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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 침공 설계자' 다시 불렀다…그가 가장 먼저 한 일

Jimie 2023. 2. 5. 10:31

푸틴 '우크라 침공 설계자' 다시 불렀다…그가 가장 먼저 한 일 [후후월드]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3.02.05 13:00

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설계자가 돌아왔다. 곧 대공세가 시작될 수 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지난해 12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방부 이사회 연례 회의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신임 얻은 게라시모프, “독이 든 성배 들었다”  

러시아군 최고 지휘관인 발레리 게라시모프(68)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이 지난달 11일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자 외신은 일제히 이렇게 보도했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군이 북동남, 3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전면전을 획책한 장본인이다.

그를 비롯한 러시아 수뇌부는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졸전을 거듭하면서 전쟁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전쟁을 설계한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해임설이 떠돌았다. 러시아 정부는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그를 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력한 신뢰는 떨어진 것으로 관측됐다. 그랬던 그가 약 10개월 만에 전면에 재등장했다.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앞서 최근까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용병부대를 이끄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악명 높은 러시아 체첸공화국 부대를 지휘하는 람잔 카디로프 등 비정부 인사를 의지했다.

 

그런데 이들이 죄수까지 동원해 인해전술을 펼치는데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자, 푸틴 대통령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다시 선택했다. 러시아 안보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는 “이제 러시아의 모든 것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달려있다. 그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평했다.

 

블라디미르 푸트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지난 2021년 12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우크라이나서도 존경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만난 사람들은 그를 무뚝뚝하고 우락부락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천생 군인이라고 표현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이라고 했다. 게라시모프는 1955년 러시아연방에 속한 타타르 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찌감치 군인을 꿈꿨다. 16세에 카잔 수보로프 군사학교에 들어가 2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고등전차사령부학교(1974~76년)를 나와 1977년 22세에 소련군에 입대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군으로 편입했고, 이후 장군참모군사학교(1995~97년)를 나와 모스크바군구 부사령관을 맡으면서 출셋길이 열렸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에 참전해 활약하면서 2001년 사령관이 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전승절(2차 대전 승전 기념일) 열병식을 지휘했고, 2012년 11월 57세에 총참모장에 부임하면서 세계 2위 군사 대국을 이끄는 최고 높은 계급이 됐다. 이후 10년 넘게 푸틴 대통령의 옆을 지키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 전쟁’의 대가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테러행위·선전·거짓 깃발 작전·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작전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전쟁이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등에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24는 “영국 군사 전문가 갈레오티가 이 용어를 처음 언급했는데, 이젠 ‘게라시모프 교리’라 불릴 정도로 잘 이용했다”며 “미국에서도 게라시모프 교리에 대한 반향이 컸고 면밀하게 연구됐다”고 전했다.

 

한때 소련군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군대에서도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대단한 존재였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도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지난해 9월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그가 쓴 러시아 군사 교리를 보고 모든 것을 배웠고,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며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기대도 엄청나게 컸다”고 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러시아군 합동본부를 방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개전 초기보다 병력·무기·사기 등이 모두 저하된 상태에서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일단 러시아군 기강부터 단속하고 있다. 참전한 러시아 군인 모두에게 비공식 군복·민간 차량·휴대전화 등을 금지했다. 또 머리와 수염을 짧게 깎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긴 바그너 그룹의 죄수 용병과 체첸 병사 등을 겨냥한 조치다.

비판적인 군사 블로거들 입단속에도 나섰다. 이들도 최전선에선 ‘언론’이라고 적힌 파란색 방탄복을 착용하는 등 종군기자들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따르라고 지시했다. 텔레그래프는 “게라시모프 총사령관이 자유분방하게 다니며 정보를 얻었던 군사 블로거들에 대한 검열을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이브리드 전쟁 대가…실책 만회할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지난 2021년 12월 21일 연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를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그로부터 두달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AFP=연합뉴스

다시 돌아온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개전 초기의 실책을 만회하고 푸틴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서방이 신형 전차 등을 대거 우크라이나에 지원보내는 상황에서 러시아 군수업체들은 서방의 제재로 핵심 부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게라시모프가 중점을 뒀던 하이브리드 전쟁은 빈약한 밑천이 드러났다. 프레데릭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 육군 최고사령관은 “러시아군은 재래식 전쟁에 맞춘 훈련과 작전 경험이 부족했고, 이번 전쟁에서 병참 문제 등 모든 단점이 단번에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선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에 버금가는 대규모 공세를 앞세워 다음 달까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지난달 말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군사적 위협 속에서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방부는 병력 규모를 115만명에서 150만명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조만간 2차 군 동원령을 내릴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