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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Jimie 2020. 5. 15. 05:33

중용(中庸)

&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우고 늘 (그것을) 익히면  역시 즐겁지아니한가!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이 번역한 《한서》(전 10권).

 

 

매일신문

[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암벽 등반하듯 온 힘을 기울여 읽어야 겨우 논어 이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옛것을 익힌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아니 접근 자체가 어렵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조선왕조실록과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능통한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을 만나 이야기를 청했다.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한 그는 작년(*2016) 초 회사를 나와 논어 강의와 태종실록 번역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논어등반학교'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논어를 가르치는 곳이면 논어교실 또는 논어학당이라 했을 터인데 왜 등반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논어를 접한 지 10년이 좀 넘었다. 대략 5년 정도 공부하고 나서 "논어란 게 이런 책이구나!"라고 깨달았다. 2012년 1천400쪽의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책을 내면서 서문에 "논어는 산책이나 트레킹하듯 읽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고 썼다. 논어는 암벽등반을 하는 것처럼 온 힘을 기울이면서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쉽게 구경하듯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 책 서문에 '등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지금 일을 선택하면서 논어 자체가 그런 책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를 분명히 알려야겠다는 의도에서 등반학교라고 이름 지었다.



-등산에는 일반인도 비교적 쉽게 시도할 수 있는 트레킹이 있고, 고도의 훈련 없이는 도전하기 힘든 암벽등반이 있다. 그런데 굳이 암벽등반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겁이 나 접근 자체를 꺼리지 않겠는가?

▶난이도의 측면이 아니라 읽는 이의 태도가 중요 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어법이다. 북한산에 가면 백운대를 볼 수 있다. 백운대를 밑에서 올려다볼 수도 있지만, 암벽등반으로 올라간 사람만이 느끼는 감회 도 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은 백두대간 종주하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논어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는 책이다. 지금까지 많은 해설서나 번역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 태도의 문제로 논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직장 그만두고 새로운 모험을 한 셈인데, 논어등반학교 현황은 어떠한가?

▶반응이 제법 좋아 지금 3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한 지는 1년 조금 넘었다. 오는 9월에 네 번째 반이 개강한다. 개강할 때마다 서른 명 정도의 신입생이 온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로 수강생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변이 넓어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서도 괜찮다.(웃음)


-논어 강의도 하면서 집필 작업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까지 약 60권의 책을 출간 했는데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요즘은 어떤 책을 준비 하고 있는가?

▶사실 큰 계획을 가지고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다른 작업이었다면 회사에 있으면서 예전처럼 책을 썼을 텐데 너무 큰 작업이어서 결단을 내렸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 을 대학교 1, 2학년 학생이 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눈높이와 현대어로 주석을 달아서 완역하는 작업이다. 태종의 재위 기간이 18년이다. 1년당 한 권씩 쓰면 18권이 된다. 여기에 재위하기 전 태조실록에 있는 태종의 행적과 세종실록에 있는 4년 동안의 상왕으로서의 태종의 행적을 기록하면 스무 권 정도로 정리가 될 것 같다.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 한나라 때 쓰인 한서(漢書) 번역 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직 국내에 번역이 안 돼 있다. 한서를 번역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모태가 한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 하려는 의도에서다. 또 하나는 한문을 좀 제대로 이해하자는 취지에서다. 조선이 망하고 나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한문을 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고려까지 포함해 1천 년 역사의 지혜를 스스로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너무 치명적으로 끊어져서 원점에서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정신세계의 원형이 되는 중국의 사서를 통해 기본 어휘와 문장력 그리고 한문 번역 기술, 이런 것들을 회복하고 나서 우리 것을 다시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한문으로 된 원문을 번역해 내는 국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예전에 영어나 독일어를 번역하면서 마주쳤던 상황과 비슷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 책과 독일어 책 번역은 사실 거의 일본 책 중역(重譯)이었다. 문장도 맞지 않고 그랬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상당히 좋아졌다. 한문 번역은 아직 초창기 수준인 것 같다. 최근 젊은 학자들이 감탄할 만한 수준의 번역 작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 위로 올라가면 사실 토씨 바꿔 놓는 수준이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제가 만든 말이 무역(無譯)이다. 논어 강의하면서 놀라는 게 내용을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해 주면 대학생들이 정말 재미있어한다. 이래야 온고이지신이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옛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그릇된 고정관념이다. 그 자체가 워낙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만 하면 된다. 젊은 친구들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이 거기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저는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이한우 교장은 원래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조선왕조실록, 사서삼경을 연구하게 됐다. 특이하다. 계기가 있었나?

▶2000년부터 1년간 독일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본에 충실한 독일 사회의 모습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번역한 책이 철학 책이 아니라 사회학자가 쓴 『안전의 원칙』이라는 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원래 이렇게 기본이 없는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답을 찾자고 시작한 것이 조선왕조실록 다 읽기였다. 꼬박 7년이 걸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선 초기에서 중기까지를 보면 정말 부러울 정도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디에서 그런 기본을 배웠을까 찾다가 입문하게 된 것이 사서삼경이었다. 과정이 이러하다 보니 논어 책을 처음 내면서 선택한 방법이 조선왕조실록 안의 경연(經筵, 고려'조선 시대에 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 또는 그런 자리)에서 논어를 가지고 대화하는 장면으로 논어를 푸는 것이었다.


-그렇게 접근하다 보니 기존 출판물들과 어떤 차이가 발생하던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해석하는데 오류가 두 군데나 있다.


