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고려성(高麗星)·나화랑(羅花郎) 형제 노래비(~碑)

Jimie 2021. 3. 12. 06:03

高麗星 [본명 조경환(曺景煥)]· 羅花郎 [본명 조광환(曺曠煥)]. 형제 노래비(~碑)

 

 

가요사적 업적 현양, 가요 정신 계승

 

'나그네 설움'·‘무너진 사랑탑’, ‘늴리리 맘보’, '열아홉 순정' 등으로 유명한 고려성·나화랑의 형제 노래비 제막식이 2015년 23일 오후 2시 직지문화공원 내 인공폭포 앞에서 개최됐다.


김천이 낳은 가요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과 그의 동생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의 가요사적 업적이 베일에 가려 있음을 아쉬워해 오던 나화랑 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라가모’)이 김천시 당국의 보조금과 회원들의 성금, 창녕 조씨 지사공파 문중의 후원금 등을 모아 두 인물의 대표곡과 가요사적 업적 소개문을 새긴 노래비를 세운 것.


이 노래비 건립에는 박보생 시장이 직접 위치를 지정, 문화예술 시장으로서의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김천시 새마을문화관광과에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배려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봉산면 인의리 출신의 작사가 고려성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1940년 2월 서울 종로에서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가요 ‘나그네 설움’(백년설 노래)을 직접 작사, 탄생시키면서 가수 백년설을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부상시켰다.


고려성은 ‘제물포 아가씨’, ‘자명고 사랑’(박재홍 노래) ‘어머님 사랑’(백년설 노래) ‘마상 일기’(진방남 노래) ‘고향에 찾아와도’(최갑석 노래) 등 수많은 가요를 창작해내며 우리 대중가요를 진흥시킨 가요 작가이다. 백년설은 물론 진방남, 태성호, 백난아 등은 가요 프로듀서 고려성 덕분에 명성을 얻은 가수들이었다.


또한 나화랑은 형의 후광을 업고 가요계에 등장해 가수, 작곡가, 지휘자, 음반제작자로서 한 시대 한국 가요계를 장악했던 인물이다. 가요 ‘늴리리 맘보’(김정애 노래), ‘무너진 사랑탑’, ‘울리는 경부선’(남인수 노래), ‘비의 탱고’, ‘청포도 사랑’(도 미 노래), ‘이정표’, ‘성황당 고갯길’, ‘핑크리본의 카드’(남일해 노래), ‘열아홉 순정’, ‘님이라 부르리까’, ‘정동 대감’(이미자 노래), ‘향기 품은 군사 우편’(유춘산 노래), ‘울산 큰 애기’(김상희 노래), ‘뽕 따러 가세’, ‘가야금 타령’(황금심 노래) 등이 모두 그의 작곡 작품이다.

 

 

 

 

민경탁 나화랑 기념사업회 회장은 “각 지자체는 특색을 살린 문화·예술 콘텐츠를 개발해 이를 문화사업화, 브랜드화 함으로써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며 경쟁력 배양을 위한 문화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화랑 기념사업회에서는 한국 대중가요 토착기의 가요 작사가 고려성, 작곡가 나화랑 형제분의 가요사적 업적을 현양하고 그 가요 정신을 길이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민 회장은 시민들에게 “선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접해보고 이를 후손들에게 전하며 예술품도 감상하고 노래도 불러보면서 삶의 질을 고양시켜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라가모’ 단체의 한 회원(민경탁 수석부회장)은 “이 노래비는 김천에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한 뿌리가 있었음을 홍보하며 이를 영원한 자랑으로 삼고 기념해 가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다”라고 전했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도 이 노래비에 2차적으로 상징조형물과 노래 듣기 센스 장치, 동상 등의 부대시설이 구비된다면 김천 관광의 한 명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나화랑 기념사업회에서는 고려성·나화랑 선생의 가요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 건립, 히트곡 음반 제작, 평전 발간, 가요제 개최, 생가 문화재 지정 활동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해 왔다.

 

 

 

 

작사가이자 가요프로듀서 고려성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경환은 1938년 11월, 일본 오사카[大阪市]에 본사를 둔 태평레코드사가 경영 위기를 맞자 당시로서는 거액인 4000원을 투자하고 입사하여, 가요 제작 업무를 총괄하는 문예 부장직을 맡았다. 이때부터 조경환 은 태평레코드사 소속의 작사가인 이서구 ·박영호 ·조명암 ·천아토 ·유도순 , 작곡가 이재호 ·이용준 ·전기현 ·김교성 , 가수 백년설 ·진방남 ·백난아 등과 함께 본격적인 가요 작사를 하였다.

 

태평레코드사 문예 부장으로 활동하던 조경환은 1939년 7월 29일~30일 김천에 ‘태평레코드 예술상 전국콩쿠르대회’를 유치하였다. 일본 오사카로부터 함경도 청진에 이르기까지 가수의 꿈을 안고 응모한 몇 백 명의 가수 지망생들이 모인 음악 대회가 이틀간 김천 극장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프로듀서 조경환의 배려와 노력 덕분이었음은 물론이다. 이 대회에서 1위에는 마산 출신의 박창오[가수 진방남], 2위에는 경기도 이천 출신의 태성호[본명 이선호], 3위에는 제주도 출신의 백난아[본명 오금숙]가 입상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작사가 조경환의 첫 작품은 1939년 12월 태평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제작한 절연 편지 님 찾는 발길 [이재호 작곡, 나성려 노래]이다. 이어서 1940년에는 「별루사창」[김교성 곡, 선우일선 노래]·「나그네 설움」[이재호 곡, 백년설 노래]·「남양의 눈물」[무츠 아키라 곡, 나성려 노래]·「내 고향은 강남」[이재호 곡, 나성려 노래]·「어머님 사랑」[이재호 곡, 백년설 노래]·「비 오는 해관」[무적인 곡, 백년설 노래]·「춘소화월」[전기현 곡, 백년설 노래]·「마상 일기」[홍갑득 곡, 진방남 노래]를 작사하였다. 또한 1941년에「선창의 부루스」[전기형 곡, 신카나리아 노래] , 1942년에는 「어머님 사진」[조광환 곡, 나화랑 노래]·「청춘 번지」[조광환 곡, 나화랑 노래]·「금박댕기」[김교성 곡, 모란봉 노래], 1943년 「삼각산 손님」[조광환 곡, 구성진 노래], 1945년 「4대 문을 열어라」[김용환 곡], 1947년 「자명고 사랑」[김교성 작곡, 박재홍 노래], 1949년 「제물포 아가씨」[나화랑 곡, 박재홍 노래], 1955년 「비에 젖은 주막집」[이재호 곡, 박재홍 노래]·「아네모네 탄식」[이재호 곡, 송민도 노래], 1958년 「고향에 찾아와도」[이재호 곡, 최갑석 노래] 등과 해군 군가 몇 편을 작사하였다.

 

1940년 2월부터 고려성 이란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그의 작품 중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국민 애창가요 「나그네 설움」의 탄생 배경에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깃들어 있다.


1938년 12월 어느 추운 날, 조경환과 백년설 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한국인의 사상범 관계 사건을 전담한 곳]에 불려 가 밤샘 조사를 받았다. 조경환은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부터 반일(反日) 행동을 자주하여 곧잘 경찰서 출입을 했을 정도로 일본 경찰의 불순분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당시 그는 태평양악극 가무단의 작사자 겸 극작가로서 사실상 악극단을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