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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풍선, 고장 탓에 美 영공行? 밑천 드러난 中 첩보전 실력

Jimie 2023. 2. 11. 04:39

정찰풍선, 고장 탓에 美 영공行? 밑천 드러난 中 첩보전 실력

[최유식의 온차이나]
중 정찰풍선, 영공 밖 고고도서 정찰하려다
고장으로 고도 낮아지며 미 영공 진입한 듯
”후난성 소재 국유기업이 제작하고
하이난성 첩보부대가 운용”

입력 2023.02.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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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2일(현지 시각) 중국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정찰 풍선이 지난 이틀 동안 본토 상공에서 포착돼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일 정찰 풍선이 몬태나주 빌링스 상공에 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풍선 격추 사건으로 떠들썩한 한 주였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예정된 중국 방문을 취소하면서 미중 관계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죠.

◇무안한 중국, 반미 댓글 차단

중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2월5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반발했습니다. “민용 기구에 대한 과도한 대응”이라면서 “중국은 필요한 대응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죠.

겉으로는 반발 강도가 높지만, 분위기는 묘했습니다. 중국 외교부와 국영 CCTV 등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항의성명을 올렸는데, 모두 댓글을 가렸어요. ‘샤오펀훙(小紛紅)’으로 불리는 극렬 네티즌들이 몰려와 줄줄이 미국 규탄 댓글을 달았을 텐데 아예 못 보도록 한 겁니다.

 
2월5일 중국 외교부가 웨이보에 올린 무인비행선 격추 항의 성명. 1951명이 댓글을 달았지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웨이보

이번 일은 중국의 일방적 잘못에 의해 발생했고, 중국 첩보전 능력의 밑천을 다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민간의 기상관측용 기구였다는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댓글을 가린 건 하루빨리 이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중국 최고위층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초보적이고도 치명적인 실수”

미국이나 중국이 상대국 군사시설 첩보를 수집하는 건 정상적인 일입니다. 미국 정찰기도 수시로 중국 내 동향을 살피죠. 하지만 이번처럼 상대국 영공으로 진입해 돌아다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제법에 반하는 행위로 격추를 당해도 할 말이 없죠.

서해에서 활동하는 미국 정찰기들은 통상 중국 영해 기점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을 운항하면서 중국 내부를 들여다봅니다. 중국 정찰 풍선은 아주 초보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자료=FT·가디언·아큐웨더 등 종합 그래픽=양인성

워낙 터무니없는 실수이다 보니 음모론까지 나옵니다. 중국 군부 강경파들이 미중 간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의도적 도발을 한 것 아니냐는 거죠. 여러 정황으로 보면 그보다는 정찰풍선에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통상 정찰풍선은 방공 레이더에 걸리거나 미사일에 격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상 20~30㎞의 고공을 비행하는데, 중국 정찰풍선의 고도는 15㎞ 정도로 낮았다고 해요. 미국 싱크탱크 마라톤 이니셔티브의 정찰 기구 전문가 윌리엄 킴은 “중국 정찰 풍선의 고도가 좀 낮았다”면서 “원래 미국 영공 밖 고고도에서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가 고장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안 전문가인 에이미 저가트 미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저지른 엄청난 자충수”라고 했어요.

◇U-2 띄워 정찰풍선 증거 확보

중국 정찰풍선은 1월28일 알래스카 지역 미국 영공으로 들어왔다가 캐나다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2월1일 몬태나주를 통해 다시 미국 영공에 진입했고, 사흘 뒤인 2월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앞바다에서 격추됐죠. 미 군사매체 워존에 따르면 미 공군은 고고도 정찰기 U-2S 두 대를 보내 수일 동안 이 정찰 풍선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U-2S에는 고성능 전자광학 카메라와 전자전 장비 등이 장착돼 있죠.

 

미국은 U-2S가 찍은 고해상도 사진을 바탕으로 이 기구가 태양광 전지판과 인공지능 항법장치, 전자정보 수집기, 위성 송수신장치, 고성능 카메라, 자폭용 추정 폭탄 등을 갖춘 중국의 정찰풍선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높이 61m, 폭 27m 크기에 중소형 제트기 수준의 장비를 탑재할 수 있다고 해요.

미국의 고고도 정찰기 U-2S. 미군은 중국 정찰풍선 확인을 위해 이 정찰기 2대를 투입해 수일 동안 감시했다고 미 군사매체 워존이 보도했다. /미 공군

미국 정보 당국은 이 정찰 풍선이 하이난성에 있는 한 군사기구 산하 무인비행선부대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중국군 첩보 수집을 총괄하는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정찰국 소속 부대라는 거죠.

제작사는 국유기업인 중국화공그룹 산하의 주저우(株洲)고무연구설계원이라는 곳으로, 이 기업은 중국군 승인을 받은 군수용 풍선기구 제작업체라고 합니다.

◇자충수가 된 거짓 해명

중국은 해명 과정에서도 완패를 당했어요. 중국 외교부는 풍선이 격추되고 나서 “기상관측 활동을 하는 민용 무인 비행선으로 서풍의 영향으로 통제능력을 잃고 미국 영공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U-2S를 통해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 정찰풍선이 기상관측용 기구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전지판을 갖췄고, 이동 궤적도 자연 풍향에 맞지 않으며, 중국 공군이 풍선을 조종했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군 정찰풍선이라고 반박했어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2월6일 워싱턴에 있는 40개국 대사관의 외교관 150여명을 초청해 이런 내용을 포함한 구체적인 정보를 브리핑했다고 합니다.

 
후난성 주저우시에 있는 중국화공그룹 산하 주저우고무연구설계원. 군수업체로 이번에 적발된 중국 정찰풍선을 생산한 곳으로 전해졌다. /바이두

미국 정보 당국은 이 정찰풍선이 중국 남부 하이난성에 기지를 두고 일본, 인도, 베트남, 대만, 필리핀 등 5개 대륙 40 개국 영공에 들어가 군사 첩보를 수집해 왔다고 했어요. 중국이 민용 기구라고 발뺌을 하자 아예 전모를 공개해버린 겁니다. 격추된 정찰풍선의 잔해물을 확인하면 더 세밀한 정보가 드러나겠죠.

◇중국 백기 든 듯...미국도 확전 자제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2월6일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으로 미중관계가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블링컨 국무장관이 적절한 시기에 다시 방중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했어요.

이런 발언이 나오는 것으로 봐 중국이 사실상 미국 측에 백기를 든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양국 국방장관 간 통화를 거부하는 등 강경 자세이지만 뒤로는 납작 엎드렸다는 뜻이죠. 미국 정부도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확전은 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2월 4일 오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해안가 상공에서 미 공군 F-22 랩터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격추되는 중국 정찰 풍선. /로이터 뉴스1

그럼에도 이 사건은 앞으로 미중 관계를 가늠할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당장 미국 내 반중 여론이 고조되고 있죠.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간 반중 선명성 경쟁이 벌어지면 미중 관계는 지금보다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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