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민주노총 관계자와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에서 “한미일 군사 동맹(협력)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투쟁” 등 반미 시위를 선동하는 내용의 북한 지령문을 여러 건 확보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 퇴진 시위를 선동하는 내용의 지령문도 있었다. 작년 10월 핼러윈 참사 당시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등 반정부 시위에 동원된 구체적 구호가 북 지령문에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과 경찰청은 지난 1~2월 복수의 민노총 사무실과 산하 노조 사무실, 관계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 수색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북한 지령문 등을 확보했다. 북한은 작년 2월 지령문에서 “한미일 군사 동맹(협력) 해체 등의 구호를 들고 반미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일 것”을 지시했다. 또 “주한미군 철수 투쟁 구호로 전 지역적 범위에서 넓혀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해 5월에도 “다양한 반미 투쟁을 지속 벌여나갈 것”이라는 지령을 내렸다. 한미 동맹 와해와 주한미군 철수 시위 지령을 계속 하달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에는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등 반정부 시위 구호를 직접 적어 국보법 위반 혐의자들에게 내려보냈다고 한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사태 당시에는 ‘모든 통일 애국 세력이 연대해 대중적 분노를 유발시키라’는 지령문을 하달한 적도 있다.
방첩 수사 당국은 북한 지령문에 적힌 반정부 구호가 실제 국내 일부 시민 단체의 투쟁 구호와 현수막 문구로 사용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 지령문의 반정부 선동 문구와 국내 단체들이 내건 문구가 일치하는 경우가 상당수인 만큼 민노총 주도의 반정부 시위와 북한 지령과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북한이 핼러윈 참사에 대한 애도 분위기를 반정부 투쟁으로 바꾸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방첩 당국은 보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남한 내 종북·좌익 세력이나 반정부 세력의 투쟁을 선동하고 지원하라는 대남 혁명 역량 강화 지침을 내렸다”며 “간첩 남파를 통한 국내 종북·좌익 세력 지원 및 각종 공작을 전개하거나 남한의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부분의 혼돈을 부추기는 방식을 계속 활용해 왔다”고 했다.
방첩 당국이 확보한 압수물에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는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작성한 대북 충성 맹세문도 다수 포함됐다고 한다. 충성 맹세문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정은 리더십 등을 찬양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맹세문은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등 북한이 중시하는 국경일을 전후해 작성됐다고 한다.
북한은 또 한국 방첩 당국의 수사를 염두에 두고 관련 수사를 ‘공안 탄압’으로 몰아 대중적 분노를 유발하라는 지침도 내렸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사실관계 파악보다 수사 자체를 ‘공안 탄압’으로 몰고 가 간첩 혐의 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리는 여론전 수법을 사용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인사들과 이들이 포섭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을 ‘통일 애국 세력’이라고 불렀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애국 세력에 대한 탄압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번 사건의 혐의자들은 ‘노조 탄압’ 등을 내세우며 부당한 수사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첩 당국은 이들이 활동한 지역을 중심으로 ‘창원 간첩단’ ‘제주 간첩단’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사건 등 세 갈래로 나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에 대공 혐의자들의 아이폰과 텔레그램도 이례적으로 해독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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