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People
北침투 KLO [Korea Liaison Office] … 켈로부대 노병들
“
별이 내려다보는 밤이면 하늘을 향해,
이 민족을 향해 가슴에 대고 바람이 소리내어 말한다.
목숨을 부지한 나머지 대원들은 흰 장갑을 끼고
국립묘지 중앙탑 돌벽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 밑에
국화 한 송이를 놓을 것이다.
”
尹, 北침투 KLO 첫 초청…켈로부대 노병들
1949년에 미국 극동군 사령부가 조직한 비정규 부대
“우린 1등 거지였다”…켈로부대원, 70년 만에 공로금 보상 | 뉴스A
https://www.youtube.com/watch?v=OiDwF0sMzvo
9,637 views Oct 17, 2021 #인천상륙작전 #채널A뉴스 #뉴스A
“우린 1등 거지였다”…켈로부대원, 70년 만에 공로금 보상 6.25 전세를 확 뒤집었던 인천상륙작전. 여기서 맹활약한 우리의 영웅들이 70년 넘게 푸대접을 받아왔습니다. 당시 ‘미군’ 소속이었기 때문이라는데, 이제야 정부가 보상을 결정했습니다. 목숨 걸고 나라 지킨 청년들이 이제 살아도 8,90 노인이 됐는데, 이분들 삶 자체가 전쟁같이 느껴집니다.
한수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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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Museum of the United States Army
The National Museum of the United States Army is the official museum for th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y and is just outside Washington, D.C. It opened on November 11, 2020.The objectives of the museum are to honor America's soldiers, preserve Army history, and educate the public about the Army's role in American history.
Under a September 2000 agreement with the Department of the Army, the Army Historical Foundation (AHF) was designated the fundraising entity for the National Museum of the United States Army. The Army also established the National Museum of the United States Army Project Office to oversee the design and construction of the museum.
The museum opened to the public on Veterans Day in November 2020.
.
지난해 7월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미국 버지니아 육군박물관을 방문하여 켈로부대 참전 기념비에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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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O
Korea Liaison Office
주한연락처
Korea Liaison Office(KLO)
켈로부대
창설일 1949년 6월 1일 1953년 7월 27일
해체일 (6.25 전쟁 휴전 후 대한민국 육군에 흡수)
소속
미군 극동사령부(FECOM)
주한 유엔군 유격부대(UNPIK)
대한민국 육군
켈로부대
1. 개요
휴전 후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 육군에 편입되었고 그 중 일부는 HID로 소속을 옮겨 계속 근무하거나 특전사 창설요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특수부대에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이관 전의 기록이 없다시피 했기에 그 전에 전사, 행방불명, 부상, 기타 이유로 켈로를 떠나게 된 인원들은 (동료의 증언, 보증이 없는 한) 신원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병역미필 신분이라 다시 한국군에 징집되기도 했다. 그나마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분들을 위해 부대원 명단 복원 및 신원 확인 작업 등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완전히 다 복원된 건 아니다.
2. 시초
1946년 미국 육군 제24군단 정보처 산하에 대북공작을 담당했던 첩보부대인 442CIC를 창설하고, 이후 1948년 8월 미국 극동군사령부(GHQ) 정보참모부에서 442CIC를 기반으로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백의사[2], 정의사 등 여러 반공단체를 망라하여 켈로(KLO)부대를 만드는데, 대북첩보를 위해 주로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북출신이 중심이었다. KLO는 '코리아 리어전 오피스(Korea Liaison Office)'의 약자로 흔히 '한국 연락 사무소', '한국 연락반', '주한 첩보 연락처' 등으로 번역된다. 당연히 이러한 명칭은 KLO의 첩보부대적 성격을 가리고 평범한 통신 사무소로 위장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케이엘오를 줄여서 흔히 켈로부대라 불린다. 1948년 12월 CIC는 공식 철수했으나 그 요원 상당수는 그대로 남아 켈로부대로 알려진 KLO와 미국 극동공군의 대북 첩보기관인 미국 공군 인간첩보부대(USAF HUMINT)로 역할이 옮겨진 것이다.
