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맹자 : 삶보다 좋고 죽음보다 싫은 것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 승인 2021.04.05 16:41
“나는 죽음이 싫지만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은 옳은 일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왕이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신하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익만 추구하게 돼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 경계
‘왜 인의를 실천해야 하는지’
그 근거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유가철학 수준 한층 끌어올려
“항상 옳은 마음 내기 위해서는
일정 소득 있어야 한다” 주장
‘사회복지 철학적 근거’로 활용
스승 공자를 따라 삶보다 의(義)를 택했던 아성(亞聖) 맹자.
지금까지 맹자(孟子, B.C.372~B.C.289)의 영향으로 30년 넘게 행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결혼식에 갈 때 신랑의 축의금 봉투에는 ‘축유실(祝有室)’, 신부의 경우에는 ‘축유가(祝有家)’라고 쓰는 것이다. 군 제대 후 어느 선생님에게 맨투맨으로 <맹자>를 배운 적이 있다. 꼬박 4개월에 걸쳐 전체를 읽었는데, 등문공(滕文公) 하편에 “장부가 태어나면 집 갖기를 원하며(丈夫生而願爲之有室) 여자가 태어나면 가정 갖기를 원하는 것이(女子生而願爲之有家) 부모의 마음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실(室)이란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이며, 가(家)는 여자가 남자를 남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배울 당시 선생님이 유실(有室)과 유가(有家)를 결혼식 축의금 봉투에 쓰면 좋다고 해서 그때부터 습관처럼 활용하고 있다.
맹자의 영향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성선설이나 역성혁명, 호연지기 등은 오늘에도 여전히 익숙한 용어들인데, 모두 맹자와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어머니들에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자녀 교육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자식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다시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엔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처음 공동묘지에 살았던 것은 맹자에게 삶과 죽음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시장으로 옮긴 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한 다음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는 것이 맹자 어머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이 해석이 맞는다면 성인에 버금간다 해서 붙여진 아성(亞聖)이란 별명은 모두 현명한 어머니 덕이라 할 것이다.
스승의 길을 걸은 제자
맹자는 추(鄒)나라 사람으로 여러 면에서 마음의 스승인 공자를 많이 닮았다. 맹자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왕도란 한마디로 힘이 아니라 인의(仁義)에 바탕을 두고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일이다. 하지만 그의 뜻을 받아들인 군주는 없었다. 당시는 혼란의 전국시대였기 때문에 제후들에게 부국강병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었다. 맹자 역시 공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펼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그는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는 데 힘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는 스승이 걸었던 길을 묵묵히 따랐던 철학자였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자는 인간이라면 인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맹자는 왜 인의를 실천해야 하는지 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스승이 확립한 유가철학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처음부터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은 위험에 빠지거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측은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예컨대 물에 빠진 어린 아이를 보면 누구라도 가만있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뛰어가게 된다. 이는 아이를 구해서 어떤 이익이나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다. 이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이다. 측은지심을 비롯하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흔히 사단(四端)이라 하는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4단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인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논리다.
중국 산동성에 자리한 맹자의 묘.
또한 맹자는 이를 근거로 모든 인간의 성품은 선하다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간이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선천적인 본성이 아니라 후천적인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잘 기르고 악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이후 순자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면서 인성(人性)이 선한가, 악한가 하는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맹자의 노년기 삶의 흔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죽기 전에 남긴 유훈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삶과 어울리는 글을 묘비명이라 생각하고 적어보았다.
“나는 삶도 원하고 의(義)도 원한다. 하지만 둘을 모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 나는 죽음이 싫지만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은 옳은 일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하필 의(義)인가?
지금도 <맹자> 첫 장을 펼쳤을 때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양혜왕(梁惠王)은 맹자가 찾아오자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곳까지 오셨는데,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맹자가 단호하게 답한다.
“왜 하필 이(利)를 말하는 것입니까? 오직 의(義)만 있을 뿐입니다.”
<맹자>를 공부할 당시 ‘하필왈이(何必曰利)’라는 네 글자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으며 지금까지도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다. 왕이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신하를 비롯하여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결국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익이 아니라 인의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취지였다. 물론 당시는 전국시대였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맹자는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인의를 강조하고 또한 실천하는 삶을 살았을까?
유학에서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를 구분하는 전형적인 기준이 있다. 어떤 판단이나 행위를 할 때 이익과 손해를 먼저 생각하면 소인이고, 옳고 그름을 생각하면 군자라는 것이다. 사극을 보면 ‘소인배’라는 말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학자들이 있는데, 모두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세상에는 매우 쉬운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옳은 일이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나쁜 일이면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옳은 일인데 손해가 되거나, 그른 일인데 이익이 되는 경우다. 사람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군자와 소인의 에너지는 각각 의(義)와 이(利)를 향해 나아간다.
맹자는 소인이 아니라 군자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맹자가 삶과 의(義)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기꺼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고 말한 것도 인의의 실천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주어진 천명(天命)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지독한 굶주림과 추위, 가난 앞에서도 의만을 주창할 수 있을까? 맹자는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옳은 마음(恒心)을 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소득(恒産)이 있어야 한다. 그 유명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無恒産而無恒心)’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맹자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가 사회복지를 실천해야 하는 철학적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쓰게 되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신호등 지킬 생각을 내겠는가.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오늘처럼 자본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세상에서 옳은 일만 추구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어찌 보면 민망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맹자에게 ‘왜 하필 의(義)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맹자의 대답은 한결 같다. 그저 그것이 옳은 길이니까 걷는 것이며,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사는 것이라고. 문득 영화 <1987>의 대사가 생각난다. 배우 김태리는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강동원에게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가족 생각은 안 하냐고, 아무리 시위를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강동원은 이렇게 답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잘 안 돼.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싶은데 너무 아파서 잘 안 되는 마음이 앞서 언급한 불인지심이며 유학에서 강조하는 천명(天命)이자 양심이다. 역사는 이익이 아니라 옳음을 기준으로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이러한 삶이 외롭지는 않았을까? <논어>에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隣)”는 구절이 나온다. 맹자는 스승 공자의 이웃이 되어 그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맹자 이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덕의 이웃이 되어 의로움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안중근 의사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捨生取義)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너는 진정 이웃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불교신문3660호/2021년4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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