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14연대 좌익의 반란... 고교 80% ‘무장봉기’로 가르쳐
[김기철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여순 사건을 다시 보다
입력 2021.03.25 03:00 | 수정 2021.03.25 03:00
1948년 10월 여순 사건 진압 후, 반란군 협조자를 가려내기 위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여순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국군 전신) 14연대 2000여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순천 등을 점령하면서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이다. 반란군은 지역 좌익 세력과 함께 ‘제주도 출동 반대’ ‘미군 즉시 철퇴’ ‘인공(人共) 수립 만세’ 같은 성명서를 여수 읍내 곳곳에 붙였다. 경찰관과 기관장, 우익 청년단원, 지역 유지 등을 여수 경찰서 뒤뜰에서 집단 사살하기도 했다. 정부는 군을 파견해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 이렇게 나온다.
대한민국에 총부리 겨눈 14연대
여순 사건은 한때 ‘여순 반란’ ‘여순 폭동’ 등으로 불렸다. 정규군이 공식 명령을 거부하고 총을 거꾸로 든 전형적 반란이기 때문이다. 진압군에 쫓겨 지리산에 들어간 14연대 반군은 빨치산 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지금 전국 고교 10곳 중 8곳은 ’14연대 반란'을 ‘무장봉기’ 또는 ‘봉기’로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로 수업 중이다. 작년에 새로 바뀐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14연대 반란을 그렇게 서술했기 때문이다.
본지가 최근 국회 정경희(국민의힘) 의원실과 함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현황을 조사했더니, 작년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선정한 전국 고교 1893곳 중 1527곳(80.7%)의 교과서가 ’14연대 반란'을 ‘무장봉기(봉기)’로 서술했다. 고교생 4명 중 1명꼴로 가장 많이 배우는 미래엔 교과서(25.3%)는 “부대 내의 좌익 세력은 ‘제주도 출동 반대’ ‘통일 정부 수립’을 내세우며 무장봉기하여 여수와 순천 지역을 장악하였다”고 썼다. 금성·동아·해냄·지학사·씨마스 등 6종 모두 ‘반란’ 대신 ‘무장봉기’로 기술했고, 천재교육은 ‘봉기’로 썼다. 비상교육 1종만 ‘군대 내 좌익 세력이 출동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며 봉기라는 표현을 피했다.
일부 학자들 “중립적 용어인 ‘봉기’ 써야”
반란, 폭동은 부정적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중립적 용어인 ‘봉기’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눈 여수 14연대의 행위를 봉기로 쓰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5·16이나 12·12 사건을 교과서에서 군부가 ‘무장봉기’했다고 쓰면 어떻게 될까.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5·16과 12·12 사건을 ‘군사 정변’ ‘군사 쿠데타’ ‘군사 반란’으로 쓴다.
무엇보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을 시작으로…'라며 ‘무장봉기’가 아니라 ‘반란’이라고 명기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노무현 정부 때 펴낸 ‘6·25전쟁사’도 ‘여순 사건’을 ’14연대의 반란 사건'이라고 못 박았다.
“남로당이 14연대에 침투”
‘여순 사건’ 대신 ‘여순 항쟁’ 또는 ‘여순 민중 항쟁’이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순 사건’으로 전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주철희씨는 “여순은 제주도민을 학살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해서 일어난 군인들과 지역민들의 항쟁”이라고 했다. 도올 김용옥씨도 책 ‘우린 너무 몰랐다’와 방송 특강에서 ‘여순 민중 항쟁’을 편들었다.
14연대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들이 사건 당일 연병장에 장병들을 모은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반란에 반대하는 장병을 즉결 처형한 것이다. 육군본부가 1954년 펴낸 ‘공비토벌사’(14쪽)엔 장교 3명과 하사관 3명을 살해했다고 썼지만 20여명이 총살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14연대 반란군은 여수에 진입한 뒤 좌익 세력과 함께 경찰관과 기관장, 우익 청년단원, 지역 유지 등을 인민재판에 넘겨 처형했다. 살육의 문을 먼저 열어젖힌 14연대 반군과 좌익 세력에게 정당성을 인정하는 ‘항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올 초 쓴 ‘폭력과 윤리: 4·3을 생각함’이란 논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남로당 무장대가 10살, 14살짜리 소녀를 마을 유지 딸이라는 이유로 칼과 죽창과 낫으로 살해하는 등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게 어떤 도덕적 정당성이 있느냐며 ‘무장봉기’ ‘항쟁’에 의문을 던졌다.
진보 성향 현대사 연구자 중에도 여순 14연대의 행위를 반란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창립한 역사문제연구소 서중석 이사장은 작년에 낸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개정판에서 ‘여순 사건은 지창수 상사 등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117쪽)고 썼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교과서 8종 중 7종은 ‘무장봉기’라고 판박이처럼 쓴다. 교과서 주무부서인 교육부의 개입 내지 방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학부모들은 알고나 있을까.
여순특별법 속도내는 與, 최근 위령비 잇따라 참배
작년 발의, 현재 법안심사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152명은 작년 7월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을 발의했다. 순천 출신 소병철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여순 사건 관련 지역구 출신 주철현, 김회재, 서동용, 김승남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18일 여수를 찾아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법안은 행정안전위원회를 거쳐 지난 3일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다. 여순 사건 진상 조사를 통한 희생자·유족의 명예 회복과 이들에 대한 의료비, 생활 지원금 지급 등이 골자다. 앞서 통과된 5·18 특별법, 4·3 사건 특별법과 유사한 내용이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달과 이달 순천 ‘여순항쟁탑’과 여수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를 잇달아 참배하며 특별법 통과를 다짐했다.