3. 활약상
인천 상륙작전 직전 팔미도 주변에서 활약한 KLO 부대원을 비롯한 작전팀원들
1951년 7월 26일 미 극동군사령부 예하에 제8240부대를 창설하여 첩보부대 및 유격부대를 통합 운영하게 되는데, 베이스캠프는 용산 선린상고에, 본부는 종로 태화관에 설치했다. 부대명을 특수공작대로 바꾸고 전직 육군대령 계인주가 지휘를 맡고, 공작과장은 최규봉, 군수 및 보급과장은 전훈, 총무 및 인사과장은 박태현이 맡았다. 당시의 계인주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파면된 상태라 육군대령이 아닌 그냥 민간인 신분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무이탈 혐의로 체포됐다가 미군헌병대에게 신병이 넘겨진 후 일본에 위치한 미 극동군사령부에서 미군 정보부서에 대한 조력자로 활동했는데, 한국군 입장에선 군무이탈 후 장기 실종자로 취급되어 한국군으로부터 이미 불명예제대 조치를 당한 상태였다. 그 후 KLO부대를 통해 한국전쟁에 기여한 공로가 참작되어 나중에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사면/복직되었다. 그러나 1952년 6월에 발생한 미군 정보장교단 39명 몰살사건을 계기로 몇몇 파견대는 8240부대의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1953년 9월 전격 해체되었다. 그 후 이들 중 군에 계속 남기를 원한 인원들은 휴전 후에 미군 극동군사령부 소속에서 한국군 소속으로 이관된 8240부대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1954년에 8240부대가 해체되자 일부는 육군의 여러 부대들로 갔고, 또 다른 일부는 HID에 배속되기도 했다. 한국군으로 소속체계가 변경된 후로는 이들을 관리하는 상위부대인 국방부 직할 8250부대가 만들어져서 공식적으론 8250부대가 공식명칭이 됐으나, 이전 습관대로 8240부대라고도 계속 불렸다. 마치 HID에서 AIU로 공식명칭이 바뀐 뒤로도 여전히 HID라는 원래 이름을 더 많이 쓰는 것처럼. 그리고 육군 부대들로 간 켈로부대원들 중 일부가 재소집되어 1957년에 육군본부 특전감실이 주도한 육군 특수부대 창설준비 요원이 되었고 이듬해 일본 오키나와의 미 육군 특전부대(그린베레) 제1특전단에서 교육받고 온 뒤에 이들을 창설요원으로 하여 제1공수특전단(현재의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을 창설하게 된다.
부대원 중 여성첩보원도 있었는데, 남녀 대원의 성비가 약 8대2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들은 주로 북한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적지에서 의심을 덜 받기 때문에 생존율도 남성대원들보다 높았다. 여성첩보원들은 남성대원과 함께 부부로 가장해 침투하기도 하였다. 켈로부대는 한국군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고 비밀로 붙여졌는데, 공산주의자나 북한군 측 첩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독자적으로 재판, 처형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는 소규모로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발발 후 해산 때까진 보다 많은 인원이 첩보/게릴라 대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동안 이 켈로부대 출신들은 국가의 배려를 받지 못하다가 『참전군인등지원에관한법률』에 의해 1996년에 들어서야 2,410명의 켈로출신 전사자들이 대전 국립묘지에 봉안되었고 위령비가 세워졌다. 이에 따라 생존자 230여 명의 군번없는 전사들이 군번과 참전용사증을 받게 되었다. 명단이 확인된 대원 중 전사·실종자 총수가 3,415명이고 생존대원 총 수는 35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이 켈로 출신 생존자들이 KLO·8240전우총연합회(대표 최규봉)라는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동안 총연합회는 회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장학금 지원, 팔미도등대에 기념비 건립, 팔미도 점령 기념 행사 등의 활동을 해왔다.
