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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불태워진 4남매 아빠… 존엄 포기한 미얀마軍 학살

Jimie 2021. 3. 30. 14:21

LIVE ISSUE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산 채로 불태워진 4남매 아빠… 존엄 포기한 미얀마軍 학살

입력 2021.03.29 11:59 수정 2021.03.29 15:34

 

쿠데타 이후 최악 학살… 27일 114명 사망
무고한 어린이, 장례 행렬에도 무차별 총격

 

28일 미얀마 북서부 모니와주에서 시민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군부 타도 구호를 외치고 있다. SNS 캡처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 사는 아이 코(40)씨는 네 자녀를 둔 아빠였다. 반(反)군부 시위가 있던 28일 마을까지 진입한 군경은 폐타이어로 쌓아 놓은 바리케이드에 불을 질렀다. 코씨는 그 불을 끄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영영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군경이 쏜 총에 맞은 그는 산 채로 불타는 폐타이어 위로 던져졌다. 한 주민은 “불길 속에서 그가 ‘살려달라’ 외치고 있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현지 매체 미얀마나우에 증언했다.

 

이웃들은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고도 희생자를 구하러 선뜻 나서지 못했다. 진압병력이 계속 총을 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씨는 코코넛 스낵과 음료수 등을 팔며 지역사회 보호에도 앞장 선 성실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코씨의 친척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졸지에 아빠를 잃은 어린 네 자녀는 절망과 슬픔 속에 내던져졌다.

 

 

27일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에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고 크게 다친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잇따라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권력에 눈 먼 미얀마 군부의 만행은 나날이 잔혹해지고 있다. 무차별 총격에 아무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희생됐다. 11세 소녀 미얏뚜는 남동부 도시 몰메인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마지막 가는 길에 놓인 장난감과 꽃, 직접 그린 고양이 캐릭터 ‘헬로 키티’ 그림이 비통함을 더했다. 중부 도시 메이크틸라에 사는 14세 소녀 판 아이푸도 세상과 작별했다. 어머니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줄 알았는데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면서 딸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최대 도시 양곤에선 13세 소년 사이 와이얀이 집 앞에서 놀다가 애꿎은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아들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절규했다.

 

군경은 이날 열린 20세 대학생 테 마웅마웅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과 추모객을 향해서도 총을 마구 난사했다. 황급히 도망치는 추모객을 체포하기도 했다. 마웅마웅은 민주화운동단체인 ‘버마 전국학생연합’에서 활동했던 열혈 청년이었다. 목숨 걸고 시위대 방어선을 지키던 19세 청년 산 완피도 총탄에 스러졌다. 완피의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들을 먼저 위로하고는 “내 아들은 순교자”라며 애써 슬픔을 억눌렀다. 중부 사가잉주(州)에선 총상을 입은 시위대를 치료하던 20세 간호사마저 총격 진압의 희생양이 됐다.

28일 미얀마 남단 꼬따웅에서 주민들이 전날 시위 도중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의 장례 행렬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꼬따웅=AFP 연합뉴스

 

현지 매체들은 ‘군의 날’이었던 27일 하루에만 무차별 학살에 숨진 시민이 최소 114명이라고 전했다. 최악의 유혈사태다. 지난달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은 460여명을 헤아린다. 군경은 동부지역 소수민족 반군 부대도 공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반군 사이 교전은 최근 일주일 사이에 10여차례가 넘고, 교전지역도 북부 샨주에서 중국ㆍ태국 접경지역으로 확산하며 미얀마 사태는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물론 미국과 한국 일본 등 12개국 합참의장들까지 미얀마 군부에 대한 규탄성명을 내놨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인권특별보좌관은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며 “안보리회의를 개최하거나 긴급 정상회담이라도 열어야 한다”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LIVE ISSUE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바이든 "미얀마 집단학살 충격적"… EU도 강력 비판

입력 2021.03.29 11:30

 

 "국제사회 대응 부재, 시신 수로 측정" 비판론 커져

주말을 고향에서 보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면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대를 향해 저지른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에 대해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28일(현지시간) 평가했다. 인권을 중시하는 서방국가 지도자들도 앞다퉈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델라웨어주(州)에 위치한 자택에서 '미얀마 군의 날' 학살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끔찍하고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받은 보고에 따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이유로 살해됐다"며 "우리는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까지 쿠데타를 주도한 미얀마 군부 지도자와 그의 가족들에 대해 행정명령과 자산동결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유럽연합(EU)도 미얀마 군부의 만행을 규탄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대표는 "우리는 제재를 포함한 EU의 메커니즘을 계속 사용하겠다"며 "이번 폭력 사태를 촉발하고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의 시계를 되돌린 책임자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얀마 국민에 대한 군의 잔인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도망치는 시위대에 총을 쏘고, 어린아이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는 군부와 경찰의 수치스럽고 비겁하며 잔인한 행위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미얀마 군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섬기고 보호해야 할 시민들을 살해하는 것을 즉각 멈춰라"고 주장했다.

 

미얀마 군부의 만행에 국제기구 무용론도 계속 거론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반대로 유엔 등에서 군부에 대한 즉각적인 개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미얀마인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취지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미얀마군이 학살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한다"며 "국제사회의 행동부재에 따른 비용은 미얀마인 시신들의 수로 측정된다"고 지적했다. 헨리에타 포어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총재는 "미얀마 어린이들이 이번 위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재앙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라도 빨리 군부에 대한 공통적인 제재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국제사회가 함께 군부의 석유와 가스 개발 자금 및 무기 구매부터 동결시켜야 한다"며 "지금의 비난과 우려의 말은 솔직히 미얀마인들에겐 공허하게 들린다"고 비판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