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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中사업가에 개성공단 사진 뿌려…사실상 투자 유치"

Jimie 2023. 4. 20. 09:37

[단독] "北, 中사업가에 개성공단 사진 뿌려…사실상 투자 유치"

중앙일보

입력 2023.04.20 08:00

지난 1월 25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개성공단에 중국 기업의 투자나 일감을 유치하기 위해 북·중 접경지역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업가들에게 공단 내 설비와 시제품 등의 사진을 보낸 정황이 파악됐다. 정보 당국은 향후 북한이 향후 사실상의 개성공단 투자 유치전에 나설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19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북한이 중국을 상대로 개성공단 내 기계금속·전자 공장의 가동을 위한 투자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공단 내 설비와 시제품을 촬영한 사진 30여장을 주요 중국 측 관계자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중앙일보가 다수의 대북 소식통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관련 문건에는 북한과 중국 측 관계자가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과 북·중 양국의 국기가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중국 기업의 사무실, 단둥(丹東)에서 신의주를 거쳐 개성까지 물자를 싣고 이동할 수 있는 화물차량의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개성공단 내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등장한다. 해당 설비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제품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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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운영되던 2013년 9월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북측근로자들이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는 모습. 개성공단=사진공동취재단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에서 보내온 사진 등을 통해 기존에 만들어 놨던 제품은 북한 당국이 이미 암암리에 모두 유통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다만 아직 개성공단 내 설비는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시설물이 그나마 보존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평양에서 개성까지 이동하는 동안 7곳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개성 인근에서만 3번의 통행 확인 도장을 받는 구조라 설비의 밀반출이나 이전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의류나 봉제 등 단순 노동력이 투입되는 분야가 아닌 기초적인 전자 제품 등 소위 '돈 되는' 품목에 대한 생산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대북투자·유통·임가공 등의 사업을 하는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보내온 사진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G사의 등속 조인트, C사의 액정 및 회로기판, J사의 휴대폰 부품, S사의 페트병·휴대폰케이스 등의 시제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며 "중국 측 접경 지역에선 개성에서 관련 물건을 싸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브로커들도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된 직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중 접경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인사는 본지에 "개성공단 폐쇄 직후 북한 당국이 적극적인 자본 유치전을 벌이다가 그동안 코로나 봉쇄 등으로 주춤했다"며 "최근 국경 봉쇄를 해제하려는 시기를 앞두고 과거와 같은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중앙일보는 2017년 2월 24일 북한 당국이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기업을 만나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고 다수의 중국 기업이 개성공단을 수차례 방문한 것은 물론 시제품까지 생산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을 불법 가동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개성에 중국 자본을 재차 유치하는 듯한 정황이 재차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유엔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 자본의 유입 가능성과 관련 "북한이 중국 기업에 개성공단 관련 투자를 받는 방법은 임가공 물량을 유치하거나 공단 내 시설을 직접 임대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며 "개성공단 시설을 외부에 직접 임대하는 것은 제재 상황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임가공의 경우 상대적으로 절차가 복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회로를 찾아낼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지난해 9월 압록강철교인 중조우의교를 건너 단둥에서 신의주로 넘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기류는 사실상 북한 김정은 정권의 비호 또는 정책적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 '송도무역총회사'나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해외동포 관련 조직을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기업들이 개성공단 제품의 품질이 우수하고 단가가 저렴해 상대적으로 높은 물류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 기업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개성공단의 전기는 개성시 인근에서 공급을 받고 있고 자체적으로 발전기도 갖추고 있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려움이라면 통신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평양에선 중국의 위챗은 물론 한국 카카오톡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에선 무선통신망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교신을 하기 위해선 개성 시내에 있는 숙소(호텔) 등 제한된 곳에서 이메일로 작업 지시서 등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를 가동하기 위한 신규 투자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다만 북한 당국의 투자유치 정황이 사실이라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주장하는 동시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정치 북한