4. 8240부대에 대한 보충 설명
이 부대들은 KLO 직할 부대들과 함께 1951년 7월부터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의 제8240유격첩보부대로 통합되어 운용되었고 이때부터 이들 부대들도 모두 KLO부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즉 1951년 6월까지는 미군의 주한 첩보연락처에서 운용하던 몇 개의 지대들을 켈로부대라고 일컬었으나, 1951년 7월에 KLO 직할 부대들과 동키 등 유격부대들을 통합 지휘 운용하는 8240부대가 창설되자 이 부대들이 모두 8240부대 소속이 되었고 이 8240 소속 부대들이 모두 켈로부대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켈로(KLO)부대라는 명칭이 원래는 주한 첩보연락처 소속 부대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 좁은 의미의 기존 켈로부대와 유격부대들이 1951년에 8240부대로 통합된 후로는 8240 예하 부대들(기존 KLO + 미국이 운용하던 한국인 유격부대들)을 모두 켈로부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부대원들은 대부분 38선 이북 출신들이었다. 보급은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각 섬에 파견된 미군 작전 고문관의 통제를 받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이 8240부대를 한국군으로 이관했는데, 1953년 8월 12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219호로 창설된 국방부 8250부대사령부가 8240부대의 지휘, 인사, 행정, 포상 및 징계권을 이양받았다. 즉 이때부터는 한국군 국방부 직할 8250사령부 소속의 8240부대가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때부터 공식적으론 8240부대라는 명칭은 없어졌고 8250사령부 예하의 8250부대가 정식 부대명칭이었으나, 실제로는 그 후로도 8240부대라는 익숙한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휴전협정 체결로 이런 부대가 사실상 필요 없어졌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는 1954년 2월 8240부대를 공식 해체하고 소속 대원들을 육군으로 일괄 편입시켰다. 8240부대원들은 육군 편입 이전보다 한 계급 아래 계급[6]으로 육군에 편입되었고, 18세 미만 30세 이상의 대원들은 제대할 수 있었다. 8240부대 지휘관 가운데 753명이 장교로 현지임관하고, 대원 약 12,000명이 하사관이나 병으로 신분 전환됐다고 한다. 당시 부대원들 중 일부는 미군에서 지원해 준 독일군복, 특히 슈츠슈타펠의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기도 했다.
이후 육군에선 정식 특수부대를 창설하기로 하고 육군본부 특전감실에서 그때까지 육군에 남아 있던 8240부대 출신 장교 20여 명과 8240부대 출신 하사관들을 창설요원으로 차출하여 제1전투단을 창설한다. 초대 지휘관 백문오 대령이었다. 제1전투단 창설요원들은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육군 그린베레 제1특전단(그린베레) 교육대에서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을 받고 돌아왔다. 1958년 10월 1일 부대명을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칭한다. 이 부대가 이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이 된다. 결국 켈로부대원 중 일부가 남아 특전사의 핵심 창설요원이된 것이다.
5. 기타
1966년에는 액션영화로도 각색되었다. 군번없는 용사들로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서 연구가 어렵다고 한다.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는 부대.
최규봉 KLO 고트 대장
그 외에도 개인 블로그에 전설의 켈로부대 실록이라고 작성 된 글과 김광인의 블로그에도 상당한 자료가 있다. 이 사람은 연풍부대 부대장 김종벽 대위(소령 예편)과 이정숙 유격대원의 아들이다.
미 극동군사령부에 관한 문서로 극동사령부 한국관련 연구문서[7]에 켈로부대가 작성한 대북 비밀첩보 보고서들의 내용이 들어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 전쟁의 유격전사. 여기에서는 6.25 당시 유격부대와 첩보부대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총 693페이지.
전쟁 당시에 미군이 켈로부대에게 급한대로 2차대전 때 압수한 무장친위대 위장복을 지급했었다. 이를 입수한 중공군과 북한군이 소련에 분석을 요청했는데, 소련은 독일군이 참전한 줄 알고 정식으로 항의를 했다 오해를 푼 사건이 있었다.
공작활동 중 중국영해에서 체포되어 중국감옥에서 14년을 복역 후 출소하였으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2008년 사망한 장근주씨의 사례가 있다. 장근주씨를 취재한 MBC PD수첩 2008년 6월 24일 방영분
특전사 모체 6·25때 켈로부대 기록물 첫 공개
https://www.youtube.com/watch?v=DU_MPlsrjRs
79,780 views Jun 24, 2013
http://tv.seoul.co.kr/news/newsView.p...
특전사의 모체이지만, 특수부대라 기록이 없어 국가유공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6·25 전쟁 당시의 미군 산하 8240부대(일병 켈로부대) 관련 기록물이 처음 공개됐다. 24~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그날의 시선으로 본 기록' 전시회를 여는 국가기록원은 24일 6·25를 맞아 미국, 국제연합(UN), 러시아 등에서 수집한 6·25전쟁 관련 희귀 기록물을 소개했다.
