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좌파' 전향 선언 "조국 발언에 경악, 그건 파시스트였다"
입력 2022.11.01 00:58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편집실장,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최범(65) 디자인 평론가. 그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전환기의 인식'이란 글을 올리며 30년 좌파 활동을 공식 청산한다고 이념적 전향을 공개 선언했다.
2019년 9월 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일가 비리 의혹이 터진 와중에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후 '조국 사태'가 커지며 한국 사회는 극심한 진영 갈등이 벌어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나는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 출마 지지 선언을 했다가 박근혜 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촛불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권을 세우는 데 앞장도 섰다. 하지만 지난 5년은 나의 그러한 행동이 처절하게 배신당하는 시간이었다.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문재인은 무능과 불의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한국 좌파의 총체적 파국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30년간 좌파운동에 참여해온 내게 과연 좌파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일단 나는 좌파에서 탈출했다."
이 글에 대해 일부 좌파들은 그를 배신자로 몰거나 '지레기'(지식인+쓰레기)라며 조리돌림했다. 전향을 선언한 최범이란 인물을 잘 아는 대중은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는 좌파 미술계와 디자인계는 물론 시민운동권에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다. 1988년 『월간 디자인』편집장을 시작으로 민미협과 민예총 실장, 공예가협회 사무국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등 그의 디자인 평론서들은 통렬한 한국 사회 비판서로 읽힌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공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차례 만났다. 마침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시점이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 평론가는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군대에 다녀온 뒤 또래보다 몇 년 늦은 1981년에 입학해 꼬박 10년을 386과 같이 생활했다며 자신을 '빠른 386세대'라고 소개했다.
1981년 홍익대에 입학한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당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다.장세정 기자
-대학 시절은 어땠나.
"그 시대 많은 사람에게 그랬듯이 나도 5·18 이전과 이후가 인생이 달라졌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지적 헤게모니는 소위 좌파,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였다. 나도 그때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삶과 세계에 대해 하나의 틀로 설명해주는 마르크스주의는 내가 영접한 첫 거대담론이었다. 이거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 싶었고 중독될 정도로 톡 쏘는 청량감을 느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한국사회를 강타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근대 사상이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존적 삶과는 연계를 찾을 수 없었고 한국사회를 설명해주지 못해 모더니즘(근대성)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서 지난 40년 깊게 파고들었다.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 있는 한국사회의 과제는 진정한 근대화라는 것이다."
-주사파와 생각이 달랐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사이고, 세계의 기본 모순은 계급모순이다. 그런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사파들은 웃기게도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지 않고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본다. 이걸 보더라도 주사파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안 맞는다. 한국사회에 민족 모순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계급모순이 본질적이다. 주사파는 계급 모순을 민족 모순으로 치환했다. 이게 나와 주사파의 가장 큰 차이다."
-졸업 후 어떤 사회활동을 했나.
"지난 30년간 크게 두 가지 삶을 살아왔다. 하나는 전공이 디자인이라 시각 예술 분야에서 평론가로 활동했다. 지난 30년간 디자인 평론집을 6권 냈다. 제품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디자인을 매개로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10년간 민중문화운동가 또는 시민문화운동가로 활동했다. 1999년 출범한 문화연대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07년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희망제작소에서 문화 운동을 했다. 1987년에 형식적 민주화가 됐지만, 시민사회가 건강해져 실질적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민운동은 선을 넘어 권력이 되면서 타락했고, 386세력은 명백히 기득권이 됐다."
2017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 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연합뉴스]
-5월 말에야 전향을 선언한 이유는.
“5·18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좌파 지식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다. 촛불 집회에 10회나 참석하고 직접 찍은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다. 구체적 사건으로는 '조국 사태'가 계기였다. 조국이 말한 ‘애국이냐 이적이냐’를 보면서 경악했다. 그것은 파시스트의 언어다. 문 정권 주도 세력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전근대 중세 봉건세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좌파는 민족주의를 강조해왔는데.
"민족주의는 서양 근대 사상 중 하나이지만, 한국 좌파의 민족주의는 종족주의(Ethnicism)다. 피(혈통)에 기반을 둔 봉건 질서를 옹호하는 그냥 수구세력이다. 진정한 좌파도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근대를 부정하는 세력이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이념적인 지형은 겉으로는 좌우 대립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아니고 본질은 여전히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의 개화와 수구의 대립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이후 지금까지 150년간 한국 사회의 지적 구도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좌파 탈출을 선언했나.
"한국 좌파의 본질을 수구세력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는 더는 좌파일 수 없고, 좌파를 버릴 수밖에 없는 거다. 마르크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사회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좌파는 손절하고 우파로 전향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정치 세력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당은 386의 볼모가 돼 기괴한 인질극이 벌어지는 것 같다. 지지하는 방향을 말한다면 주체적 근대화다. 한국 좌파가 그동안 싸운 대상은 식민지 근대화 세력으로 대표되는 한국 우파였다. 식민지 근대화는 자주적 근대화도 주체적 근대화도 아니었기에 많은 한계와 결함을 안고 있다. 한국 우파가 개과천선·환골탈태해서 진정한 주체적·심층적 근대화 세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과제다. "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주체적 근대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장세정 기자
-민족과 국가를 뒤섞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민족 대표로 여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결사체(이익사회·Gesellschaft )의 대표이지,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공동사회·Gemeinschaft)의 대표가 아니다. 근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결사체다. 한국은 아직 게젤샤프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전근대적인 봉건 공동체다. 근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주체가 돼야 하는 우리는 여전히 민족이라는 집단이 주체다. 이것이 전근대사회란 명백한 지표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좌파는 대한민국을 종족 공동체로 보고, 우파는 정치 공동체로 본다."
-좌파는 북한이 도발해도 '친일 프레임'을 건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국가다.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서로 다른 국가 간에 국제 정치, 즉 외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민족 문제는 없는 거다. 엄연한 국가 간의 문제를 민족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야말로 의도인지 무지인지 모르지만,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길이다. 민족주의가 제일 큰 병폐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개항 150주년이 되는 2026년『개항 전후사의 인식(가칭)』출간을 목표로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 서래포럼 회원들. 왼쪽부터 김종민 변호사, 최진덕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 교수, 최범 디자인 평론가, 김은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문화인류학). [장세정 기자]
-한국사회의 과제는.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서 뒹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근대화가 됐는데, 정신적으로 근대화가 안 됐다. 이런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세기에 개화파가 수구파에게 밀리면서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했다. 결국 식민지 근대화로 갔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충대충 울퉁불퉁하게 흘러왔다. 하지만 개항 이후 지난 150년간 한국 사회는 서양의 근대를 정면으로 직시한 정신적 운동이 없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정신적 과제다."
-사상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1979년 10월에 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지난 40여년간 한국 엘리트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민족과 외세의 대립을 한국 현대사의 주요 모순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제는 민족이 아니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동안 민족 모순에 주목하는 동안 간과했던 상위의 문명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2026년이 근대화의 출발점인 개항 150주년이다. 뜻있는 지식인들과 함께 2026년까지『개항 전후사의 인식(가칭)』을 저술해 한국 사회의 지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생각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주장한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는 낡은 패러다임을 폐기하지 않으면 한국사에 미래가 없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아영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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