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우량카다이 부족 ‘兀良哈’

Jimie 2024. 5. 12. 05:56

류지미 2023. 6. 19. 07:35

 

ウリャンハ [兀良哈,Uriangkha]

  • 우량하(올량합), 명나라 때에 흥안령(興安嶺)  동쪽에 살던 몽골계 부족
  •  

오랑캐 兀良哈우량카이

한자로는 올량합(兀良哈)이라고 쓴다. 원래 우수리 강[烏蘇里江]의 지류인 무링허 강[穆陵河] 유역에서 살아온 듯하나 명나라가 세워질 시기에 두만강 유역으로 옮겨갔다.

〈연산군일기〉에 보면, 이들은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간도에서 함경도 무산쪽으로 압록강 상류에 이르는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부족은 1명의 추장 밑에 수십 호가 작은 부락을 이루며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통일이 어려웠고 세력도 약해 고려와 명나라에 복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흉년이 들면 우리나라의 변방을 자주 침입해 토벌당하기도 했다.

기원을 살펴보면, 그들의 시조가 본래 개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을 오랑캐라고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중국유기백과>

오랑캐3위(兀良哈三衛 Wùliánghāsānwèi) 또는 타안3위(朵顏三衛).

 

兀良哈三衛又稱朵顏三衛,由朵顏衛、泰寧衛、福余衛組成,位於渤海地區的西北一帶。

元朝滅亡後,兀良哈三衛與韃靼、瓦剌構成了明初塞北蒙古的三大部落。
明朝所稱的兀良哈與分布於蒙古肯特山的兀良哈萬戶不同。

 

올량합3위(兀良哈三衛 오랑캐3위)는 중국어로는 타안3위(朵顏三衛 도얀3위)로도 칭한다. 타안위(朵顏衛), 태녕위(泰寧衛), 복여위(福余衛)로 구성되어 있으며 발해 지역(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대조영의 발해국이 아니라 지금의 발해[보하이]위의 지역을 뜻한다)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원나라가 명나라에 쫓겨 몽골지역으로 돌아간 후 올량합3위(兀良哈三衛 오랑캐3위), 달단(韃靼 타타르), 와라(瓦剌 오이라트[서몽골]) 이 3개의 세력은 명나라 초기 몽골의 3대 세력을 구성했다. 명나라 때 알려진 올량합(兀良哈 오랑캐)은 몽골의 긍특산(肯特山 Khentii Mountains)에 거주하는 올량합만호(兀良哈萬戶 오랑캐투멘)와는 서로 다른 세력이다.

량합3위(兀良哈三衛)는 명나라가 영락제 때 설치한 행정구역의 명칭이다.

 

올량합3위(兀良哈三衛)는 칭기즈칸 당시

몽골(Mongol)인과 오랑캐(兀良哈)들로 구성된 세력이지만

몽골제국이나 원나라 때 올량합3위(兀良哈三衛)라는 행정구역은 존재하지 않았고

명나라 초기 영락제 때 만들어진 명나라의 행정구역이 올량합3위(兀良哈三衛)이다.

 

이러한 명나라 영락제 때 만들어진 ~위(~衛)'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함경북도 회령에서 활동하던 알타리부족 출신의 맹가첩목아 세력과

봉주(중국에선 흑룡강성 동녕현으로 추정한다)에서

활동하던 후르카부족 출신의 아합출 세력

 

그리고 이들 오랑캐3위와 구별되는 또다른 오랑캐 부족인

함경북도 종성과 온성 사이에서 거주하던 유파아손 세력도

명나라 영락제 때 각각 명나라 행정구역인

건주좌위(建州左衛), 건주위(建州衛), 모련위(毛憐衛)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나라 황제가 명나라 주원장에게 쫓겨 몽골로 돌아간 후 북원(北元)이 되면서

몽골은 3대 세력이 북원(北元)지역과 동북3성 지역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3대 세력은 서몽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오이라트(瓦剌) 세력,

칭기즈칸의 아들인 툴루이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는 타타르(韃靼) 세력,

칭기즈칸의 동생들 후손들과 칭기즈칸의 측근 후손들로 이루어진

내몽골과 동북3성에 거주하던 세력들이다.

 

이 중에 *칭기즈칸의 동생들 후손들과 칭기즈칸 측근 후손들로 이루어진 몽골 일부와 *내몽골 그리고 *동북3성에 거주하던 세력들을 후에 명나라에선 오랑캐3위(兀良哈三衛)라고 부르게 된다.

