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의 중심에 선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지역구인 서울 서초갑에서, 일찍이 그의 도덕성과 자질 등을 근거로 한 탄원서를 중앙당에 올렸다가 묵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구에서 올렸던 문건은 ‘이정근 서초갑 지역위원장 재신임 반대 탄원서’로 지난 2018년 이 전 부총장이 서초구청장 선거 낙마 후 지역위원장 복귀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작성됐다. 여기에는 당시 이 전 부총장이 서울의 25개 자치구 구청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낙마한 민주당 후보라는 데 대한 우려 외에도 상식적이지 못한 그의 정치 행보를 폭로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이 전 부총장은 오랜 기간 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을 역임하며 20·21대 총선, 제7회 지방선거, 지난해 서초갑 재보궐선거 등에 출마한 바 있는데 그때마다 지역에선 중앙당의 공천 및 지원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지역의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럼에도 중앙당이 이정근을 놓지 않은 것” “지금과 같은 돈봉투 논란은 예견됐던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적지 않다.
‘갑질, 거짓말, 함량미달, 도덕성’ 등 지적
앞서 언급한 탄원서는 ‘서초갑 지역 당원 및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우리는 이정근의 지역위원장 복귀를 아래와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며 ‘후보자 이정근의 함량 미달 자질 및 품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민주당원조차 이정근을 찍지 않아 자유한국당의 조은희 후보를 완승케 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정근의 당헌·당규 위반 행위, 온갖 갑질, 거짓말, 함량 미달, 그리고 도덕적 결함 등을 밝히고자 합니다’라며 그의 세급 체납 문제부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억원에 가까운 체납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사과는커녕 남편 질병 간호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 (중략) 약 4년 전에 세금을 완납했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불과 1년 전까지도 거액 체납 사실이 존재했다고 전언되고 있음. 지방선거 직전에 완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가지 정황이 나타나고 있어 그 돈의 출처가 의심됨.’
탄원서에는 이 전 부총장의 인사 전횡과 관련한 내용도 적시됐다.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인사처리. 아부하지 않거나 반사이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왕따를 시켜 스스로 사퇴케 하거나, 당직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말 한마디로 직에서 사퇴시키는 등 전횡을 일삼은 점. 오랫동안 지역을 위해 일해 왔던 많은 상무위원, 고문들을 본인 의사와 반하여 사퇴시킴. 거의 모든 일에 갑질이 기본.’
또 비례 구의원 후보 선출과 관련해 ‘민주당의 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관계없는 인물을 비서처럼 부리더니, 어느 날 그녀를 비례대표로 세우는 일을 감행’이라며 ‘반대자의 의견도 무시하고 일사천리로 날치기 처리하여 오늘날 비례대표 구의원이 탄생. 회의록을 요구하였으나 불응함. 이것이 많은 의혹을 낳게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뒤이어 일부 민주당 구의원 후보에 대한 공천 대가로 돈이 오갔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지난 1월 주간조선과 만난 서초갑 지역의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장의 횡포가 상당했고 그를 보기 싫어 탈당한 이들도 많았다”며 “이에 중앙당이 지역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두는가 했는데 다시 그를 앉혔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이 다양한 방식으로 크고 작은 돈을 자기한테 상납하도록 했다는 등 악성 평판이 제기됐는데도 불구하고 중앙당은 그를 신임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처음 지역에 와서 정치할 때 보니까 (사람들에게 이 전 부총장에 대해) 백번 물으면 백번 다 네거티브한 이야기만 한다”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송영길 연설 다음에는 항상 이정근”
이 같은 지역 평판과 여론으로 미뤄봤을 때 이 전 부총장은 지역 반발에도 자리를 지키며 각종 선거에 출마했고, 여기에는 중앙당 차원의 ‘남다른’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민주당에서 서초갑은 ‘험지’로 평가됐던 만큼 출마를 자처하는 이들이 적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마다 당은 여성이란 점을 앞세워 이 전 부총장을 별다른 경선 없이 우선 공천했다. 지난해 말 지역에선 이 전 사무부총장 제명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호소문에는 ‘(이 전 부총장이) 당의 유력인으로부터 비호를 받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여기에는 최근 논란을 사고 있는 이른바 ‘돈봉투’ 등 전방위적 불법 정치자금 살포에 이 전 부총장이 관여한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지역 정치 관계자들의 평가다. 무엇보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과 조모 전 인천시 부시장 등이 마련한 총 9400만원은 이 전 부총장을 통해 2021년 송영길 당시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역에선 이것이 송영길 전 대표와 이 전 부총장의 두터운 친분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의 시·구의원들이 워크숍을 할 때면 송 전 대표가 연설을 한 다음으로 항상 이 전 부총장이 나섰다. 송 전 대표가 그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며 “송 전 대표 측근 중에는 왜 이리 이 전 부총장을 돕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이 맡고 있던 자리인 ‘미래사무부총장’ 또한 본래 당에선 존재하지 않던 직함으로, 송영길 당대표 체제 때 만들어져 이 전 부총장이 처음으로 올랐다.
이러한 중앙당에서의 친분, 그리고 직함을 기반으로 이 전 부총장은 지역 정치 관계자들 사이에서 군림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선거 때면 그가 민주당의 시·구의원 후보들로부터 공천 대가성 금품을 수수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파다하다. 한때 지역에선 관련 내용을 정리한 문건이 작성돼 공유됐는데, 여기에는 지방선거 시·구의원 예비 후보자들이 공천을 앞두고 이 전 부총장에게 어떤 식으로 금품을 제공했는지 그 경위가 담겼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 전 부총장을 추가 기소한 바 있다.
서초갑 지역 관계자들은 이 전 부총장의 그간 행보에서 정치 철학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전 부총장은 민주당에서 존재감을 보이기 전인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서초구청장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국민의힘에도 발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그러다가 민주당 인사 소개로 이쪽으로 넘어와 이낙연계를 거쳐 송영길 전 대표 쪽으로 넘어간 것인데 그런 그에게 정치적 신념이란 게 있겠나”라고 평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전 사무부총장을 거쳐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민주당 인사들은 4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이낙연계도 적지 않을 것이란 게 이 관계자 설명이다. 지역에서 정리한 이른바 ‘이정근 리스트’에는 지난 4월 12일 검찰이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정치자금법·정당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이던 당시 영장에 적시한 9명 외에 6명의 현역 의원 이름이 추가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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