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박근혜, 희미한 미소 띤 채 "내일 감옥 가는 건가요?"

Jimie 2024. 5. 15. 19:09

박근혜, 희미한 미소 띤 채 "내일 감옥 가는 건가요?" [박근혜 회고록41]

입력 2024. 1. 3. 05:00

 

 

출판사로부터 “변호사님이 곁에서 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글을 기고해 주시면 좋겠다”는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그냥 지나가는 말인가 했다. 하지만 계속된 출판사의 제의에 대통령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자 어디부터, 어떤 말부터 해야 할 것인지가 정리되지 않고 몇 날을 입가에서 맴돌기만 했다.

 

돌아보면 지난 7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아팠던 시간이라서 떠올리는 것 자체가 내게는 고통이었다.

 

“대통령님께서 변호를 맡아 주시라고 합니다.”

JTBC에서 태블릿PC 관련 보도를 한 2016년 10월 24일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저녁식사 중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JTBC 보도를 확인해 보라고 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내용의 보도 중에 낯익은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고, 내가 알고 있는 아이디였기에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검찰 조사를 공식 통보한 2017년 3월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유영하 변호사. 중앙포토

 

며칠 뒤에야 당사자와 통화가 됐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쓰나미가 닥치듯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현직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성난 여론이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대통령 탄핵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최악의 사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2016년 11월 13일 오후 민정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통령님께서 변호를 맡아 주시라고 합니다.”

 

집사람과 함께 군에 간 아들을 면회 중이었다. 당시 언론을 통해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통령의 변호를 맡아야겠다는 말을 들은 집사람의 얼굴도 굳어졌고, 나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몸담고 있던 로펌의 대표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날 짐을 싸서 나와 그 부근에 있는 오피스텔로 옮겼다. 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를 앞두고 변호인으로 선임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면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 때문에 로펌의 업무가 마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고, 소속 변호사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붕대 감은 손으로 내 유세 도와주러 온 박 대통령 

대통령을 만나러 관저로 들어가면서 처음 대통령을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2004년 4월 14일 오후 2시30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대통령은 손에 붕대를 감고 군포시에서 총선에 출마한 나의 유세를 지원하기 위해 왔었다. 절제된 언어 구사와 따뜻한 웃음, 그리고 부드러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강인함, 대통령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모든 것이 나를 대통령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2008년 3월 21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유영하 후보의 사무실 개소식장에 들어서고 있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중앙포토

 

관저에서 만난 대통령은 “어려울 때마다 오시네요”라고 하시면서 자리를 권했다. 민정수석이 자리를 뜬 후 대통령이 말을 꺼냈다.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어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정말 몰랐고, 아무도 내게 최서원 원장(개명 전 최순실)이 하고 다녔던 일에 대해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묵묵히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머릿속은 점점 하얘져 갔다.

 

 

박근혜, 희미한 미소 띤 채 "내일 감옥 가는 건가요?" [박근혜 회고록]

손국희
입력 2024. 1. 3. 05:00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22일 오전 청사를 떠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왼쪽은 유영하 변호사. 중앙포토


“내일 감옥으로 가는 건가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2017년 3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사저를 방문한 유영하 변호사에게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이렇게 말했다. 유 변호사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법원이 있는 그대로 판단한다면 기각하겠지만, 여론에 영향을 받을 것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유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 있었고, 대통령도 다가올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서 연재 중인 ‘박근혜 회고록’이 오는 4일 마지막 연재를 앞둔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수감 생활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유영하 변호사가 3일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유 변호사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거세게 불거지던 2016년 11월 15일 변호사로 선임된 이래 줄곧 박 전 대통령의 곁에서 변호를 담당했다.

 

유 변호사는 “2017년 3월 31일 새벽 3시를 넘겨 영장이 발부된 뒤 미동조차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던 대통령의 눈빛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며 “대통령은 내게 ‘예상했던 일이잖아요, 준비할게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2019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받고 장기입원에 대한 부담으로 약 70일 뒤 구치소로 돌아갔을 때 느낌 감정도 술회했다. 유 변호사는 “누군가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조롱하겠지만, 그날 나는 대통령과 구치소 밖으로 탈옥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며 “그날 느낀 허탈감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겪은 어려움도 전했다. 유 변호사는 “그해 가을 무렵부터 대통령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며 “요새는 책 보기도 싫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지나가는 말이 내겐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이 소음처럼 들린다고 할 정도였지만, 주치의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고 회고했다.

 

 

※박근혜 회고록의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회고록 주소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9160 입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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