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76회>
지금도 한국에는 중국의 계속되는 성장을 예측하며 미국 주식의 보유 비중을 낮추라 조언하는 주식 전문가가 활약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화 제3 물결”은 이미 지나갔다며 앞으로는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같은 강력한 독재자(strongman)의 시대가 계속 펼쳐진다고 단언하는 “중국통” 정치학자도 있다. 친중파의 섣부른 예측과는 달리 시진핑 정권은 현재 국제적 고립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겉으로는 큰 근육을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며 날마다 한 줌씩 약을 먹어야 하는 병든 중년이랄까.
한미일 공조 강화로 국제외교의 구석에 몰린 중국
지난 17일 주펑 중국 난징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윤석열 정권을 향해 “친미원중(親美遠中)의 ‘숭미주의 정책’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객관적이며 이성적으로’ 옛 한중 관계를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탈세계화 전략으로 인해 삼성전자의 이윤이 폭락했다는 나이브(naïve)한 분석을 제시하며 그는 한국이 사는 길은 중국과의 “협력 확대”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만 문제를 함부로 논하면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의 논조를 빼다 박은 주펑의 칼럼은 현재 시진핑 정권의 외교적 고립감과 불안증을 반영한다.
실제로 한미일 공조의 강화는 중국에 가장 아프고도 두려운 외교 시나리오다. 한미일의 군사·외교적 연대는 세 나라 관계에 머물지 않고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 협의체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 3국의 최상위 군사동맹 오커스(AUKUS)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쿼드, 오커스, 한미일 공조는 ‘불침의 항모’ 대만, ‘반중의 공산국가’ 베트남까지 포섭하여 더욱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시대를 여는 자유 진영의 기본적 군사·외교 전략이다.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중국이라는 비대한 대륙을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차이나, 인도 등의 해상 제국(諸國)이 완전히 포위한 형국이다. 중국으로선 대만을 삼켜야만 태평양으로 펑 뚫리는 해상의 출로가 열리지만, 그 점을 잘 알기에 대만을 보위(保衛)하는 국제 연대가 그만큼 강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선 한국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일본과 충돌하고 미국에 거리를 두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반도가 통째로 중국의 영향 아래 놓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만큼 중국 외교의 숨통은 조여든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중국 외교부, 중국 학계의 공산당원들까지 총동원되어 한국 정부를 위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미국과 거리를 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 격찬하면서 외교의 프로토콜을 벗어나는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다)를 어색하게 연출했음에도 본인 스스로 여덟 끼니나 ‘혼밥’을 먹고, 따라간 기자단은 폭행까지 당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분리되는 순간 한국은 끈 떨어진 연이 되어 중국식 전랑 외교의 먹잇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했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당당하게 국제사회와 함께 대만의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미국을 너무나 잘 아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라는 인류적 가치를 강조하며 미국을 직접 압박해 절멸의 위기에서 한미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당당한 군사 외교적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반면 리영희 같은 구시대 반미친중파 지식인의 저서를 탐독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외교의 바다에 나가면 어김없이 좌충우돌, 좌고우면, 갈팡질팡, 아슬아슬 암초 사이로 표류하면서 난파 직전까지 가야만 했다. 그들은 한미일 공조가 단순히 국익을 위한 전략적 결탁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선양하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기초한 이념적 연대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낡은 가치에 집착하는 중국의 “수구 좌파”
개혁개방기 중국의 정치 투쟁사를 깊이 탐구한 비판적 지식인 양지성(楊繼繩, 1940~ )의 분류법에 따르면, 마오쩌둥을 되살리는 시진핑 총서기는 당내 ‘보수파’의 영수이며, 경제적 자유화에 역행하는 그의 정책은 ‘좌파’ 노선이다. “좌파인데 어떻게 보수적이란 말이냐?”고 반문하겠지만, 널리 통용되는 개혁개방 시대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의 분류법이다. 후야오방, 자오쯔양 등 1980년대 당내 보수 좌파에 대립했던 집단은 자유파, 개혁파라 불렸으며, 그들의 정치·경제 정책은 우파 노선으로 인식되었다. 개혁개방 시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는 ‘보수 좌파’와 ‘개혁 우파’ 사이의 시소게임이었다.
여기서 ‘보수’란 자유주의 국가에서 흔히 말하듯 오랜 경험과 전통의 지혜를 살려서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신중하고도 실용적인 정치적 태도나 정책적 입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에서 ‘보수’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같은 실패한 이념에 집착하는 이념적 교조주의와 정신적 퇴행성을 가리킨다. 그 점에서 중국의 ‘보수’는 한국어로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 번역해야 의미가 통한다.
