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스포츠百年史[대한민국 스포츠 100년] (75) 광복과 함께 국제대회에서 빛난 코리아 (하) 1950년 보스턴마라톤 1~3위 휩쓸어
2021. 07. 06.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첫 참가해 남수일 2위, 김성집 3위 올라
서윤복이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한 1947년 체육계에 또 하나의 경사가 있었다. 역도가 코리아를 빛낸 것이다. 이 해 9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김성집과 남수일 박동욱이 출전했다. 광복 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출전은 재미동포 정월터 덕분이었다.
1904년 재미교포 2세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정월터는 1932년 미국 공화당에 입당해 호놀룰루 한인 위원장, 1947년부터 6년 동안 미국 워싱턴 주재 한인이민협회 총무를 역임했다. 1948년 제5회 생모리츠동계올림픽 때 총무 겸 통역으로 참가했으며 KOC 위원 및 부위원장, 아시아경기연맹 명예총무를 역임하면서 IOC 총회에 22차례나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등 훗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의 지위를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처음으로 참가한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60kg급 남수일은 은메달, 75kg급 김성집은 동메달, 50kg급의 박동욱은 4위에 올랐다.
▲ 젊은 시절의 김성집(역도) 모습
남수일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전일본 역도대회 추상 세계기록을 수립했고 이듬해 국제역도연맹 공인을 받아 세계최고기록을 보유한 첫 한국인이 된 인물이다. 김성집도 1937년 남수일과 함께 추상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두 선수는 1940년 메이지신궁대회에서도 나란히 추상 세계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나갔을 때 남수일은 35세, 김성집은 28세로 사실상 선수로는 전성기를 넘긴 나이였다. 두 선수는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김성집은 두 대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남수일은 런던대회 4위, 헬싱키대회에서는 실격으로 물러났다.
두 선수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못한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기량과 체력이 절정기에 올라있었을 이 때 올림픽에 출전했더라면 세계를 제패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모두 불세출의 선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하여간 세계 2위와 3위에 오른 선수단은 10월 20일 개선했고 환영회는 11월 8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환영식은 세 선수의 모범 역도경기와 남자 중학생들의 연합체조, 여자중학생들의 연합율동, 축구와 송구경기, 서울시 관현악단과 통위부군악대, 풍문여중 합창단의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함께 펼쳐졌다.
▲ 1950년 보스턴마라톤에서 1~3위를 차지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왼쪽부터)
보스턴마라톤 1~3위를 모두 휩쓸며 마라톤 한국을 알리다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 후 3년, 우리 선수들은 다시 보스턴마라톤을 석권한다. 1950년 4월 19일 열린 제54회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함기용의 기록은 2시간32분39초, 송길윤은 2시간35분58초, 최윤칠은 2시간39분45초. 19세의 신예인 함기용은 마라톤 풀코스 도전 4번째 만에 세계를 제패했다.
춘천사범 육상선수이던 함기용은 손기정을 만나 마라톤에 입문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인 ‘민족의 제전’을 순회 공연하느라 춘천에 들른 손기정이 우연히 함기용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마라톤을 권한 것이다. 이 일이 인연이 돼 마라톤 명문인 양정고 2학년으로 전학한 함기용은 1948년 서윤복 최윤칠 홍종오와 함께 런던올림픽에 참가했지만 후보선수였기에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그랬던 함기용이 일을 낸 것이다.
이 쾌거가 알려지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3년 전 서윤복이 우승했기에 보스턴마라톤 제패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금, 은, 동메달을 모두 차지해버렸으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 선수의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서울 거리 곳곳에 축하 아치가 세워졌고 대형 현수막도 내걸렸다.
▲ 1950년 보스턴마라톤에서 1~3위를 휩쓴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의 쾌거를 '마라톤 완전제패'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경향신믄 4월 21일자 1면
경향신문은 4월21일자 사설에서 그 감격을 이렇게 토로했다.