 時 에는( '때로' 혹은 '때때로'라는 의미가 없다.) '항상' 혹은 '수시로' 라는 뜻이다.

('또한'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역시' 할 때의 이다.


첫 문장에 '또한'이 나오면 비문(非文'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이 말의 진짜 취지는 "임금이 늘 배우고 익히는 것을 기뻐서 해야 한다. 그것을 싫어하는 순간 주변에 와서 좋은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스승과 같은 좋은 신하가 사라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예컨대 임금에게 넌지시 "전하께서 학이시습지의 본뜻을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 "그만 놀고 좀 겸손하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논어는 사대부들의 심신수양서가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군주의 리더십 교범이다.


-논어에서 권장하는 지도자상은 어떤 것인가?

논어가 제시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굳셀 강(剛), 눈 밝을 명(明), 즉 강명한 지도자다.

이때 강하다는 것은 기세가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래가는 마음을 뜻한다. 명은 사람에도 밝고 일에도 밝은을 뜻한다. 논어는 일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하라고 한다. 말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행동을 체크하라는 당부다. 경사(敬事)라는 표현도 나온다. 일에 임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사전에 주도면밀해야 하고 아주 잘 계획을 세워야 일관되게 가고 굳셀 수 있다. 처음에 계획을 잘못 세우면 가다가 흔들릴 수 있다. 일이 흔들리면 신망이 흔들리고 리더로서 엉망이 된다. 그래서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인간관계까지 고려해서 무탈하게 끌고 가야 한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성공은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의미다.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냐를 변별하는 게 리더의 능력이다.


-아무래도 논어는 2천 년도 더 된 이야기다 보니 지금의 시대 상황에 직접 대입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은퇴한 회사 선배가 논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죄송한데 노자를 공부하시라. 자유롭게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논어는 조직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인간의 자유는 다른 데서 배워야 한다. 논어의 시대적 배경인 기원전 5∼6세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이 처음으로 생긴 시기다. 문명이 생기면 도시가 생기고, 도시가 생기면 조직이 생긴다. 조직이 처음 생겼을 때 조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필요성이 절박했을 것이다. 그때 논어가 나왔다. 그 지혜는 여전히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본다. 지난 2월 논어 1반이 끝나고 뒤풀이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논어가 작은 구절로 498개인데 498개 중 현대사회에 필요 없다고 생각한 구절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

다만 자유인이 되고 싶은 분들은 노자나 장자를 읽으시라.


-2014년에 세종대왕이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하는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번역해 출판하였는데….

대학연의는 송나라 때 진덕수(眞德秀)가 쓴 책인데 조선을 만든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도전을 비롯하여 조선을 만든 신진 사대부가 공유했던 텍스트다. 그 전에 임금들이 제왕학 교재로 활용한 책은 정관정요(貞觀政要)다. 그러나 정관정요는 대학연의와 비교하면 급이 떨어진다. 대학연의는 아주 치밀하게 임금의 리더십을 가르친 책이다. 부단한 학습을 통해 성군이 되는 가능성을 보여준 군주가 세종이다. 아무런 국정 경험 없이 스물네 살에 임금이 된 세종은 경연에서 제일 먼저 대학연의를 읽자고 제안한다. 한 번 읽고 나서 한 번 더 읽자고 한다. 따라서 대학연의를 모르고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을 논하는 건 무리다. 세종대왕 본인 입으로 그 책을 읽고 성군이 됐다고 얘기했고, 실제로 100번 이상 읽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책이 번역이 안 돼 있었다. 그래서 번역에 매달렸다. 양이 좀 많았다. 200자 원고지로 7천700장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6개월 만에 번역을 끝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조금 번역하고 퇴근해서 또 하고 하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한국과 중국의 좋은 고전들을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전의 오역 중에 바로잡고 싶은 것이 또 있다면?


중용(中庸)이다. 주로 좌우 균형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중용은 명사가 아니라 두 개의 동사다. 중(中)은 적중할 중 이고 용(庸)은 유지할 용 이다.

좌우가 있는 곳에서 가운데 자리 잡는 것이 중용이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본질이 있으면 거기에 정확하게 적중해야 하고, 그 적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용이다. 지나쳐도 못 미쳐도 안 된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중(中)에 대한 설명이다. 중과 용을 언급할 때 가져야 할 태도가 성(誠)이다. 성은 열렬함이다. '성'한 마음이 없으면 '중'을 할 수 없다.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적중이 일어나겠는가. '중'에 성공한 사람도 열렬한 마음을 잃는 순간 다시 굴러떨어진다. 그걸 오래 유지하는 것이 강명(剛明)함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공자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우리는 공자 하면 '공자 왈 맹자 왈'(실천은 없이 이론만을 일삼는 태도)을 떠올리는데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공자가 굉장히 높이 평가한 지도자들이 있다. 요'순임금이다. 그 옛날에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지 않고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극찬을 한 것이다. 수천 년 전 얘기지만 지금도 거의 그대로 적용이 된다. 사사로운 이익을 중시할 것이냐 아니면 공적 대의를 따를 것이냐의 화두를 던졌기 때문에 공자는 아직도 살아 있다. 공자를 보수냐 진보냐로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진심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愛人)이 공자의 인(仁) 메시지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심으로 진보와 보수 중 누가 '인'을 잘 실천하느냐에 따라 부침이 있을 것이다. 공자의 메시지는 수용하기에 따라 현대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잘 활용하면 지혜의 샘 이 될 것이다.


※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은 6월 24일 오전 9시 30분 TBC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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