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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그리고 로얄패밀리

Jimie 2021. 4. 16. 06:46

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그리고 로얄패밀리

2020. 12. 13. 13:28

 

 

대관식


엘리자베스는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27세의 나이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즉위했다.
엘리자베스는 1952년 2월 6일,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가 죽었을 때, 지배 군주의 책임을 떠맡았었다. 사상 처음으로 대관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이 행사의 화려함과 장관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 필립공


엘리자베스는 1947년 11월 20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먼 사촌 필립 마운트배튼(어머니 쪽에서 입양한 성)과 결혼했다.
엘리자베스는 겨우 13살 때 그리스의 앤드루 왕자의 아들인 필립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 반했다. 두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에 빠졌다. 엘리자베스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반면 필립은 떠들썩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조지 6세는 필립공이 덴마크와 그리스 왕족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동안 몇몇 사람들에게 거친 성격을 지녔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망설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결혼식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여전히 회복되는 중이었고, 엘리자베스는 가운 원단을 얻기 위해 의류 쿠폰을 수집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엘리자베스와 필립은 지체 없이 후계자를 낳았다 아들 찰스는 그들의 결혼 다음 해인 1948년에 태어났고, 딸 앤은 1950년에 생겼다. 엘리자베스는 1960년과 1964년에 각각 앤드류와 에드워드라는 두 아이를 더 낳았다.

1969년 그녀는 찰스 왕세자를 왕자로 추대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찰스 왕세자를 후계자로 삼았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그 의식을 보기 위해 채널을 맞추었다.

1981년 32세의 찰스는 19세의 다이애나 스펜서(최우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결혼했고, 이후 가족들로부터 결혼에 압력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결혼식은 런던의 거리에서 엄청난 군중을 끌어 모았고 수백만 명이 텔레비전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당시 군주제에 대한 여론은 특히 강했다.

손자와 증손자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는 결혼과 함께 , 1982년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이, 1984년 해리 왕자가 탄생했다. 엘리자베스는 윌리엄과 해리에게 헌신적인 할머니로 떠올랐다. 윌리엄 왕자는 그와 케이트 미들턴이 2011년 결혼식을 계획했을 때 귀중한 지원과 지도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22일, 엘리자베스의 손자 윌리엄과 케임브리지 공작부인 캐서린은 공식적으로 "케임브리지의 왕자 조지"로 알려진 왕위 계승자인 그들의 첫 번째 아이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를 맞이했다.

 

2015년 5월 2일, 윌리엄과 케이트는 두 번째 아이인 여왕의 다섯 번째 증손녀 샬롯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를,, 2018년 4월 23일, 그들은 셋째 아이인 루이 아서 찰스 왕세자를 맞았다.

2019년 5월 6일, 서섹스 공작 해리 왕자와 그의 아내 메건 마클은 아치 해리슨 마운트배튼 윈저의 탄생으로 여왕에게 또 다른 증손자를 주었다.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 외에도, 여왕의 다른 손자들은 요크의 베아트리체 공주인 피터 필립스, 요크의 외제니, 자라 틴달, 레이디 루이스 윈저, 그리고 제임스 세번이다.

패밀리 트리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요크 공작부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요크 공작 알버트 왕자는 메리 여왕과 조지 5세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보우즈-라이온 부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유럽의 대부분의 군주들과 유대를 맺고 있다. 그녀의 영국 조상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1837년 ~ 1901년)과 조지 3세 (재위 1760년 ~ 1820년)이다.

 

군림하다


엘리자베스의 길고 주로 평화로운 통치는 그녀의 백성들의 생활, 조국의 권력, 영국을 해외에서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군주제를 어떻게 보고 묘사하는가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로 특징지어져 왔다. 입헌 군주로서 엘리자베스는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정기적으로 수상들과 상의한다.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었을 때, 전후 영국은 여전히 실질적인 제국과 지배권, 의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러한 소유물들 중 많은 것들이 독립을 이루었고 대영제국은 영연방 국가들로 진화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에 따라 영연방 수장이자 영국 대표로서 1965년 독일로 획기적인 여행을 떠나는 등 다른 나라를 방문했다. 그녀는 50여 년 만에 그곳을 국빈 방문한 최초의 영국 군주가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 엘리자베스는 광범위한 여행을 계속했다. 1973년에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영연방회의에 참석했고, 1976년에는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 2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일주일 이상 지난 후 그녀는 하계 올림픽을 열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었다. 1979년 쿠웨이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을 여행하며 국제적인 관심과 폭넓은 존경을 받았다.

1982년 엘리자베스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왕실 해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를 걱정했다. 영국은 몇 주 동안 계속된 충돌인 포클랜드 제도에 대해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다. 250명 이상의 영국 군인들이 이 분쟁으로 사망했지만,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의 안도를 위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