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미 2023. 12. 12. 09:18
"그러고 다닐줄 몰랐다"…박근혜가 털어놓은 '최순실 엉뚱한 짓' [박근혜 회고록]
“대통령님, 지금 뉴스 보고 계십니까?”
2016년 10월 24일 저녁 식사 후 업무 지시차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 수석의 다급한 목소리를 접했다. 당시 JTBC에서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며 관련 컴퓨터 파일을 보도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정국은 이후 급격히 요동쳤고, 박 전 대통령은 “상황은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의 ‘박근혜 회고록’을 통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대해서 입을 연다. 12일 최태민 일가와 최서원씨와의 인연 및 비선 실세 논란을 시작으로 탄핵 과정과 수감 생활, 최근 근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총 10회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2016년 10월 25일 첫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는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이며, 연설문·홍보물 표현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24일 오전부터 24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이 24시간을 기점으로 내 운명의 항로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술회했다.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제안했다. 정치권은 크게 술렁였고, 이때만 해도 개헌이 모든 이슈를 잠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최서원씨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흐름은 뒤바뀌었다. 이튿날 대국민사과에도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이날부터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2016년 12월 9일)되기까지는 불과 46일이 걸렸다.
박 전 대통령은 최서원씨에 대해 “‘비선 실세’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의상·생필품 구매와 가끔 연설문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서원 원장이 그런 엉뚱한 짓을 벌이고 다닐 줄 몰랐다. 행적을 정확히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 큰 실책이었다”고 후회했다. 13~14일에는 긴박했던 탄핵 과정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후 청와대에서 물러나기까지의 과정을 전한다.
※박근혜 회고록의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회고록 주소는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87 입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 더중앙플러스 ‘박근혜 회고록’ 주요 기사
「
대구 달성군 유가읍 자택의 박근혜 전 대통령.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위안부 합의 들은 적 없어” 윤미향 오리발, 말문 막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717
안 그래도 ‘최순실’ 터졌는데…朴, 왜 논란의 지소미아 집착했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297
朴 “내가 혼외자 터뜨려 채동욱 찍어냈다? 황당하단 말도 아깝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967
세월호 그날 청와대 왜 갔나…朴 밝힌 ‘최순실 미스터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874
최순실과의 이혼도 몰랐다…朴이 밝힌 ‘정윤회와 인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341
문건 배후엔 김무성ㆍ유승민? 朴 “촉새 女의원의 음해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665
그날 밤, 연락 끊은 유승민…그와의 관계 그때 파탄 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770
“내가 알던 진영 아니었다” 朴 놀라게한 측근의 돌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448
▶특별사면 후 첫 인터뷰: 박근혜 前대통령 침묵 깼다 “탄핵 제 불찰, 국민께 사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5342
」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중앙일보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박근혜 회고록 31]
에디터김정하
2023. 12.12
2016년 10월 24일 오전부터 10월 25일 오전까지의 24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24시간을 기점으로 내 운명의 항로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 전날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10월 24일 오전 나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제안했다. 당시에 내가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냈다는 식의 얘기도 나돌았는데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임기 초에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했던 이유는 자칫 정치권이 개헌 논의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개헌 자체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 연설을 통해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폐해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권의 정책을 폐기하는 탓에 정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여야의 극심한 갈등과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 과반이 찬성해도 법안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국정이 표류하는 현실을 보면서 현행 대통령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기 후반부라도 야당의 협조를 얻으며 국정 과제를 무사히 완수하고 싶었다. 당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던 창조경제 정책,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향후 움직임,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대내외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들이 많았다. 당시 나의 개헌 제안은 오랜 기간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었다.
“대통령님, 지금 뉴스 보고 계십니까?”
그런데 정국은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10월 24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경제 관련 업무를 살피다가 물어볼 것이 있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관이나 수석들로부터 대면 보고도 받지만 그때그때 전화로 현안을 논의하는 것도 나의 업무 방식이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안 수석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질문을 듣던 그는 “대통령님, 지금 혹시 뉴스 보고 계십니까? JTBC 뉴스에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관련 의혹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좀 확인해보셔야 겠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안 수석에게 나머지 업무 관련 지시를 마무리한 뒤 보도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그 무렵 최서원 원장(과거 유치원장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평소 최 원장으로 호칭)의 ‘비선 실세 의혹’ 보도가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에도 언론에서 정윤회씨와 관련해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를 냈다가 오보로 확인된 전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JTBC의 보도가 나올 즈음에도 나는 언론들이 뭔가 잘못된 정보들을 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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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 1분 전
대한민국 수립이후 좌익들이 가장 큰 성과와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이 최순실을 엮어 박근혜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것이 좌익들임을 문재인과 이재명이 현재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지금은 숨죽여 지내는 것 같은 JTBC 손석희란 사람도 한몫 크게 거들었다. 이렇듯 대한민국내에서 좌익이 잡지 못 한 정권은 매일 매시간 떨어지는 낙엽으로도 흔들어 대는 것이 그들이다. 그러다 얻어 걸리면 국민과 국가에 충성한 박근혜대통령 상황이 된다. 윤석열 정부가 방통위원장의 책임과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고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음해, 공작, 술수, 거짓 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는 자들이 확인되면 인생 종친다는 결과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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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 18분 전
인복이 너무도 없었네요.임기를 다 마칠수 있으셨다면 좋았을텐데너무 아쉽습니다.그래도 이렇게 존경하는 대통령님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네요.
