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KBS 한국사전 – 이승만 제1부 &제2부 / KBS

Jimie 2024. 5. 13. 04:25

KBS 한국사전 – 이승만 제1부 / KBS 2008.8.30.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SqMOfDesFXQ 

477,248 views Premiered Mar 24, 2021

 

최초 공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유물들. 이화장에서 소장지를 옮긴 뒤 한 번도 공개된 적 없었던 우남관의 유물들. 한성감옥소 시절 성경책과 감옥에서 편찬한 영한사전을 비롯한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 2만여 장과 A4용지 15만 쪽 분량의 방대한 기록들 속에서 만나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관한 진실을 한국사傳 2부작으로 담았다.

 

- 하와이 한인사회와 이승만에 관한 진실

하와이 독립운동가 장금환의 딸 로베르타 장. 그녀는 하와이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이 다큐 속에는 이승만 때문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와 노선의 차이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 담겨있다. 하와이가 기억하는 이승만의 두 모습. 과연 하와이의 이승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 사형수 청년, 미국에 가다

1898년 11월 독립협회 간부들이 경무청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승만은 만민공동회를 열어 이 사건을 규탄하다가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옥중에서도 이승만은 학교를 여는 등 자신의 큰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갇혀 있는 가운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는 이상재 신흥우 박용만 같은 동지들을 만난다. 1904년 석방되자, 이승만은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 이즈모호 사건, 그 가운데 선 이승만 독립운동가 박용만.

그는 이승만의 옥중동지였다. 하와이에 온 박용만은, 국민군단을 세워 무력으로 국권을 되찾고자 한다. 1918년. 박용만의 국민군단이 호놀룰루 항에 정박한 일본군함 이즈모호를 폭파시키려 한다는 제보가 입수된다. 관계자들은 체포되고 박용만은 법정에 서게 된다. 이후 국민군단은 해체되고 이승만은 하와이의 독립운동 세력 전체를 장악한다. 하와이 독립운동 세력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이즈모호 사건.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 워싱턴발 이승만의 음성, 식민지 조선의 신화가 되다

 

1942년.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이승만의 목소리가 단파 라디오를 통해 조선에 전해진다. “나 이승만이 지금 말하는 것은 우리 이천삼백만의 생명의 소식이오, 자유의 소식입니다. 저 포학무도한 왜적의 철망 속에서 호흡을 자유로 못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 자유의 소식을 일일이 전하시오.” 일제는 이승만의 목소리를 들은 수신자들 검거해 경성방송국 관계자를 포함한 300여명을 투옥시킨다. 그러나 이 단파방송 사건은 지식층 사이에 이승만의 이름을 신화로 남겨 놓는다.

 

한국사전 54회 – 이승만 제1부 (2008.8.30.방송) http://history.kbs.co.kr/

 

KBS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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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 – 이승만 제2부 / KBS 2008.9.6.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r9uvyVQffrs&t=62s 

466,380 views Premiered Mar 26, 2021

 

미국의 선택인가,

이승만의 선택인가? 혼란스러운 해방정국.

71세 나이로 고국에 돌아온 이승만. 그는 어떻게 최후의 승자로 남았나!

 

- 맥아더 기념관에 남아있는 이승만의 흔적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맥아더 기념관. 세계 2차 대전 전후 시기, 맥아더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방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승만의 편지와 전보,맥아더가 이승만을 한국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표기한 메모까지 소장하고 있다. 이승만은 어떻게 맥아더를 만날 수 있었나?

맥아더와 이승만이 만나 함께 그린 한국의 미래는 무엇일까?

 

- 상해임시정부에 불어 닥친 대통령 논란

1919년 임시정부 국무총리직과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에 임명된 이승만은 국무총리나 집정관 총재가 미국식으로 해석하면 'president'라고 주장하고 이 호칭을 사용한다.

이에 임정 지도자들은 반발해 경고 전보를 보낸다.

이승만은 안창호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낸다.

 

“만일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면 독립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떠들지 마시오."

 

-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그는 왜 탄핵되었나?

1919년 9월6일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그러나 1923년 대통령직에서 탄핵된다. 임시정부는 이승만이 상해를 떠난다면 대통령직에서 탄핵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 상태였다. 그러나 결국 이승만은 상해를 떠난다.

임시정부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미국으로 향하는 이승만.

그가 미국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 같은 꿈 다른 길, 임시정부와 이승만의 노선 차이

1908년 샌프란시스코. 한반도 일본통치에 동조한 미국인 스티븐슨이 장인환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한인들은 이승만에게 장인환의 법정통역을 부탁하지만 이승만은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이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비롯한 의열 투쟁 때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던 이승만.

그는 이런 행위는 ‘무법한 개인행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 혼란한 해방정국, 고국으로 향하는 이승만의 행보

미국에서 교육과 외교활동을 펼쳤던 이승만은 그의 나이 71세에 조국 해방을 맞이한다. 미군정의 대대적인 이승만 환영식이 있던 날, 미군 중장 하지는 이승만이 연설하는 내내 부동자세로 서서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미군정의 인정을 받지 못해 임정요인들이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던 때 미군의 환대를 받으며 고국에 돌아온 이승만.

그는 어떻게 미군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이후 이승만의 행보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한국사전 55회– 이승만 제2부 (2008.9.6.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