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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Jimie 2022. 11. 28. 08:01

2010년 남아공 월드컵 : 뉴질랜드 1-1 이탈리아

 

승패가 엇갈린 경기는 아니었으나 뉴질랜드와 이탈리아의 맞대결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뉴질랜드는 FIFA 랭킹 78위로 본선 진출국 가운데 최약체로 꼽힌 반면, 이탈리아는 전 대회 우승팀으로 톱 시드를 확보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뉴질랜드의 리키 허버트 감독은 "뉴질랜드 축구 역사상 지금까지 거둔 승리들보다 이 경기 무승부의 성과가 더 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결국 뉴질랜드전 무승부 여파는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서 탈락하는 나비 효과가 되고 말았다.

 

천운의 조편성

 

이탈리아는 천운의 조편성을 받았는데,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와 함께 F조에 편성된 것이다. 뉴질랜드야 2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인 것은 둘째치고 오대양 육대주를 통틀어 가장 전력이 약한 오세아니아 팀이었으므로 사실상 조 최약체이자 승점자판기인 팀이었고, 슬로바키아 역시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서는 팀에다가 체코보다도 더 전력이 약한 팀이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굳이 걱정할 만한 상대는 파라과이였으나, 파라과이 역시 이탈리아의 명성에 비하면 별 것 아닌 팀이었고 남미에서도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조 추첨이 끝나자마자 당연히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 이탈리아의 가벼운 3전 전승을 예상했고, 심지어 F조는 이탈리아가 3승을 하고 조 1위로 16강에 가고, 나머지 팀들이 서로 몰려 1승 2패를 해서 골득실을 따져 간신히 16강에 갈 수있는 경우도 생각했을 정도였다. 특히 뉴질랜드.

 

조별리그 파라과이전 - 1 : 1 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1경기
2010년 6월 14일 20:30(UTC+2)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1 : 1
 
이탈리아
파라과이
득점자
관중: 62,869명
Man of the Match: 안톨린 알카라스 (파라과이)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첫 번째 상대는 남미의 파라과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이후 무려 60년 만의 일이다. 그 당시에 맞대결 했을 땐 이탈리아가 2 : 0으로 승리했지만 1차전에서 스웨덴에 2 : 3으로 패배한 탓에 스웨덴에 승점 1점이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바 있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조 1위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선 반드시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했다. 그러나...

 

조별리그 뉴질랜드전 - 1 : 1 무 (음봄벨라의 비극)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4경기
2010년 6월 20일 16:00(UTC+2)
주심: 카를로스 바트레스 (과테말라)
 
1 : 1
 
이탈리아
뉴질랜드
득점자
관중: 38,229명
Man of the Match: 다니엘레 데 로시 (이탈리아)

그야말로 "음봄벨라의 비극"이라고 할 수있다.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로 꼽힌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축구 강국이었지만 뉴질랜드는 본래가 축구보다 럭비가 더 인기가 많은 나라였고 축구는 철저한 비인기 종목이라 변변한 프로 리그조차 없던 나라였다. 월드컵도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이탈리아의 압승을 기정사실로 여겼고 이 경기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탈리아가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관심사였다. 이탈리아로서도 편안하게 토너먼트를 치르기 위해선 반드시 뉴질랜드를 이겨야 한다. 한편, 뉴질랜드의 리키 허버트 감독은 이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를 향해 엄청난 도발을 감행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허버트 감독은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며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잊고 싶어하던 2002년의 악몽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 8년 전 이탈리아를 2 : 1로 격침시킨 것은 약팀이 강팀을 꺾어버린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었다. 오늘 경기에선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1차전에서 중앙에 섰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왼쪽으로 돌리고 레프트윙을 섰던 빈첸초 이아퀸타를 전방으로 올린 것이다. 즉, 전방 공격수 숫자를 늘려서 다득점을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반면, 뉴질랜드는 1차전과 마찬가지로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고 선발 라인업도 동일하게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렇게 다윗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는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초반 몇 분 간은 탐색전이 오고 갔다. 그러나 전반 7분 만에 경기는 모든 이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버렸다. 뉴질랜드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킥커 사이먼 엘리엇이 길게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그런데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가 볼을 제대로 클리어링하지 못했고 흐른 볼을 재빨리 문전으로 침투한 셰인 스멜츠가 잽싸게 밀어넣어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뉴질랜드가 1 : 0으로 앞서갔다.

워낙 기습적인 골이었던지라 이탈리아 관중석은 스턴건을 얻어맞은 듯 적막감에 휩싸였고 페데리코 마르체티 골키퍼와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도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 기습적인 선제골을 허용한 이탈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이탈리아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은 정말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월드컵 우승만 4번 한 축구 강국이 럭비 강국에게 0 : 1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반 29분, 공격에 가담한 조르조 키엘리니가 뉴질랜드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공중볼 경합 도중 뉴질랜드의 레프트백 토니 스미스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유니폼을 잡아 넘어뜨리는 반칙을 범했다. 주심은 즉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로서는 동점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였다. 킥커로 빈첸초 이아퀸타가 나섰고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렇게 전반전은 1 : 1로 마쳤다.