좋아요21화나요0 -
poin**** 2시간 전
대통령 회고록이 회를 거듭할수록 믿었던 내가 그토록 존경해 왔던 대통령님이 맞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오로지 나라만을 위해 정치를 하셨다는 걸 국민들이 빨리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그래야 악한마음은 멀리가고 착한마음은 가까이 와서 나만이 아니고 우리모두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텐데니까요하루 빨리 진실이 정의가 되고 거짓이 불의가 되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그런 사회를 위해 대통령님 화이팅
좋아요135화나요16
4개 댓글 전체 보기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
2016년 10월 24일 오전부터 10월 25일 오전까지의 24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24시간을 기점으로 내 운명의 항로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 전날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10월 24일 오전 나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제안했다. 당시에 내가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냈다는 식의 얘기도 나돌았는데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임기 초에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했던 이유는 자칫 정치권이 개헌 논의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개헌 자체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폐해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권의 정책을 폐기하는 탓에 정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여야의 극심한 갈등과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 과반이 찬성해도 법안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국정이 표류하는 현실을 보면서 현행 대통령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기 후반부라도 야당의 협조를 얻으며 국정 과제를 무사히 완수하고 싶었다. 당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던 창조경제 정책,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향후 움직임,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대내외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들이 많았다. 당시 나의 개헌 제안은 오랜 기간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었다.
◇“대통령님, 지금_뉴스_보고_계십니까?”
그런데 정국은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10월 24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경제 관련 업무를 살피다가 물어볼 것이 있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관이나 수석들로부터 대면 보고도 받지만 그때그때 전화로 현안을 논의하는 것도 나의 업무 방식이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안 수석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질문을 듣던 그는 “대통령님, 지금 혹시 뉴스 보고 계십니까? JTBC 뉴스에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관련 의혹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좀 확인해보셔야 겠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안 수석에게 나머지 업무 관련 지시를 마무리한 뒤 보도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그 무렵 최서원 원장(과거 유치원장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평소 최 원장으로 호칭)의 ‘비선 실세 의혹’ 보도가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에도 언론에서 정윤회씨와 관련해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를 냈다가 오보로 확인된 전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JTBC의 보도가 나올 즈음에도 나는 언론들이 뭔가 잘못된 정보들을 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던 차였다.
안 수석과의 통화를 마친 뒤 JTBC 보도를 확인해봤다. JTBC 취재팀이 최 원장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했는데, 최 원장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봤고 그 시점은 연설을 하기 전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최 원장에게 가끔씩 연설문을 보여주고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이해가 잘 되는지 물어본 적은 있다. 그래서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 국민들 눈에 불편하게 비쳐졌다면 그건 사과를 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그토록 큰 문제가 될 일인지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최 원장과 관련해 제기돼 왔던 의혹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일들이었다. 지금 와서 반추해보면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도와준 사람이었기에 최 원장에 대한 경계심의 문턱이 낮아졌던 것 같다. 먼저 최 원장과의 인연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1974년 어머니가 비명에 가신 뒤 나는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감사하게도 그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들이 전국 각지에서 들어왔다. 편지들을 일일이 읽으며 힘을 얻고 있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최태민 목사가 쓴 장문의 편지였다. 세간에서 추측하듯 영적인 내용은 일절 없었고, 앞으로 내 역할이 막중하다면서 나라와 사회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도 생전에 아버지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회의 그늘진 부분들을 많이 챙겼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의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던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1975년 3월 최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해보니 그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사회에서 살피고 챙겨야 할 부분들에 대해 여러가지 조언을 해줬다.
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역할을 한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을 꼽자면 야간 무료 진료 봉사가 있다. 당시에는 의료보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병이 들면 약 한 첩도 못 쓰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의사협회와 결연을 해 퇴근 후 의사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무료 진료를 해주는 야간병원 운영을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이를 듣고 “참 좋은 일 한다”며 현장에 직접 와보신 적도 있는데, 훗날 여기서 치료받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의료보험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이렇게 시작된 야간 무료병원은 1979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새마음병원을 비롯해 몇몇 병원으로 확대됐다.
◇최서원_임선이(최태민 부인) 여사_심부름으로_알게_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74년 연말에 TV방송에 출연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회자가 나에게 앞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을 하면서 이를 위해 새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목사가 이 방송을 보았는지 내게 새마음 교육을 위해 필요한 조직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 만들어진 것이 ‘새마음 갖기 운동 본부’였다. 최 목사는 본부장을 맡았고, 나는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를 맡아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돕는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당시 최 목사의 딸인 최서원 원장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나와 최 원장의 인연을 부각하기 위해 1970년대에 그녀가 내 곁에서 안내를 하는 듯한 영상을 내보낸 것을 봤다. 하지만 당시엔 나와 최 원장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다만 최 목사의 딸이라고 소개를 받았던 것 정도는 기억이 난다. 또 최 원장은 스스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정확한 사실관계는 기억나지 않는다.
최 목사 일가와 가까워진 것은 오히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청와대를 나온 뒤 부터였다. 나는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전 살았던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왔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우리 세 남매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 최 목사 일가는 나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줬다. 특히 최 목사의 부인인 임선이 여사는 나를 애틋하게 여기며 음식이나 생필품 등을 챙겨주곤 했다. 임선이 여사는 내가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연세도 있고, 내가 사적인 일도 믿고 논의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최순득·최서원 자매와 알게 됐다. 당시 최 원장은 서울 압구정동에서 초이유치원 원장을 하고 있었는데 수완이 좋아 유치원이 잘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를 ‘최 원장’이라고 불렀고, 최 원장이 정윤회씨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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