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금강산과 ...
응봉 정상석과 화진포 호수.
화진포(花津浦) 호수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원당리, 현내면 죽정리·초도리·산학리 일대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의 석호(潟湖)로 둘레 16km, 수심 15m, 면적 2.36㎢이다.
건봉사
건봉사 법당 전경
복원된 금강산 건봉사 전경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
불이문 不二門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은 유일한 건물. 독특하게 기둥이 4개다.
불이문(不二門)의 중앙에 걸려있는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자
큰 글씨를 특히 잘 썼던 근대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이다.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
6·25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533년(법흥왕 20) 부속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庵)을 창건하였다.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정신(貞信)·양순(良順)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6·25전쟁 때 이 절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당시까지 현존하였던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독성각·산신각·단하각·진영각·범종각·봉청루·보제루·대지전·동지전·서지전·어실각·어향각·동고·낙서암·극락전·만일원·보안원·선원·원적암·사무소·불이문·여관·장의고·성황당·수침실(水砧室) 등 총 642칸에 이르렀다.
부속 암자로는 보림암·백화암·봉암암·극락암·백련암·반야암·청련암·대성암·적명암·보리암·보문암·대원암·일출암·안양암·동대암·망해암 등이 있었다.
한 때 이 절은 3000여칸 규모의 대가람이었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가 건봉사 말사였다.
2016년 당시의 건봉사터 전경
1994년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 종각, 사지등 복원 시작.
1994년 5월 25일 적멸보궁 준공.
2018년 07월 16일 오전, 건봉사 극락보전 기공식 봉행
2019년 04월 28일, 금강산 건봉사, 극락보전 복원 상량식 봉행
2020년 8월 완공 예정
금강산 건봉사 & 능파교
한국 전쟁 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이 다리는 1708년 (숙종 24) 처음 건립되었고, 1745년과 1880년에 중수되었다. 흔히 능파교(凌波橋)로 부르는데, 본래 이름은 산영교(山映橋)가 맞다. ‘능파(凌波)’란 흔히 가볍고도 우아한 미인의 걸음걸이를 형용하는 말로도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고해(苦海)의 파도를 모두 헤치고 이제 해탈의 부처님 세계로 건너간다는 의미에서 능파교라 한 것으로 보인다.
건봉사 적멸보궁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 .
부처님의 진신 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며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에는 불상이 따로 없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개의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대웅전,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적멸보궁 등이다.
이 중에서 태백산 정암사(淨巖絲)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다.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건봉사 치아사리탑
적멸보궁 맞은편 산등성이/ 건봉사 왕소나무
*안정 [眼精] ; 예전에, 궁중에서 ‘눈’을 이르던 말 * 촉루 ; [髑髏] 살이 다 썩어 없어지고 남은 송장의 뼈
명암 조영출
건봉사 승려 출신으로 시인, 작사가, 극작가로 활동한 조영출 노래비, 월북작가 조영출을 껴안은 건봉사의 화해정신.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비와 함께 건봉사의 초입에 자리잡은 ‘조영출 시와 노래비’에는 ‘칡넝쿨’과 ‘고향초’가 비의 앞 뒤에 새겨져 있다.
만해당대선사시비
조영출 시와 노래비
조영출 趙靈出(1913-1993)
일명 조명암(趙鳴岩)· 김다인(金茶人), 김운탄(金雲灘), 김호(金湖), 남려성(南麗星), 부평초(浮萍草), 산호암(珊瑚岩), 양훈(楊薰), 이가실(李嘉實), 함경진(咸璟進)등, 필명 중 김다인은 극작가 겸 작사가인 박영호(朴英鎬)와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작사가, 극작가, 연출가, 월북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913년 11년 10월 충남 아산(강원도 철원 태생이라는 설도 있음)에서 출생하여 1916년 서울로 이주, 15세 무렵 건봉사 부설 봉명(鳳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941년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다.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동방의 태양을 쏘라」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이때 시와 함께 유행가 부문에서도 「서울노래」가 가작으로 뽑혔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산하의 연극동맹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 항일 빨치산의 활동을 주제로 한 희곡 〈독립군〉을 썼으며, 이것은 1946년 동양극장에서 상연되었다.
1948년 8월경 월북한 뒤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여했으며, 1954년 동독에서 열린 문학기념행사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1956년 10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57년 영화문학(시나리오)창작사의 초대 주필, 민족예술극장 총장,
1960년 10월 교육문화성 부상, 1962년 12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1966년 평양가무단 단장,
1977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단장, 1982년 8월 조선중국친선협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문예계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 공로로 1982년 4월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와 국기훈장 1급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30년대초부터 대중가요의 작사가로 활동하며 , 서울노래, 무정천리, 알뜰한 당신, 혈서지원, 지원병의 어머니, 현해탄, 노예선, 독립군, 논개, 위대한 사랑, 울어라 은방울, 〈목포는 항구다〉·〈선창〉·〈고향초〉·〈알뜰한 당신〉·〈꿈꾸는 백마강〉 등 인기가요 외에도 〈인도의 달밤〉(〈신라의 달밤〉의 모체)·〈울어라 문풍지〉·〈울며 헤어진 부산항〉·〈낙화유수〉·〈시를 쓰고 싶었노라〉 등의 노래말을 썼다.
그 동안 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장벽 때문에 저작권이 엉뚱하게 조작되기도 했다.
작품집으로 〈조영출 시선집〉(1957)·〈조영출 희곡집〉(1961)·〈온달전〉(1984) 등이 있다.
1993년 5월 8일 평양에서 타계함.
사명당 의승병(義僧兵) 기념관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도량이며
1605년 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되찾아와 이 절에 봉안하였다.
금강산 건봉사
범종각 앞 돌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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