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내 편 아니면 적” 당신도 파시스트?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논픽션팀 과장
입력 2021-05-15 03:00수정 2021-05-15 03:17
◇파시스트 되는 법/미켈라 무르자 지음
·한재호 옮김/128쪽·1만3000원·사월의책
책을 소개하기 전에 책의 끝에 실려 있는 파시스트 자가진단 결과를 허심탄회하게 공개하겠다. 나는 65개 문항 중 19개에 ‘그렇다’를 체크해서 초보 파시스트로 진단받았다. 내가 체크한 문항은 이런 것들이다. ‘각종 소란 때문에 인간들이 너무 피곤하다’, ‘작은 말실수로 마녀사냥 당한 적이 있다’, ‘자유주의 엘리트란 늘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대중을 깔보는 이들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민주주의의 적 파시즘을 다룬다. 파시즘이라고 하면 무솔리니,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와 세계사적 배경까지 생생하게 떠올리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나처럼 파시즘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면 이 짧고 웃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민주주의를 믿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는 파시즘을 정의하느라 끝없는 지면을 썼던 지식인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파시스트처럼 행동하는 방법 일곱 가지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파시즘은 복잡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비용이 덜 들고 더 신속하며 더 효율적인 체제”다. 파시즘을 일자리가 늘 부족하다는 사회 문제에 대입해보자. 일터의 현실을 조사하고 예산을 조정하는 일과 외국인 노동자를 쫓아내는 일 중 어떤 것이 빠를까. 파시즘 입장에선 당연히 후자다. 실제로 쫓아낼 필요도 없다. 외국인을 ‘적’으로 규정한 다음에 쫓아내자고 말만 해도 된다.
내 안의 파시즘이 가장 격렬하게 호응한 부분은 ‘모든 일을 사소하게’ 만들라는 장이었다. 각종 소란이 들끓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기사 댓글창에서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복잡한 문제는 단순해지고 사소해져 소음 속에 묻히고 만다. “인터넷 시대에 파시스트가 되는 것은 행운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과거라면 파시스트 정권의 유관부처가 도맡았을 단순한 메시지의 반복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의견을 독자와 대중에게 알리는 출판인의 사명감은 인터넷 세상에서 무의미의 늪에 빠진다.
주요기사
파시스트 되는 법을 알면 파시스트가 되지 않는 법도 알 수 있다. ‘당신들은 포퓰리스트잖아요’라고 딱지 붙이기일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자’라고 자부하기일까. 그럴 리가. 저자는 “오직 자기들끼리만 연대감을 주고받는가?”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출판인이든, 엘리트든, 대중이든 끼리끼리만 뭉치면 망한다. 가치 있는 의견에서 더 중요한 옥석을 골라내고, 헛소리의 맥락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괴롭고 처절한 길만 남았다. 역시 21세기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논픽션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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