 

즉, 이들은 원나라(大元) 때엔 각각의

울루스(분봉지 내지는 영역의 개념이다) 명칭으로 불렸지만,

원나라(大元)가 몽골로 쫓긴 후 북원(北元)이 되면서

이들 울루스가 명나라에 투항하게 되었고

 

이 투항한 울루스들을 각각의 세력에 따라

명나라에선 타안위(朵顏衛), 태녕위(泰寧衛), 복여위(福余衛)라는

세 개의 행정구역과 그에 따른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들 타안위(朵顏衛), 태녕위(泰寧衛), 복여위(福余衛)

명나라에선 하나로 묶어서 통칭했는데 이들이 타안3위(朵顏三衛)이다.

그리고 이들은 오랑캐3위(兀良哈三衛)로도 불렀다.

 

하지만 타안위(朵顏衛), 태녕위(泰寧衛), 복여위(福余衛)

이들 세개의 세력 모두가 오랑캐(兀良哈)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타안위(朵顏衛)의 주 구성원이 오랑캐(兀良哈)였다.

 

타안위(朵顏衛) 외에 태녕위(泰寧衛)와 복여위(福余衛)까지 합해

오랑캐3위(兀良哈三衛)라고 칭하게 된 이유는

이들 세 개 세력들 중에 가장 강력한 세력이

오랑캐(兀良哈)로 구성된 타안위(朵顏衛)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오랑캐(兀良哈)를 이민족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거나

여진족(女眞族)을 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고

이 오랑캐(兀良哈)는 투르크 계의 특정 부족 명칭이었다.

 

이들은 칭기즈칸 당시 칭기즈칸의 조카인 알치다이(按赤台,

칭기즈칸의 동생 카치운의 아들이다)가 칭기즈칸에게 영지를 받을 때

알치다이(按赤台)를 따라 함께 알치다이의 영지로 이주한 세력들이었다.

 

이들 오랑캐3위(兀良哈三衛)와 구분해야 하는 개념이

바로 오랑캐만호(兀良哈萬戶 오랑캐투멘)라는 세력이다.

 

오랑캐만호(兀良哈萬戶 오랑캐투멘)는 이들과는 달리

지금의 몽골공화국 부르한산(Burkhan Khaldun)에 거주하는 세력을 칭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오랑캐만호(兀良哈萬戶 오랑캐투멘)가 등장하는 것은

오랑캐3위(兀良哈三衛)가 구성될 때보다 후에 등장하게 된다.

 

아래는 칭기즈칸의 조카 알치다이가 칭기즈칸에게 받은 영지에 거주할 때

알치다이(按赤台)와 함께 이주해 온 오랑캐(兀良哈)들이 초기에 거주한

타안산(朵顏山)과 작이하(綽爾河)의 구글지도이다.

 

아래는 작이하(綽爾河)가 위치한 지역의 구글지도이다.

 

綽爾河

 

www.google.co.kr

 

아래는 타안산(朵顏山)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구글지도이다.

이 타안산(朵顏山)에 거주해서 이들을 타안위(朵顏衛)라고 칭했다고 한다.

타안산(朵顏山)을 찾을 수가 없어서 추정되는 지역의 구글지도를 올린다.

타안산(朵顏山)은 대략 부이르 호수의 동남쪽 방향이라고 한다.

 

Google Maps

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

www.google.co.kr

 

 

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백과에서 설명하는

오랑캐만호(兀良哈萬戶)가 거주하던 몽골공화국의 긍특산(肯特山 켄티산) 구글지도이다.

 

Khentii Mountains · 몽골

★★★★★ · 산맥

www.google.co.kr

 

학자에 따라서는 오랑캐만호가 거주하던 곳은

몽골공화국의 부르한산(부르칸 칼둔 Burkhan Khaldun Mountain)이라고 한다.

위의 궁특산(肯特山 켄티산)과 비슷한 지역으로 보인다.

아래는 부르한산(부르칸 칼둔 Burkhan Khaldun Mountain)의 구글지도이다.

 

Burkhan Khaldun · 몽골

★★★★★ · 산봉우리

www.google.co.kr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오랑캐(兀良哈)로 표기한

유파아손(괄아아팔아속 括兒牙八兒速)이 거주하던 함경북도 온성의 지도이다.

명나라 영락제 때는 이 지역이 명나라 행정구역인 모련위(衛)가 된다.

