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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Día Hermoso Como Hoy(오늘처럼 아름다운 날)>꽃밭에서 | 정훈희

Jimie 2022. 10. 21. 14:55

작사도 표절 작곡도 표절, 그래도 좋은 노래

— 정훈희의 <꽃밭에서>

가수 정훈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곡들이 있다. <안개>, <꽃길>, <꽃밭에서>, <무인도>, <그 사람 바보야> 등 바로 그녀의 대표곡들이다. 그러나 <무인도>는 훗날 김추자가 불러 크게 히트시키며 그녀의 곡처럼 되어버렸고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곡이 데뷔곡 <안개>를 제외하면 <꽃밭에서>라 할 수 있다.

우선 노래부터 듣자.

꽃밭에서 (정훈희)

https://www.youtube.com/watch?v=l-_P0i6xUnA 

노랫말은 아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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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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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 꽃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꽃빛에 감탄한다. 꽃의 고운 색깔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궁금해 할 정도로 그 아름다움에 반했다. ‘어디에서 났을까’는 문학적인 표현이다. 후에 정훈희는 물론 다른 가수들도 ‘어디에서 왔을까’라고 바꿔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왔을까’보다는 ‘났을까’가 더 좋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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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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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있다. 노랫말 속 화자인 여자(정훈희가 불렀으니 여자로 하자)는 ‘그 님’과 떨어져 있다. 헤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멀리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지금 현재 함께 있지는 않다. 그러니 꽃밭에 핀 꽃들을 보는 오늘을 ‘이렇게 좋은 날’이라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그 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기쁜 날 더 기쁠 것이고 슬픈 날에는 그 슬픔이 덜어지지 않겠는가.

여기서 첫 소절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노랫말은 루루루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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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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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루 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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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은 1절의 노랫말을 뒤집어 놓았다. 앞부분 3행이 뒤로 가고 뒷부분 2행이 앞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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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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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앞뒤를 바꿔불러도 참 부드럽게 연결된다. 멜로디도 그렇지만 정훈희의 목소리로 듣는 <꽃밭에서>는 듣는이로 하여금 ‘님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헤어진 님인지, 가신 님인지는 정확하게 수 없다. 다만 아름다운 날을 함께할 수 없는 ‘그 님’을 그리는 마음이 청자의 가슴에 꽂혀 혹자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노랫말 속 ‘그 님’이 이성일 수도 있겠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자신이 아끼던 사람 혹은 함께하고 싶지만 지금은 옆에 없는 친구나 형제자매, 나아가 부모가 되기도 하기에 그런 ‘님의 부재’가 감정이입되면서 노래에 빠져들고 눈물까지 흘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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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루 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그런 감정이입을 더욱 깊게 하는 노랫말이 바로 루루루루~로 이어지는 화음이다. 그 루루루루에 청자는 자신만의 노랫말을 넣어 자신이 부르는 노래로 느끼는 것이다.

사실 정훈희는 1967년 17세의 나이에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 일컬어지던 이봉조로부터 <안개>란 곡을 받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꾸준히 인기를 쌓아가던 그녀는 유신시절 가요계 정화작업의 하나였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비록 훈방조치를 받기는 했지만 방송출연이 금지되고 만다. 이에 자숙하고 있던 그녀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 곡이, 1970년에 발표했지만 1979년 이후 크게 알려진 <꽃밭에서>이다.

1979년 제20회 칠레가요제에 참가한 가수 정훈희는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의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노래

 <Un Día Hermoso Como Hoy(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을 불러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한다.

 

당시 영상을 보자.

 

Un Día Hermoso Como Hoy

https://www.youtube.com/watch?v=0TKjFVe-SFA 

Un Día Hermoso Como Hoy

https://www.youtube.com/watch?v=5HWnAKnPpi4 

SUBSCRIBE
 
Año:
1979

Titulo:
Un Día Hermoso Como Hoy ( 꽃밭에서 )

Canta:
Jung Hoon-hee ( 정훈희 )

 

칠레가요제가 끝나고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서는 선처를 베풀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그녀의 칠레가요제 실황 영상은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었다. 1981년 그녀에 대한 규제가 풀렸고 이후 그녀는 1982년 재발표된 <꽃밭에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실 이 곡에 대하여 작곡자인 이봉조는 ‘정훈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말했을 정도로 곡의 멜로디가 정훈희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 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꽃밭에서>의 노랫말과 멜로디 모두 순수창작물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먼저 이종택 작사로 발표된 <꽃밭에서>의 노랫말.

