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민주당에 ‘상식’과 ‘신뢰’가 同行하던 옛날이야기
민주당, 이재명 대표 결사옹위하는 국회 안 ‘정치 로펌’ 돼
곡(哭)쟁이 정치, 대통령 부인 스토킹, 돈 봉투 전당대회…
민주당은 기자가 40년 넘게 가까이 또는 멀리서 지켜봐 온 옛 민주당 자식이나 손자가 아니다. 조상(祖上)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당 같다. 현재 민주당이 모시는 족보(族譜)는 가짜 족보다. ‘조상 자랑하려 말고 땅속 조상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후손(後孫)이 돼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그런 정당이다.
여러 야당 총재·대표를 겪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듣도 보도 못 한 유형의 정치인이다. 정치하다 보면 특히 군사정권하에선 야당 지도자가 법정에 서는 일이 없지 않았다. 이른바 시국(時局) 사건이었다. 이 대표처럼 파렴치(破廉恥)한 죄목(罪目)으로 매주 법정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야당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정치의 속성 중 하나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그래도 옛 야당 지도자에겐 사적 또는 공적 인간관계에서 넘지 않는 어떤 선(線)이 있었다. 그 바탕이 타고난 성품과 가정에서 닦은 소양(素養)이다. 75년 야당 역사에서 이 대표처럼 근친(近親) 간에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설을 주고받고 공적 관계에서 입만 열면 거짓말 시비가 따르는 야당 지도자는 없었다.
책임의 크기와 선후(先後)는 서로 다르겠지만 고장(故障) 난 정치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다. 그런 면에선 여야 겸상(兼床)을 차려야겠지만 이 대표는 먼저 독상(獨床)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 대표는 입당해서 민주당을 사실상 해체하고 ‘개인 정당’으로 개조(改造)했다. 과거 김영삼·김대중씨가 집권 전략으로 정당을 창당한 적이 있으나 당헌·당규(黨規)는 보통 정당과 다름이 없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의 정당’으로 바꿔 버렸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결사옹위(決死擁衛)하는 국회 안 ‘정치 로펌’ 노릇을 해왔다. 입법과 정책 활동 초점은 항상 ‘이재명 지키기’였다.
정치에 관한 온갖 이론이 있지만 정치의 기본 토대는 결국 ‘상식’과 ‘신뢰’다. ‘상식’과 ‘신뢰’가 흔들리면 전문 지식을 동원해 그 위에 그럴듯한 이론을 세워도 궤변(詭辯)이 되고 만다. 민주당은 비리(非理)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당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한 당헌 뒤에다 ‘정치 탄압 사건은 제외’라고 이 대표를 위한 사족(蛇足)을 그려 넣었다. 요즘엔 선거법을 개정해 이 대표가 저지른 행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 대표를 수사하거나 재판할 검사·판사를 위협하는 형법 개정에도 손을 댔다. 진짜 막가는 정당이 돼버렸다.
상식과 신뢰가 떠나버린 민주당 당사에선 당 앞날을 걱정하는 당원 대신 ‘개딸(개혁의 딸)’과 ‘처럼회’ 멤버 같은 ‘개아들(개혁의 아들) 의원’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주인과 객(客)의 처지가 바뀐 당 구조가 갖가지 이상(異常)행동을 낳았다. 대형 참사가 나면 상가(喪家)에 제일 먼저 나타나 상주(喪主)보다 큰 소리로 울어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시골에선 돈 받고 대신 울어주는 직업을 ‘곡(哭)쟁이’라 했다. ‘곡쟁이’ 울음이 커지면 애절한 슬픔은 뒷자리로 밀려난다.
대통령 부인에게 문제가 있으면 응당 진실을 캐물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 일을 스토커처럼 야비한 용어와 지분거리는 말투를 써가며 스스로를 비하(卑下)하는 자해(自害) 행위로 바꿔 놓았다. 자기 누이나 아내에게 이런 식으로 대했다면 대번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돌린 300만원짜리 돈봉투를 두고 ‘휘발유 값밖에 안 된다’며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에 문득 35년 전 옛일이 떠올랐다. 월급 많이 주는 직장으로 옮긴 친구가 동료들에게 저녁을 내는 자리에 선배분을 초대했다. 야당 총재 권한대행(權限代行)이었다. 식견(識見)이 넓고 인품(人品)도 넉넉해 따르는 후배가 적지 않았다. 키도 보통 사람보다 한 뼘 이상 컸다.
소속 의원들과 전 모임에서 꽤나 시달렸던지 지각한 벌주(罰酒)로 소주 폭탄을 몇 잔 들이켠 뒤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내 윗옷을 바꿔 가 버렸다. 작은 옷을 어떻게 꿰입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잠깐이고 당장 택시비가 걱정이 됐다. 더듬으니 다행히 지갑이 잡혀 꺼내보니 신분증에 먼지뿐이었다. 친구에게 택시비를 얻어 반(半)코트처럼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옷을 걸치고 걷는 기분은 이상하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돈 봉투가 따라 올라왔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상식과 신뢰가 동행(同行)하던 자기 당의 역사를 이재명 대표가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새로 뽑힌 원내대표의 ‘확장적(擴張的) 통합’이란 말에 한번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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