마오쩌둥식 대약진의 몽상으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중국의 경제는 지난 40여년간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생명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성장했다. 그 점을 망각한 시진핑 정권은 자유주의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면서 마오쩌둥 시대로의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마오쩌둥식 인격 숭배가 그리운지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시대에 시진핑 사상을 선전하며 전 인민을 세뇌하려 한다.
놀랍게도 중국 헌법 서언 및 중국공산당 장정에 명기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 사상”, 줄여서 “시진핑 사상”의 내용을 뜯어보면 고작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장기 집권 전략에 불과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행동 지침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전 세계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한 국제주의자였다. 이념적으로 계급 해방과 민족 부흥은 서로 모순되며,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상충한다. 시진핑 사상은 이론적 정합성, 논리적 설득력, 지적인 창의성, 국제적 호소력, 사상적 진보성 그 어느 것도 전혀 없는 공산당 일당독재, 나아가 최고 영도자 일인 지배의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중국공산당의 ‘수구 좌파’가 물리력을 장악한 채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해서 인민의 귀와 입을 제약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개혁개방 초기 자유파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상실한 ‘수구 좌파’의 일방적 질주다. 반대 세력도, 비판 여론도 허용하지 않는 낡은 집단의 낡은 이념이 중국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의 ‘수구 좌파’를 빼닮은 한국의 ‘수구 좌파’
한국의 정치 현실을 분석할 때도 중국식 분류법이 흔히 사용하는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보다 정확하다. 대내적으로 ‘탈원전’, ‘소주성’, 4대강 보 해체를 추진하면서 대외적으로 중국에 아부하며 북한에 대해선 무한 유화책을 펼쳤던 문재인 정권이 진보적이었나? 언어적 착란은 민주주의를 교란하는 좌파의 선동술이다. 중국의 현 정권처럼 한국의 전 정권은 ‘수구 좌파’라 해야 옳다.
최근 4대강 사업 전후 10년간 16개 보에서 81%의 강물이 훨씬 맑아졌다는 서울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공동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보를 건설하고 하천을 준설하여 수량이 대폭 늘어나면 강물의 수질이 개선된다는 사실은 유럽과 미주에서 수백만 개 댐 건설로 익히 확인된 수문학의 기초 상식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 세력은 4대강 사업이 환경을 파괴하고 나라를 망치는 ‘삽질’이라는 맹신 위에서 온갖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를 퍼뜨려서 ‘4대강 살리기’를 ‘죽이기’로 바꿔 치는 정치적 야바위에 성공했다.
그 결과 정권을 잡고 나선 진짜로 4대강 보의 해체를 결정하고 대량의 물을 방출하는 실정을 이어갔다. 그뿐인가?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한국의 원전 산업을 위기로 몰고 가는 기상천외한 난정(亂政)을 펼쳤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엉터리 정책엔 급제동이 걸렸지만, 같은 오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한다. 대체 지난 정권은 왜 그토록 무모하게 국익에 반하는 비상식적인 정책을 추진했는가?
무덤 속 마오쩌둥이 되살아나 그 사태를 본다면 아마도 “득의망형(得意忘形)하여 ‘좌(左)의 오류’를 범했다” 할 듯하다. 정권을 잡자 득의양양해져 제 분수를 망각하고, 변혁의 열정으로 머리까지 더워져서 극단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공산당식 변명이다.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을 초래한 후 마오쩌둥은 “공산주의는 절대 진리”라는 스탈린주의의 대전제 위에서 “혁명은 무죄”라는 소전제를 유추한 후, 목적과 동기는 순선했건만 넘치는 혁명적 열정으로 실수를 범했다고 둘러댔다. 동기마저 불순한 ‘우(右)의 오류’와는 달리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목적에서 생겨난 ‘좌의 오류’였으므로 도덕적 잘못은 없다는 말장난이었다.
얼마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 정권 출범 후 지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졌다며 한탄했다. 대체 그는 무슨 근거로 스스로 남발했던 그 무모한 정책들이 성취였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소위 ‘진보’ 세력이 차고 있는 진보의 완장 때문이다. 누구든 ‘진보’의 완장을 차면 정치적 선민의식과 도덕적 우월감에 취하게 된다. 대체 누가 그들을 진보라 명명했는가? 그들은 역사의 발전 방향에 역행하는 ‘수구 좌파’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의 첫째 사명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난 정권의 과오를 철저히 규명해 교정하는 데 있다. 문재인 정권은 그 중대한 사명을 “적폐 청산”이란 선동적 구호로 표출했다. 그 결과 전 정권의 실세들을 줄줄이 감옥에 보내며 한동안 대중적 인기를 구가했지만, 1987년 이래 최초로 5년 만에 막을 내린 용두사미의 정권이 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첫 1년은 심히 미약해 보이지만, 지난 정권의 실정을 거울삼아서 조심조심 난국을 헤쳐 나간다면 대기만성의 정권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에 포진한 ‘수구 좌파’가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음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 이념적 결단과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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