특별법 주요 대상은 여순 사건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이다. 1949년 11월 전남 당국이 여순 사건 발생 지역 전체를 조사한 결과, 인명 피해는 1만1131명이었다. 반군과 지방 좌익, 빨치산에 의한 희생자도 포함되지만 진압군에 의한 희생자와 유족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여순 사건 발발 직후부터 6·25 전후 전남 구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조사한 결과, 총 1318명이었다. 이 중 군경과 우익 집단에 희생된 사람은 915명으로 전체의 69.4%였다.
홍성빈 2021.03.25 22:30:52
남로당 간첩들이 포진한 여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반란사건 진압출동을 왜 거부했을까? 정부의 과잉진압에 반대했기에???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헌법원리에 위배되었기에??? 웃기는 소리다. 이유는 딱 하나다. 남로당에서 받은 지령을 보니까 제주반란사건에 남로당원 동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으니까 동지를 보호하라는 지시때문이었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동지가 동지를 처형하면 이게 바로 자살골이잖아. 결국 남로당원이 득시글대던 여수14연대 군인들이 출동거부한 이유는 다름아닌 남로당의 지령때문이었던 거다. 아군끼리 싸우지 말라는 지령 말이다. 같은 편끼리 싸우면 코미디잖아. 근데 이걸 갖고 봉기???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성인이 아니다. 지식은 기본이고 지혜까지 겸비해야 지성인인 거다. 여기서 지혜는 논리적 사고력을 뜻한다.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논리적으로 엮어서 집대성할 줄 모르면 그건 아무 쓸모없는 지식이다. 차라리 모르니만도 못한 거다.
남궁견 2021.03.25 17:48:50
이런 망언 과 작태가 특히 문 정권에서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대한민국건국이 북괴에 대한 반란이라고 생각하고,6.25사변시 북괴 김일성에 의한 적화통일 안 된 것을 억울해 하는 진짜 반역자들이 권부에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홍성빈 2021.03.25 14:03:30
박정희 자체가 여순반란사건으로 사형선고 받았던 남로당 간첩이었다. 당시 반란군 진압을 지휘한 백선엽한테 설득당해서 사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14연대에 침투한 남로당원 명단을 제출한 게 박정희였다. 그래서 그 명단을 입수한 다음 연루자들을 처형한 거다. 이 때문에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숙군작업을 실시했었다. 사상이 불량한 군인들을 색출해서 처리한 거지. 그 비율이 약 5%였다. 근데 이제와서 여수 14연대는 반란이 아니라 무장봉기였다는 헛소리를 왜 하냐? 그러면 당시 박정희도 무장봉기했던 거냐? 박정희 자체가 엄연한 남로당 소속 간첩이었는데 말야. 목숨만 구명받은 이후로 박정희도 그 사건으로 제대했었다. 만약 지금 출판되는 교과서 내용대로 적용하면 박정희도 민주화 열사가 된다는 거다. 제주4.3사건 과잉진압을 거부한 민주화 열사 말이다. 완전 웃기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 교과서 출판사들이다.
홍성빈 2021.03.25 11:52:26
1961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3년 제 5대 대선을 치르는데 바로 다름아닌 기사에 나온 여순반란사건 연루자였기에 당선되었었다. 당시 박정희의 득표율을 보면 전국 1위가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에서 박정희는 약 70%를 득표한다. 박정희 고향인 경북에선 55%에 불과했었다. 근데 제주도에선 무려 70%를 득표한 거지. 그 이유가 바로 기사에 나온 제주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 때문이다.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 주동자라서 사형위기에 몰렸었는데 당시 그 사건 진압군 수뇌부가 바로 백선엽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백선엽은 같은 일본군 장교출신이고 말야. 그래서 말이 잘 통했기에 사상전향 조건으로 살려준 거다. 백선엽이가 살려준 거지. 이후 5.16후에 대선을 치르려고 하는데 이때 당시 문제가 거론된 거다. 민주당 대선후보 윤보선이가 그걸 공격한 거지. 근데 그 공격내용을 듣고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몰표를 준 게 바로 제주도였던 거다. 당시 제주도, 영호남에 좌익이 아주 많았었다.
홍성빈 2021.03.25 11:40:04
국민당의 장개석 군대에 고사 직전에 처한 중국 공산당은 1934~1935년에 걸쳐서 대장정을 했다. 병력과 군자금에서 열세에 있던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군대에 불가항력이었기에 약 1년간 1만 2500km를 행군하는 대장정을 했다. 도망다닌 거지. 근데 그냥 도망다닌 게 아니라 중국 농민들 속으로 파고 들면서 도망다닌 거다. 선동질하면서 도망다녔다는 거다. 공산주의가 왜 좋은지 그리고 자본주의는 왜 나쁜지 선동질하면서 중국 전역을 도망다니다가 드디어 중국 공산당을 접수한 게 모택동이었다. 게릴라전에 능한 모택동 말야. 그 결과 값진 소득을 얻었는데 그건 바로 중국 농민들의 마음을 얻었던 거다. 선동질이 기가 막히게 잘 먹혔던 거다. 그래서 패망 일보 직전의 중국 공산당은 기사회생하게 된다. 그리고 1946~1950년에 걸친 제 2차 국공내전에서 드디어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을 이긴 거다. 해방후 6.25전까지 한국내에서 벌어진 제주, 여순사건 등도 바로 그와 똑같았던 거다.
홍성빈 021.03.25 11:15:29
제주4.3반란사건, 여순반란사건으로 사건명을 정정해야 합당하다. 정정된 사건명의 키워드는 반란이라는 두글자에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건국된 국가다.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건국된 한국에서 공산주의 타령하면 그 자체가 반란이다. 결국 반란이니까 반란이라고 하는데 반란이 아니라면서 제주4.3사건, 여순무장봉기 이렇게 사건명 정하면 이런 행위 자체도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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