[단독] "개성공단에 中 끼면 일 커진다" 정부 초강력 경고 배경

중앙일보

입력 2023.04.20 08:00

정부가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을 문제로 삼으며 강력한 ‘경고장’을 잇따라 보내는 배경은 향후 중국 자본의 개성공단 진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여권의 고위 인사가 19일 밝혔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중국 인력이나 시설이 개성공단에 유입될 경우, 이는 단순히 한국측 자산에 대한 관리 등 남북간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정치ㆍ외교ㆍ군사적 사안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지난 1월 25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하다.연합뉴스

여권 고위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에 중국을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운영하려 한다는 정황이 파악돼 분명한 경고와 강력한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북한과 중국 당국이 정책적으로 개성공단 운영 움직임을 보일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다양한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이 중국을 향해 사실상의 개성공단 투자 유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개성공단 내 30여개 공장이 가동된다는 사실은 물론, 무역회사로 가장한 ‘송도무역총회사’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이 사실상 직접 개성공단을 중국에 홍보하는 정황과 접경지에서 개성공단 시설을 활용한 ‘위탁 임가공’ 브로커들이 활동하는 내역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러한 내용은 대통령실에도 보고돼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됐다고 한다.

정부는 대책 논의 직후인 지난 6일 통일부를 통해 ‘개성공단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대북통지문을 보내려고 했지만, 북한은 통지문 접수를 거부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인 7일 남북통신연락선ㆍ군 통신선을 통한 교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북한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어지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장관 명의의 성명을 내고 “북한의 위법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국제사회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성명이 나온 것은 10년 만이다. 개성공단 관련 문제를 국제사회와 공조해 풀겠다는 것으로,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18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따르면 북한이 개성공단 시설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담긴 열적외선 위성사진이 공개됐다. 열적외선으로 온도를 감지하면 온도가 높은 곳은 '붉은색', 낮은 곳은 '푸른색'으로 나타나는데 열을 발산하는 붉은색 구역이 4곳 식별됐다. 연합뉴스

정부의 이 같은 초강경 대응은 해당 사안이 초래할 수 있는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만약 개성에 중국이 관여하게 되면 향후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이 아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란 G2가 직접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될 수 있다”며 “군사적 측면에서도 만약 휴전선 인근인 개성에 중국 자본이 들어갈 경우 이는 일종의 ‘인계철선’의 역할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중국 자본이 직접 들어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2017년 9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5호에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ㆍ합영사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를 무시할 경우, 이는 안보리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2017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유류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 239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17년 유엔 안보리는 4건의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시 안보리가 제재결의안 2375호를 의결했던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해당 제재안이 나오기 전 북한은 실제로 개성공단을 사실상 중국에 팔아넘기려고 시도하다 ‘꼬리’를 밟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10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바로 다음 날 남측 자산을 동결하고 한 달 뒤 개성공단 자산의 청산을 선언했다. 일방적인 자산 몰수 선언 이후 북한은 홍콩과 중국 자본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개성공단 유치전을 벌였다. 제재결의안은 이러한 정황이 파악된 이후에 의결됐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과거 북한의 중국 자본 유치전에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정권의 고위층이 직접 개입했던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며 “개성공단 관련 건에 대해서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북한과 중국이 당국 차원에서 언제든 정책적으로 관여해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019년 6월 20일 평양 5·1 경기장의 집단 체조 공연 관람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출연진을 격려한 뒤 주석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붉은 깃발 물결 가득한 10만 관중석이 인상적이다. [신화=연합뉴스]

공교롭게 북한은 지난달 27일 코로나 국경 봉쇄 이후 처음으로 주북한 중국대사의 입국을 허용했다. 또 지난 18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친서엔 “북ㆍ중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고위 인사는 “설마 북한과 중국이 국제사회의 제재 등의 부담을 안고 개성과 관련해 그렇게까지 무모한 결정을 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미리 확보해 둬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북한의 개성공단 불법 활용과 관련한 법적조치를 취할 뜻까지 밝힌 상태다. 다만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나 국내 사법 기관의 판단을 구하더라도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2016년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에 따라 공단 내 남측 인원과 자재, 장비의 철수 절차가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대진 원주한라대 교수는 “정부의 강경한 대응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종의 ‘내용 증명’ 보내며 법적 근거와 명분을 쌓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물론 실효성은 떨어지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북한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