는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올해 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6대 범죄로 축소한 데 이어 일선 지검 형사부는 “권력범죄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의도여서 검찰 내부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 검찰청 조직개편안 추진
2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지난 21일 대검찰청을 통해 전국 각 지검에 내려보낸 ‘2021년 상반기 검찰청 조직개편안’에 6대 범죄 수사는 원칙적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공공수사부 등 전담부에서만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담부가 없는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전국의 일선 지검의 경우 형사부 말(末)부가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6대 범죄를 수사할 수 있고, 그 아래 지청의 경우는 검찰총장의 요청과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시조직을 설치해야만 6대 범죄 수사 개시가 가능하도록 했다. 일선 지검·지청에서 6대 범죄를 수사하려면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이 같은 ‘형사부 분장사무 정비’의 이유로 ‘직접수사 자제 필요성’을 들었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순기능적 평가도 있으나, 편파수사·과잉수사 논란으로 인해 검찰개혁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면서다. 그러면서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 사법통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되, 직접수사 역량은 꼭 필요한 사안으로 집중함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또 “통상의 형사부는 ‘일반 형사사건’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는데 6대 범죄와의 구분이 불명확하다”며 “형사부 분장사무와 타 부서 분장사무의 구분을 위해 ‘일반 형사사건’에서 6대 범죄 사건을 제외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6대 범죄 전담부가 아닌 일반 형사부의 경우 ▶경찰공무원 범죄 ▶경찰이 송치한 사건 검토 중 새롭게 인지한 범죄에 한해서만 직접수사가 가능하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검찰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뉴스1
대검이 파악한 올해 1분기 개정 형사법 운영 현황에 따르면 검찰이 인지한 직접수사 사건 접수 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58% 감소했고, 검찰 전체 사건 중 직접수사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도 4% 줄었다. 반면, 1차 수사종결권을 쥔 경찰의 불송치·수사중지 결정에 따라 보완수사·재수사·시정조치 요구 건수가 느는 추세인 만큼 검찰의 역할 비중을 직접수사보다는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에 더 두겠다는 게 법무부의 계획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수사권 개혁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과제 중 하나지만 아직 채 정비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며 “나머지 숙제를 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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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부 없는 지방, 권력형 범죄 블루오션 만드는 셈”
이와 관련,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일반 서민을 처벌하는 형사 기능만 강화하고 권력형 범죄에 대한 수사 기능은 뺐다”며 “앞으로 지방 권력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선 손을 떼도록 해 권력형 범죄의 블루오션을 만든 셈”이라고 비판했다. 일선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경찰이 주도하는 부동산 투기 수사만 봐도 말이 수사협력이지 검찰의 법률자문은 듣지도 않는데, 앞으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검사는 “지검·지청서 직접수사를 하려면 대검이나 법무부의 허락을 받도록 해 수뇌부의 외압을 합법화했다”며 “이제 검사가 직접수사를 할 수 없는 범죄를 인지한 경우엔 공무원의 고발 의무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234조에 따라 검사가 경찰에 고발하는 수밖엔 없겠다”고 푸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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