그 내용은 조선조 세조 년간에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최한경(崔漢卿)의 <반중일기(泮中日記)>에 실린 시 <화원(花園)>에서 가져온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최한경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간직했던 여인이 있었단다. 즉 어렸을 때 결혼 상대자로 양가에서 혼삿말이 오고 가기도 했던 여인이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맺어지지는 못했고, 과거에 급제하고 성균관 유생으로 지내던 시절 늘 마음속에 간직했던 고향의 그 처녀를 생각하며 지은 애틋한 시가 바로 <화원(花園)>이고 이를 훗날 자신의 문집 <반중일기(泮中日記)>에 수록해 두었다.

원문은 이렇다.

 

坐中花園瞻彼夭葉 (좌중화원첨피요엽)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云何來矣 (혜혜미색운하래의)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何彼矣 (작작기화하피의)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吉日于斯 (사우길일길일우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云何之樂 (군자지래운하지락)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臥彼東山望其天 (와피동산망기천)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明兮靑兮云何來矣 (명혜청혜운하래의)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維靑盈昊何彼藍矣 (유청영호하피람의)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吉日于斯吉日于斯 (길일우사길일우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美人之歸云何之喜 (미인지귀운하지희)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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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자 이종택이 이 <화원(花園)>을 보고 의도적으로 표절을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정도면 표절이라 해도 무방하다. 노랫말의 주제 그리고 그 표현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꽃밭에서>는 어떠한 설명 없이 ‘이종택 작사’로 되어 있다.

노랫말만 그런 게 아니다. 멜로디 또한 다른 노래에서 가져온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팝피아니스트 Oscar Peterson이 1962년에 발표한 앨범 <Night Train>에 <Hymn To Freedom(자유에의 찬가)>란 재즈 곡이 있다. 이 곡에서 재즈풍을 걷어내고 주제 부분만 떼어 놓으면 이봉조 작곡의 <꽃밭에서>가 된다.

직접 듣고 판단해 보자.

 

Hymn To Freedom

https://www.youtube.com/watch?v=tCrrZ1NnCuM 

 

 

즉, 1962년에 Oscar Peterson이 재즈곡으로 발표한 곡이 8년이란 시간을 넘어 머나먼 한국의 작곡가 이봉조에 의해 재탄생된 것이다. 표절인지 아닌지는 이봉조 자신만이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어느 누가 들어도 두 곡 멜로디의 유사성은 부인할 수 없다. 이봉조는 작곡자로서 여러 나라의 음악을 듣다가 Oscar Peterson의 을 들으며 주제 부분에 자극을 받아 기억했다가 훗날 머릿속에 남아있던 멜로디가 바탕이 되어 자신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노래 <꽃밭에서>로 탄생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이 곡으로 이봉조는 정훈희를 데리고 칠레가요제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경연에 참여하면서 표절곡을 가져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표절 사실이 밝혀지면 본인은 물론 나라 망신이다. 그러나 이봉조 자신에게 표절이란 의식이 없었기에 당당하게 국제가요제에 이 곡으로 참여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정훈희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작사자가 만든 노랫말에 작곡자가 멜로디를 붙였고 자신은 그 노랫말 그 멜로디에 충실하게 노래를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자신 있게 부르는 것이리라.

노랫말도 멜로디도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왜 <꽃밭에서>가 좋을까.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만 <꽃밭에서>는 모방이 아니라 거의 표절 수준이다. 물론 원작들에서 감명을 받아 혹은 자극을 받은 영감이 <꽃밭에서>로 재탄생한 것이라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비록 표절이라 하더라도 <화원(花園)>을 읽으며 그리고 를 들으며 느낄 수 있는 감흥과는 전혀 별개의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느낄 수 있고 나아가 감정이입까지 되는 것은 바로 노랫말과 멜로디를 담아낸 정훈희의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봉조가 ‘정훈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성숙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듣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YEeemXyX5w 

 

 

 

 

[출처] 가요 이야기 (31) 작사도 표절 작곡도 표절, 그래도 좋은 노래 — 정훈희의 <꽃밭에서>|작성자 이병렬