하프타임 때 리피 감독은 시모네 페페와 부진했던 최전방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를 빼고 마우로 카모라네시안토니오 디 나탈레를 동시에 교체투입했다. 하지만 이 교체 카드는 패착으로 다가왔다. 카모라네시는 볼 키핑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선수여서 옆에 시모네 페페가 붙어 있어야만 플레이가 살아나는 선수였다. 그러나 페페와 카모라네시를 맞교대 해버렸으니 카모라네시의 부족한 볼 키핑 능력을 도와줄 선수가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뉴질랜드 수비수들은 편안하게 카모라네시만 집중 마크해도 이탈리아의 공격의 혈을 막아버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이탈리아 공격수들은 마음만 급해서 자꾸 부정확한 슈팅들만 난사하기에 바빴다. 뉴질랜드의 마크 패스턴 골키퍼는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로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더욱 좌절감을 안겼다. 후반 16분에 리피 감독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빼고 잠파올로 파치니까지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더욱 늘렸으나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뉴질랜드의 크리스 우드가 주장 칸나바로의 마크를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멋진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아주 약간 골대를 벗어나며 아쉬움을 삼켰다. 만약 이게 들어갔다면 이탈리아로서는 8년 전 한국에 1 : 2로 패배했을 때보다 더 큰 치욕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뉴질랜드의 허버트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은행원 출신의 아마추어 선수 앤디 배런을 투입해 이탈리아를 향해 능욕 아닌 능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기는 또 1 : 1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1차전 파라과이전 무승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파라과이 역시 이탈리아의 발 끝에도 못 미치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남미의 축구 강국 중 하나인 팀이라 아주 무시할 만한 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전 무승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월드컵 우승 4회에 빛나는 축구 강국이 저 핫바리 오세아니아 팀에게 비겼다는 건 전세계적인 웃음거리에 불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서히 리피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앞서 열린 슬로바키아 VS 파라과이의 경기는 파라과이의 2 : 0 승리로 끝나면서 판세는 3차 방정식 수준으로 꼬여버렸다. 우선 1승 1무(승점 4점)를 기록한 파라과이가 조 1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이어 2무(승점 2점)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뉴질랜드가 공동으로 조 2위를 했으며 1무 1패(승점 1점)를 기록한 슬로바키아가 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쉬운 조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뉴질랜드가 이 조의 판세를 꼬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점자판기인 줄 알았는데 2경기 연속 무재배로 쳐내버린 것이다. 즉, 고장난 승점자판기였던 셈이다. 한편, 리키 허버트 감독은 난적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귀중한 1 : 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기자회견에서 했던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첫 번째로 출전했던 1982 스페인 월드컵 때엔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뉴질랜드였지만 이 경기에선 2무를 기록하여 무패를 기록했다. 감독이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고 말한 것에 힘이라도 싣듯 뉴질랜드 응원단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심리전에 동조했다. 이를 볼 때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약팀들의 상징이 된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탈리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지난 대회에서도 프랑스가 조별리그 2경기에서 2무를 기록하며 자빠질 뻔했지만 토고전 승리로 인해 토너먼트로 진출, 결국에는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까지 내로라 하는 강팀들을 잡고 결승에 올랐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3차전에서 아주 제대로 사달이 나고 말았다.

 

조별리그 슬로바키아전 - 2 : 3 패 (엘리스 파크의 비극)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5-1경기
2010년 6월 24일 16:00(UTC+2)
주심: 하워드 웹 (잉글랜드)
 
2 : 3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득점자
관중: 53,412명
Man Of the Match: 로베르트 비텍 (슬로바키아)

 

그야말로 "엘리스 파크의 비극, 슬로바키아에게는 요하네스버그 대첩이라 불리는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반면 이탈리아에게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 무승 탈락이라는 매우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 F조 최종 순위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3
1
2
0
3
1
+2
5
2
 
3
1
1
1
4
5
-1
4
3
 
3
0
3
0
2
2
0
3
4
 
3
0
2
1
4
5
-1
2
  • 파라과이 F조 1위로 16강 진출.
  • 슬로바키아 F조 2위로 16강 진출.

 이탈리아의 17번의 월드컵 중 최악의 월드컵

파라과이가 1승 2무(승점 5점)로 조 1위를 차지했고 대어 이탈리아를 낚은 슬로바키아는 1승 1무 1패(승점 4점)의 전적으로 단숨에 조 2위로 껑충 뛰어올라 둘이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3무(승점 3점)를 기록한 뉴질랜드는 매우 선전했지만 조 3위에 그쳐 탈락했고 이탈리아는 2무 1패(승점 2점)에 그쳐 뉴질랜드에도 밀리며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때 이탈리아 본인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브라질, 2002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에 이어 4번째였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는 그 치욕을 2번이나 겪었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2무 1패, 4득점 5실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탈리아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도 조별리그 탈락은 했을지언정 칠레를 2 : 0으로 이겨서 1승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단 1승도 못했다. 또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32개국 중 26위에 그쳤는데 이것 역시 월드컵에서 기록한 최저 등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