아! 감격도 새롭다. 가슴도 벅차서 터질 듯 하고나. 내려 눌리우고 기가 꺾여서 주름을 펴기가 어렵던 우리에게 보스톤마라돈대회에서 1, 2, 3착의 영예의 월계관을 함, 송, 최의 우리 선수가 차지하였다는 소식은 우리의 막히었던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 주었다. 장하다. 통쾌하다. 우리는 분명히 이기었다. 정정당당 끝까지 마라돈의 정신 스포츠맨쉽을 지키여서 드디어 1등도, 2등도, 3등도 우리가 차지하고야 말았다. 보스톤의 맑고 푸른 하늘에는 태극기가 한 번, 두 번, 세, 번 꿋꿋이 올라가 기폭을 마음대로 펄펄 날리었다. 아! 감격도 벅차다. 우리는 드디어 이기었다. 대한의 의기는 세계에 떨치고 우리의 존재는 또다시 온 세계의 눈앞에 뚜렷이 나타냈다.
세계각지에서 모여든 14개국 150여명의 맹자(猛者)들을 보기좋게 떠러트리고 1등도, 2등도, 3등도 우리 대한의 아들 함, 송, 최, 3군이 차지하였다. 그들의 가슴에 수놓은 태극의 마크는 승리의 데뿌를 끊고 연달아 꼴인 하였다. 장하다. 기쁘다. 통쾌하다. 아! 이래저래 막히어 숨 답답하던 우리의 가슴의 문이 탁 열리고 우리의 앞길에 희망이 빛나는구나. 잘 싸웠다. 잘 이기었다. 보스톤 창공에 태극기는 올랐다.
우리는 일찍이 제12회 백림오림픽대회에서 마라돈 세계신기록으로 1등과 3등을 차지하였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일제의 통치하에 있었던 만큼 우리 선수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뛰었으며 승리의 보도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대신 째팬의 존재를 알리웠었다. 이기어가지고도 기쁨을 표하지 못하였고 우리의 자랑과 우리의 감격을 남에게 돌리고 우리는 속으로 그 얼마나 울며 눈물을 뿌리며 가슴을 쥐어뜯었던고. 또 51회 보스톤마라돈대회에서 영예의 1착을 우리가 차지하였으나 그 당시 미군정하에 있던 우리는 비록 백림 대회 때와 같은 사정과는 전혀 달랐지만 형식이나마 미의 성조(星條) 마크를 같이 달고 뛰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54회 보스톤마라돈대회에서는 당당히 건국한 우리 대한의 아들로 태극기를 달고 조국의 영예를 위하여 역주 1, 2, 3등을 모두 차지하고 마랐다. 세계운동사상에서 국제경기에서 1등 2등 3등 모두를 한 나라 선수가 차지한 예는 아마 이번 보스톤마라돈대회에서 우리 선수가 차지한 것이 처음일 것이다. 특히 3착의 최 선수가 꼴인을 하며 졸도까지 하게 되면서도 최후까지 달리었다는 것은 참으로 운동정신을 그대로 살리었다고 상찬치 않을 수 없다. 아! 장하다. 통쾌하다. 우리는 멀리 전파를 통하여 오는 이 희소식을 기다리고 두 손에 땀을 쥐고 목이 타며 밤을 새웠다. 아! 드디어 보스톤 창공에 태극기 오르다.
선수단은 5월 20일 개선했다. 선수단이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해 귀국보고를 한 뒤 서울운동장에서 대통령과 3부 요인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환영대회가 열렸다. 환영대회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대전에서도 열렸다. 또 대한교육영화사는 기록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가히 대한민국 마라톤의 황금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북한의 남침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만다. 1950년 6월 25일. 이날은 마침 서울운동장에서 제2회 학도호국단체육대회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방송됐다. 모든 경기의 중단과 함께 관중들에게 빨리 귀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새벽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한 것이었다. 이 전쟁은 광복과 함께 겨우 싹을 틔우던 우리 스포츠를 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태화 cth0826@naver.com
자료출처 : 마니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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