특히 이 가운데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에서 입수한 6·25때 비정규군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한 8240부대 기록물은 최초로 공개되는 것으로 최소 수천명의 8240부대원들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8240부대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1949년 북한 출신으로 조직한 북파 공작 첩보부대로 '주한연락처'(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인 켈로부대로 널리 알려졌다. 함경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한 켈로부대는 1951년 8240부대, 1952년 8250부대로 확대 개편되었으며 주로 후방의 유격활동과 첩보활동을 맡았다. 정부는 이들을 국가유공 대상자로 인정했지만 8240부대원들은 계급도 군번도 없이 활동해 그동안 유공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 공개된 작전명령서들은 1952년 8월 12일 미군 아이비스 대령의 명령에 의해 8240부대 부관참모가 8240부대원들에게 내린 것 등으로 당시 작전에 참여한 8240부대원들의 명단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 산악지대에서 지게와 조랑말로 무기를 수송하는 장면, 전쟁 당시 제주도에서 이뤄진 생생한 신병훈련교육모습, 서울수복 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청으로 들어오는 모습 등의 희귀 영상도 함께 공개됐다.
이 영상에는 미국 시청자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자 드라마 형식으로 만든 '코리아 앤드 유'(Korea and You)에는 데뷔 전의 영화배우 최무룡과 김지미의 출연 장면이 있어 눈길을 끈다. 카투사로 출연한 최무룡과 선생님을 연기한 김지미는 동시 녹음된 영상에서 영어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하고 있다. 글 /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켈로부대, 구월산 유격대를 아십니까... ‘6.25 참전 비정규군 보상법’ 공포, 액수는 / 법률방송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vQbDCZXThUo
2,959 views Apr 13, 2021
http://www.ltn.kr/news/articleView.ht...
[법률방송뉴스] 50대 중장년층 이상은 지난 1983년부터 1년 2개월 여간 MBC를 통해 방영된 '3840 유격대'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실 텐데요. 이처럼 6·25 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한 비정규군 출신 부대원이나 유족들이 정부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 'LAW 투데이'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130회 6.25 기억록- “군번 없는 용사들” 켈로부대
https://www.youtube.com/watch?v=2M3jledh910
8,374 views Mar 9, 2021 #국방tv #켈로부대
70년 전 6.25전쟁에서의 숨겨진 영웅들. 전설의 첩보부대, 켈로부대(KLO) 부대는 주합첩보연락처 (Korea Liaison Office)로 미 극동군사령부가 운용한 ‘8240부대’로,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의 지리와 언어에 익숙한 이들을 모집하여 북한 지역에서 정보 수집과 게릴라전 등을 비공식적으로 수행한 특수부대.
이번에 만나볼 "6.25 기억록"의 주인공은 이 켈로부대로 입대하여 1950년 11월 중공군이 개입된 후 유격활동을 왕성히 펼쳤던 유영선 옹. 약 3만 명이나 되었던 켈로부대원들은 북한의 첩보를 수집하고, 적군을 상황을 파악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며 북한군의 기습 침공으로 밀리던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뒤에서 크게 활약했던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 등 4445회 작전을 수행하고, 약 7만여 명의 적군을 살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전과를 올렸던 은밀하고 위대했던 첩보부대.
하지만 6.25전쟁 당시 유영선 옹을 포함한 켈로부대원들은 미군 소속이었지만 미군이 고용한 민간고용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의 활약상은 미군의 기밀로 취급되어 약 60년간 알려지지 못했다. 당시 군번도, 계급도 없었기에 기록이 많지 않아 국가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무명용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1995년에 들어서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뒤늦게 군번을 받고 참전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군번도 없이 나라를 지켰던 이들. 무명으로 전사하여 그들을 기리기 위한 교동리에 위치한 8240 부대 충혼탑을 유영선 옹과 함께 찾아가 본다.
70년이 지난 세월만큼 노병이 되어 전우들 앞에 다시 마주한 유영선 옹.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 중 한 명이 되어 70년 전 역사를 꺼내본다.
#국방tv #대한민국_군인 #6.25_기억록 #군번_없는_용사들 #켈로부대 #유영선_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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