 

온성군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 북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 북도

www.google.co.kr

 

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서로 다른 오랑캐(兀良哈) 세력이

각각 몽골 부르한산(부르칸 칼둔)과 내몽골 작이하(綽爾河)

그리고 함경북도 온성에 거주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오랑캐(兀良哈)는 지금의 몽골공화국 서쪽과 북쪽에

거주하던 세력이고 이들은 철륵(鐵勒)의 후예들이다

(철륵[鐵勒]을 구성하는 부족들 중에 도파[都播]에 해당된다)

 

오랑캐

(1) (기본의미) 옛날 두만강 일대에 살던 민족들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여 이르던 말.

유의어  되2(2),만적2(蠻狄),외이2(外夷),이적5(夷狄),호적4(胡狄),번민2(蕃民),적인2(狄人)(2),융갈(戎羯),만이3(蠻夷)

(2) 다른 민족 특히 서양인을 멸시하여 이르는 말.
  • 19세기 말에는 서양 오랑캐가 물밀듯이 쳐들어왔다.
(3) 중국에서, 주변에 살던 민족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여 이르는 말.
  • 진시황은 오랑캐를 막아 진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유의어융로1(戎虜),번이(蕃夷),만이족(蠻夷族)

 

어원 : 오캐 ≤용가1:7≥

 

 

 

 

 

우리 민족은 조선조 내내 오랑캐란 말을 많이 썼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북한 인민군을 그렇게 부르고, 툭하면 남의 나라를 이런 식으로 부른다.

오랑캐는 원래 만주와 몽골에 걸쳐 유목 생활을 하던 우량카다이란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로는 ‘兀良哈’이라고 적었다. 우량카다이족은 칭기즈 칸 시절에도 건재한 부족이다. 여러 부족 중에 몽골족이 최종 승자가 되어 지금은 몽골이라고 하지만, 원래 타타르부, 우량카다이부 등이 더 유명했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타타르를 몽골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그런데 우량카다이 부족을 가리킬 때 묘하게도 ‘캐’ 비슷한 발음이 들어가면서 이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듯하다. 왜냐하면 몽골족을 가리킨 최초의 말이 흉노(匈奴)였던 것처럼(흉노라는 한자어를 들여다보면 흉흉할 ‘흉’자에 노비를 가리키는 ‘노’자가 들어 있다) 어떻게든 유목민들을 낮춰 부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원래 오랑캐라는 개념은 중국이 개발한 것이다. 그들은 중국 외의 모든 민족을 오랑캐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동이(東夷, 고구려 · 거란족 · 여진족), 서융(西戎, 티베트족 · 위구르족), 북적(北狄, 몽골족 · 선비족 · 흉노족), 남만(南蠻, 미얀마족 · 대리족 · 베트남족 등 장강 이남의 모든 종족), 이렇게 오랑캐를 네 부류로 나눴다.

중국인들이 굳이 남의 민족을 이렇게 혐오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 역사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이 중에서 고구려는 현재의 북경 일대인 유주를 차지한 적이 있고, 고구려의 후예인 거란, 여진은 요(遼)와 금(金), 청(淸)을 세워 중국을 지배했다. 일본도 현대 중국의 북부를 차지한 적이 있다. 북적 중에서는 흉노가 한나라를 3백 년간 지배했고, 몽골이 원(元)나라를 세웠다. 선비족은 북위(北魏), 수(隋), 당(唐)의 건국 세력이 되었다. 서융 중에서는 위구르가 위구르 제국을 세워 중국 북서쪽 일대를 통치했고, 서하족이 서하(西夏)를 통치했고, 티베트족이 초기 주(周)나라 집권세력을 이루었고, 이후로도 크고작은 나라를 만들어냈다. 남만 중에서도 베트남, 미얀마, 그리고 대리족의 대리국이 있었다.

이렇게 따져보면 중국사의 절반 이상이 이민족 지배사다. 중국인들은 이런 역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민족을 경계하자는 뜻에서 오랑캐 개념이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던 일부 유림들이 즐겨 썼다. 그러면서 북한도 오랑캐요, 같은 고구려 민족인 여진족도 오랑캐라고 깔아뭉갰다.

따라서 동양사를 기술하면서 꼭 ‘오랑캐’란 어휘를 써야만 뜻이 통하는 부분에 이르면 ‘북방 유목민족’이라고 쓰면 된다.

‘유목민족’이라고 줄여 써도 된다.

 

바뀐 뜻

‘여진족’만을 가리키던 고유명사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예의를 모르는 미개한 종족들을 멸시하는 보통명사로 쓰였다.

특히 조선 후기 서양인들이 몰려올 때는 특별히 그들을 가리켜 서양 오랑캐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