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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 스님의 불교시 감상] 깨달음의 정처, 선운사

Jimie 2022. 12. 29. 20:29

[승한 스님의 불교시 감상] 7. 깨달음의 정처, 선운사

  • 입력 2022.04.01 20:15

7.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 1994)

왜 그럴까. 전국의 산사(山寺) 가운데 시인묵객들이 소재로 가장 많이 끌어다 쓴 절이 전북 고창 도솔산에 있는 ‘선운사(禪雲寺)’다. 까닭이 뭘까, 곰곰 생각해본다. 대번에 떠오르는 시 한 편.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으으-, 아아-, 으아아-, 이 맛을 감히 어떻게 표현할까. 이 육질(肉質)을, 이 애절(哀絶)을, 이 육자배기와 향토와 가락과 연애를 어떻게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 절묘한 장인(匠人)의 솜씨 앞에 필자는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미당의 이 시로 인해 선운사는 문학의 천국이 되고 창작의 샘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천국의 샘물은 아직도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리고 섧고 애달프고 질퍽하게, 때로는 핏빛 사랑으로, 때로는 붉은 연애로, 때로는 구수한 막걸리로, 목이 쉬게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육자배기로 흔들고 있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그 샘물 앞에서 끝내 이렇게 울었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

희한하다. 김용택 시인은 어째서 선운사를 이렇게 ‘버림받은 여자’로 끌고 와 엉엉 울었을까. 안도현 시인도 기막히게 선운사를 끌어 들였다.

“나 오래 참았다/ 저리 비켜라/ 말 시키지 마라// 선운사 뒷간에/ 똥 떨어지는 소리”

-안도현의 ‘동백꽃 지는 날’

서정춘 시인과 박남준 시인은 한 술 더 떴다.

“동백숲이 정처(定處)다// 아껴서 듣고 싶은 철새가 운다// 울다가 그만 둔다// 귓속이 환해진다// 동백숲 그늘을 치고 동백이 진다// 할! 맞아 떨어진 점화(點火)를 본다”

-서정춘의 ‘선운사 점묘’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습니다/ 대웅전 뒷산 동백꽃 당당 멀었다 여겼는데요/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남으로 내린 한 동백 가지/ 선홍빛 수줍은 연지곤지 새색시로 피었습니다/ 흰 눈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습니다 그려”

- 박남준의 ‘선운사 동백꽃’

김영남 시인은 아예 내놓고 들이댔다.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 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 개울이 오묘한 그녀에게/ 소리가 나는 자갈길을 깔아주고/ 군데군데 돌무덤을 예쁘게 쌓겠네./ 아침이면 노란 새소리로 풀꽃을 깨우고/ (중략)/ 모두 떠나버린 겨울에는 그녀를 더 쓸쓸하게 하겠지?/ 그러나 난 그녀를 끝까지 지키는 장사송(長沙松)으로 눈을 얹고/ 진흥굴 앞에서 한겨울을 품위 있게 나겠네.// 설혹 그녀에게 가파른 절벽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그 위에 저렇게 귀여운 암자를/ 옥동자처럼 낳고 살 것이네.”

- 김영남의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가수 송창식의 노래도 ‘선운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 가사

이만하면 선운사가 왜, 시인묵객들의 문학적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되었는지 알 듯도 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필자는, 아직도, 그 연유를, ‘선암사 동구’에서 찾고 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미당이 그어놓은 그 선을 넘어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는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뜨겁고, 매우 관능적이면서도 그 속에 불교의 자비희사(慈悲喜捨)와 도솔(兜率)ㆍ관음(觀音)사상을 담고 있다. 선운사를 소재로 한 많은 시편 속에 ‘여자’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끝내 깨달음으로 회귀하고 있는 ‘여자(중생)’들이다.

 

 

 동천(冬天 ) 

                                                                         서정주 [ 徐廷柱 (1915 ~ 2000)​ ]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1966) 발표,   1968년 시집 <동천>의 표제시이다.

 

"이 작품은 한 여대생 제자를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작했다고 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겨울 하늘의 투명하고 삽상한 공간에 시의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님의 눈썹을 천(千)날 밤의 꿈으로 씻어서 걸어 놓았다고 진술한다. 그랬더니 추운 겨울밤을 나는 새도 자신의 지극한 정성을 알아보았는지 그 눈썹의 모양과 비슷한 모습으로 피해가더라는 것이다.

 

 

미당(未堂)은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한학을 배우고 중앙불교 전문강원 수학 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으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토속적인 분위기가 배경인 요악한 그의 작품 경향은 한국시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확대 재발견을 도모하고 있다.

 

시집 '귀촉도'는 초기의 악마주의적 생리에서 벗어나서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하여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파"시인으로 면목이 일신되어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와 선율을 읊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는 '화사집(1941)',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가는 길 서정주 시비, 시제는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 동구에서/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